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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04. 2019

제주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제주도, 수명이 다 되어간다> 취재를 마치며


아름다운 우리 섬 제주는 발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상처 입고 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시작한 취재였습니다. 뉴스에 미처 내보내지 못한 생각들을 여기 남깁니다.


푸른 섬 제주.

눈에 보이는 제주가 있고, 보이지 않는 제주가 있습니다.


두 눈으로 담는 제주는 말할 것 없이 푸르고 아름답지요. 저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주를 렌즈에 담고 싶었습니다.

 

매일 수천 톤의 생활하수와 오물이, 제주도 앞바다에 걸러지지도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한라산 중턱에 소각되지 않은 거대한 쓰레기섬이 생겼다면요?


전화로 들었을 때는 저희도 과연 그 정도일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다 밑과 산 위를 두루 훑으며 목격한 뒤 결론 내렸습니다. 푸른 섬 제주는 시퍼렇게 멍들어가고 있다고요. 예쁘게 치장된 섬의 폐부는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섬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는 섬뜩한 예감마저 들더군요.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진짜 이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인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보다 누구 탓인지, 지금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사진들은 대부분 저희 취재의 결과물인 <MBC 주말 뉴스데스크 - 로드맨> 캡쳐화면입니다.


“섬 전체가 공사판이다”


제주도 주민의 말입니다. 얼핏 둘러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공사 중인 건물도 많고 자재들도 잔뜩 쌓여 있지요.


예컨대 서귀포의 푸른 바다 코앞에도 마치 해안가를 파먹은 듯한 회색 시멘트 건물들 수십 채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완공이라도 됐으면 모를까, 공사가 중단된 채로 6년째 방치되고 있어요. ‘제주 예래 휴양단지’인데, 외국 자본의 투자로 건설되다가 각종 소송전에 휘말리며 무기한 공사가 중단된 겁니다.


뼈대만 남고 바람에 부서진 채로 방치되고 있다.

휴양단지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상관없는 엉뚱한 관광단지가 조성되고 있기도 합니다. 람사르 습지 도시로 지정된 선흘2리에는 사파리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한라산 중산간 지대에 갑자기 유럽 불곰과 사자들이 모여드는 거죠.


갑자기 분위기 사파리...


곶자왈의 훼손은 단연 심각합니다.


곶자왈은 제주 생태계의 허파라 불리는 독특한 덤불숲을 말합니다. 섬 도처에 100㎢에 달하는 곶자왈이 있는데, 벌써 30%가 개발됐습니다. 승마장, 골프장, 채석장 등 숲을 밀어내고 지어진 시설만 127곳이지요. 이 속도라면 남은 70%의 곶자왈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입니다.


곶자왈 훼손은 비단 경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산섬인 제주에서 빗물을 머금어줄 숲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지하수가 고갈될 우려가 벌써 제기되고 있습니다. 뒤늦게 올해 들어서야 도내에서 지하수 고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물이 고갈되다 보니 오염도 심해졌습니다. 물 맑기로 소문난 ‘삼다수’의 고장에서 지하수 오염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요. 그러나 이미 지난해 한라산 중서부의 상수시설인 한림정수장이 폐쇄됐습니다. 가축 분뇨 등으로 물의 질소 수치가 높아져 도저히 ‘먹을 물’로 정화가 불가능했던 거죠.


바닷속 대신 도청에 모인 해녀들.


가장 큰 문제는 바다입니다.


저희가 취재하러 내려갔던 지난달에도 제주 해녀분들이 도청 앞에서 해녀복을 입은 채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해산물들이 다 죽어서 먹고살 수 없다면서요. 바닷물이 오염돼서 소라 하나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오염됐냐고 물었습니다.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와, 특히 하수처리장에서 오물을 정화하지도 않고 방류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러고 있다더군요.


입수.


그래서 직접 바다에 내려가 봤습니다.


다행히 저희 카메라기자가 잠수자격증이 있었지요. 도두항 앞바다, 관광객이 넘치는 해수욕장에서 통통배로 불과 몇 분 가량 나가서 내려가 본 바다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심 20m가량.


거대한 파이프관에서 끊임없이 오물을 콸콸 내뿜고 있었습니다. 직접 잠수했던 카메라기자는 “바다에서 하수구 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더군요.



이렇게 오물이 쏟아져 나오니 바다 생물이 살 수 있을까요? 파이프관 주변에는 해초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인근 바다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해서 보면 확연히 사막화된 모습입니다.


이게 그대로 바다로...

이 오물들은 어디서 내뿜고 있는 걸까요?


인근에 있는 도두 하수처리장이 범인이었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정수를 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수의 일부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도두 하수처리장 현대화 사업이 이제야 진행될 것 같습니다. 최근 정부의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에 포함됐죠. 그러나 여전히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는 최소 몇 년이 더 걸리는 데다, 이렇게 용량 초과된 하수처리장이 제주에 이곳뿐이 아니라서 걱정입니다.


한라산 중턱, 이게 다 쓰레기.


바다뿐 아니라 한라산도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중산간 지대에 있는 회천 쓰레기매립장에는 축구장 수십 개 규모의 쓰레기가 소각되지도 못하고 쌓여 있었습니다. 역시 소각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서 쓰레기를 받다 보니 생긴 일이었습니다. 태워서 없애야 되는데 반입되는 쓰레기가 그보다 훨씬 많은 거죠. 일단 압축 포장해서 쌓아두고는 있는데, 그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쓰레기 더미가 한라산을 야금야금 집어먹고 있는 셈이죠.



이렇듯 숲에서, 지하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제주의 환경 용량이 초과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광객 수가 하와이의 두 배가 됐다며 환호하는 사이 제주는 속으로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객을 더 받겠다며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2공항에 대한 찬반 입장이 불분명했습니다. 공항이 포화상태라는 통계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었지요. 그러나 취재를 마친 뒤에는 입장이 분명해졌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뒤처리가 먼저입니다. 상하수도 시설 늘려서 넘쳐나는 생활하수 감당하고, 쌓여가는 쓰레기 문제 해결하고, 바다와 지하수를 정화하는 게 먼저입니다. 겉을 포장할 때가 아닙니다.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된 성산 일대. 성산일출봉 바로 옆이다.


뉴스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이거 다 누구 탓일까요?


당연히 제주의 설계자들 책임일 것입니다. 저는 제주도의 전*현직 도지사와 지자체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그들의 임기는 4년입니다. 4년 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지자체장들의 목표였을 터입니다. ‘눈에 보이는 제주’를 단기간에 더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개발 관련 예산을 우선 편성하느라, 뒤에서 처리되는 것들(하수처리장, 쓰레기 매립지, 지하수 정화시설)에 대해 눈 감은 게 아닐까요? 


비단 지금 도지사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제주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후반부터였으니까요.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현직 지자체장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희룡 도지사와 도청 측은 저희의 인터뷰 요청도, 반론 요청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나흘에 걸쳐 십수 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만 돌아왔습니다.



“제주는 발전하고 있을까요? 상처 입고 있을까요?”


취재를 떠나며 던졌던 첫 질문에 대한 답, 지금은 선명합니다. 제주는 발전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제주의 자연이 감당할 용량을 명백히 초과했지만, 여전히 ‘제2공항, 영리병원, 비자림 도로 확장’ 등의 개발 구호만이 섬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가 과연 개발된 풍경을 보기 위해서일까요? 1백 년 뒤의 제주가 지금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면, 도민들은 누구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할까요?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자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지금이 제주의 '골든타임'인 것만 같아서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제주에 가겠습니까?


(조촐한 글이지만 공유해가실 땐 짧은 댓글이라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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