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묭 Aug 02. 2020

제주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뜨는 제주, 닳는 제주>


‘아름다운 우리 섬 제주는 발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상처 입고 있을까요?’


지난해 봄, 제주를 취재하며 남긴 후기의 첫 문장입니다. 나흘간의 취재는 내내 맑았던 하늘과 달리 우울했습니다. 바닷속에는 매일 수천 톤의 생활하수와 오물이 걸러지지도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한라산의 허리에는 소각되지 않은 거대한 쓰레기 섬이 생겨 있었거든요. 푸른 섬 제주의 속은 시퍼렇게 멍들어가고 있던 겁니다.


(1년 전 취재 후기 바로가기)


일 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최근 제주에 관한 뉴스가 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길이 막히자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몰리기 시작한 거죠. 입도객 수는 중국인들로 가득 찼던 지난해 수준을 금세 회복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주의 아픔을 고발한 지 1년. 제주의 정책결정자들은 그 사이 섬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코로나19로 입도객이 크게 줄고 관광지 출입이 금지되었던 지난 몇 달간이, 다친 제주를 그나마 치료할 좋은 기회였을 텐데요. 그래서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제주의 상처는 얼마나 아물었는지.


<뉴스데스크 - 로드맨> 코너의 취재후기입니다. 전 로드맨은 아니고 기획pd입니다.


먼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꽉 찬 제주’였습니다. 동문 야시장은 홍대 클럽데이를 연상케 할 만큼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해수욕장들도 평일인데도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장마도 끝나지 않은 궂은 날씨였지만 호텔이며 골프장이며 관광객이 넘쳐났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어요.


협재해수욕장의 비 오는 평일 오후.


놀러 온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코로나19로 강제휴식기(?)를 취하던 제주가 혹시 다시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했습니다. 제주 시민단체에 문의해봤더니 저희를 용눈이오름으로 데려가 주시더군요. <효리네 민박>에 나오면서 최근 들어 급격히 유명세를 탄 오름이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지만 입구 주차장은 꽉 차 있었습니다.


탐방로 주변이 휑하니 파인 용눈이오름


탐방로를 올랐는데, 비전문가인 제 눈에도 황폐해진 모습이 확연히 보였습니다. 탐방매트를 고정하는 철골은 1년 전만 해도 흙속 5cm 아래에 묻혀 있었다는데, 지금은 땅 위로 5cm 이상 돌출돼 있더군요. 그러니까 지난 1년 새 오름이 10cm나 깎여나간 셈입니다. 코로나19로 몇 달간 출입이 통제됐다는 걸 감안하면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죠. 동행했던 제주 참여환경연대의 홍영철 대표님은 "화산지형의 특성상 오름의 흙은 한 번 파여서 쓸려내려가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인기 TV 프로그램 출연으로 용눈이 오름은 '대박' 떴지만, 동시에 서서히 닳고 있던 겁니다.



지난해 취재 때 들렀던 현장들도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먼저 회천 쓰레기매립장의 지금이 궁금했습니다. 한라산 중산간을 거대한 쓰레기섬으로 바꿔놓았던 그곳이었죠. 분명히 지자체에서 지난해 말까지 처리장을 정화하겠다고 했거든요.


쓰레기섬이 되어 있던 한라산 중산간(2019년 취재 당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회천매립장은 이전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2023년까지 폐기물을 다 덮고 산을 복구할 계획이라더군요. 지난해 말부터 일반쓰레기들은 여기 오지 않고, 인근에 새로 지어진 폐기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돌려막기'나 다름없으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요.


반면 예산 문제로 재활용 쓰레기와 폐목재들은 여전히 이곳에 산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소각을 시작했는데 다 태우려면 3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비로운 산의 허리에 작은 '쓰레기산'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셈입니다. 지자체에서 내년 10월까지는 해결할 거라는데, 인근 주민 말로는 그 약속이 미뤄진 것만 벌써 3번째라고 합니다.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이렇습니다..


제주 북쪽 바다도 다시 가봤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넘쳐나는 하수와 오물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하수처리장 대신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었는데요.


당시 이 수중 촬영을 맡았던 카메라기자는 '바다에서 하수구 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북제주의 한 포구로 다시 찾아가서 해녀분들의 말씀을 들어봤습니다. 심해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속을 다녀도 해삼 하나 건지기 힘들 만큼 오염된 상태 그대로라더군요. 알고 보니 하수처리장이 증설되기까지는 여전히 5년 남았다고 합니다. 2025년까지는 북제주의 생활하수를 지금처럼 정화하지 않은 채 바다로 토해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바다에서 건져올린 쓰레기들


해양쓰레기를 걷어내는 배(청항선)도 타봤습니다. 2시간 동안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스티로폼과 페트병, 그리고 폐그물들을 건져 올렸지요. 선장님 말씀으로는 많을 때는 하루에 20톤까지 쓰레기를 걷어낸다고 합니다. 특히 해수욕장 인근에서 걷어내는 것들은 대부분 라면봉지나 물병 같은 생활쓰레기라더군요. 제주에서 배출되는 해양쓰레기의 양은 전국 광역지자체 중 전남과 경남에 이어 3위입니다. 인구와 면적 규모를 고려하면 압도적 1위인 셈이지요.




사흘간 다시 카메라에 담은 제주는 여기까지입니다.


곪고 있는 제주의 속을 다 들춰내려면 3일이 아닌 3년에 걸쳐 취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제주를 다시 찾아가 겉핥기 보도라도 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명합니다. 다친 제주를 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제2공항 추진 등 더 많은 관광객을 받기 위한 각종 개발 사업에 세금을 쓸 때가 아니라, '한도 초과'된 섬을 회복시키는 데 예산을 집중하는 게 먼저 아니겠냐고 제주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도민이 아닌 관광객들에게도 '보고 싶은 제주’가 아닌, '보이지 않는 제주'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8월 까지 제주를 찾는 관광객 수는 절정에 이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 대신 제주를 찾아오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이유는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오셔서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의 여름길을 마음껏 걸으셔도 좋지만, 그 아름다움을 오래 지키는 길까지 같이 걸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제주는 뜨고 있지만, 동시에 닳고 있습니다. '뜨는 제주'를 상상하는 흥분만큼 '닳는 제주'를 걱정하는 가슴도 달아오를 때인 것 같아요. 이방인으로서 제주를 소모품처럼 써온 건 아닌지, 저부터 반성해야겠지만요.


언제까지 이렇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몰카 공화국'을 벗어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