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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ug 09. 2020

당신의 출근길을 아프게 달립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출근길의 두 가지 풍경


1.

지난 4월의 출근길, 사람이 눈앞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창동역을 지나던 길이었지요.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섣불리 급정거를 하면 수천 명이 다칠 수 있거든요. 눈앞으로 툭, 떨어지는 그의 눈빛을 응시하며 내가 할 수 있던 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끝까지 두 눈을 부릅뜨는 일뿐이었습니다. 왜 하필 날까, 왜 나여야 하나, 속으로만 원망하면서요.


그 후로는 혼자 덤덤해야 했습니다. 사실 처음도 아니었어요. 몇 년 전에도 같은 일을, 같은 역에서 겪었으니까요. 두 번째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회사에서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기를 권해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아픔을 티 내기는 더 싫었거든요. 직장 동료들 대부분 나와 같은 사고를 겪었지만 누구 하나 티 내지 않고 매일 같은 노선을 운전하고 있답니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믿을 수밖에요.


나는 지하철 1호선 기관사입니다.


16년째 같은 노선을 달리고 있죠. 나를 비롯해 지하철 투신 사고를 겪은 거의 모든 기관사들이, 여전히 사고를 목격한 정차역을 매일 같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운행 노선을 바꿔주도록 돕겠다’며 설문조사도 했고, 회사에서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노선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동료에게 폐 끼치는 일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요. 나 하나라면 모를까, 우리 모두는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니 그때마다 운행 노선과 근무일정, 생활 패턴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저 스크린도어가 어서 설치되지만을 바랄 뿐이죠. 여전히 1호선 몇몇 역사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습니다. 특히 창동역은 민자역사 건설 문제가 꼬이면서 10여 년째 설치가 미뤄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사이 이곳에서만 스무 명 가까이 몸을 던졌고, 그걸 지켜보는 건 온전히 우리 몫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황장애를 일반인의 7배나 겪는 직업이 되어버렸죠. 


그렇게 목도한 죽음의 잔상을 아침마다 강제로 소환당하며, 나는 오늘도 당신의 출근길을 아프게 달립니다. 당신이 지금 타고 있는 그 철길 위를.


<앵커로그 - '철도기관사, 사고 그 이후' 편>




2.

2018년 7월 새벽 출근길, 버스에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한 정치인이 스스로 숨을 거둔 직후였지요. 생경한 일이었습니다. 새벽 4시였거든요. 세상의 모든 빛이 잠든 까만 새벽의 첫차에는, 원래 매일 보던 사람들만 십수 년째 타 왔으니까요.


새벽 첫 출근길을 달리는 기분은 늘 조마조마합니다. 날이 밝아진 뒤에 출근하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새벽 4시에 구로동을 출발하는 나의 버스는 10여 분 만에 만석이 됩니다. 노량진을 지날 때쯤엔 손잡이를 잡기 힘들 정도로 승객들이 가득 차지요. 빨간불이라서 멈추는데도 승객들은 저를 원망합니다. 왜 속도를 더 내지 않느냐고, 신호를 좀 지키지 않더라도 빨리 가달라고 재촉합니다. 십수 년째 들어와서 그냥 흘려듣고 말기는 하지만요. 사실 그들의 심정이 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나는 서울 6411번 버스 운전기사입니다. 


새벽 첫 출근버스를 빽빽이 채우는 저 많은 사람들은, 정확히 세 부류뿐입니다. 청소노동자, 건설일용직 노동자, 경비원.  분들 말고는 누가 새벽 4시에 출근을 하겠어요. 승객들은 대부분 구로와 영등포에서 타지만, 내리는 곳은 거의 강남역과 선릉역입니다. 고층 빌딩과 유흥시설이 많은 곳일수록 이들을 서둘러 필요로 하니까요.


첫차 승객들은 5분이라도 늦으면 큰일이 납니다. 당신이 출근하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마쳐놓고 사라져 주어야 하거든요. 그들은 이 사회에 고용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죠. 중간에 환승을 해야 하는 승객들은 유난히 더 조급해합니다. 제가 환승역에 조금만 늦게 내려드려도 버스를 갈아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거든요.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요.


그렇다고 이 버스를 운전하는 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다운 버스이기도 해서요. 승객들은 많게는 십 년이 넘게 매일 같은 시각 버스를 탑니다. 제 얼굴은 물론 승객들 서로 누가 누군지 잘 알고 있죠. 앉는 자리도 거의 정해져 있고, 내리는 곳도 서로 다 알기에 혹여나 누가 잠들면 깨워주기도 합니다. 승객 한 분이 가져온 가방고리에 무거운 출근가방 대여섯 개가 바나나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앉아 있는 승객이 일어서 있는 승객을 무릎에 앉히기도 합니다. 가끔 늘 보던 누군가가 타지 않으면 서로 걱정하며 전화를 해주기까지 하지요. 이런 광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2년 전 제 버스에 기자들이 가득 찬 이유였던 한 정치인의 죽음. 그 정치인은 생전 어느 연설에서 나의 6411번 버스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우리 버스는 새벽 4시에 두 대가 동시에 출발하게 됐어요. 서울시에서 예산을 들여 첫차를 증차해준 거죠. 그는 불명예를 안고 떠났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우리 버스 승객들은 숨을 조금이나마 돌리며 출근길에 나서게 되었답니다.



물론 출근길을 빼고는 더 나아진 것도 없는 삶이겠죠. 그들은 여전히 에어컨도 없는 건물 창고나 기계실 구석에서 잠시 쪼그려 앉아 지친 몸을 달래가며 일하고 있으니까요. 당신 눈에 띄지 않는 곳만 찾아다니면서요. 6411번 버스 얘기를 세상에 알려준 그 정치인의 죽음이, 단지 새벽 첫버스 증차만으로 끝나지는 않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다가올 고단함을 예측하는 듯한 승객들의 표정과, 한 정치인이 사회에 던지고 떠난 무거운 메시지를 떠안고, 오늘도 나는 당신의 출근길을 아프게 달립니다. 당신이 지금 타고 있는 그 도로 위.  

 

<앵커로그 - '새벽 첫 차 타는 사람들' 편>


※ 제가 기획하는 뉴스데스크 <앵커로그> 코너의 두 기사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하여 묶었습니다. (출연하는 기자는 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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