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cement

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06)-6월 7일(토)

by N 변호사

2008-06-09 오후 7:28:13


1. 아침 일찍 호텔식당에 내려왔다. 그러나, 오늘은 주말이라서 평소와는 다르게 7시에 문을 연단다. ‘달의 궁전’을 읽으면서 7시까지 기다렸다. 여행의 좋은 점은 먹고 사는 일상의 문제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여행의 후유증은 클 수도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니까.

2. 아내, 석윤이와 함께 석휘 학교로 향하였다. 졸업식이 시작되는 11시보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였다. 마침 Caith의 부모들도 일찍 나왔으므로 반갑게 만났다.

오늘은 Caith의 외할머니까지 나오셨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졸업식에는 유달리 노인들이 많았다. 손자, 손녀들의 졸업식을 보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에 동서양이 따로 있으랴.

3. Caith의 부모들을 따라서 졸업식이 열리는 장소에 갔다. 나는 학교 극장에서 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석휘 학교에 6번도 넘게 와봤는데 그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럴듯한 야외무대가 있었다.

숲속 아늑한 곳이었다. 특별히 무대장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경사면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스탠드가 만들어졌고, 끝부분은 우거진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붕이 이루어진 오목한 곳이 있었다. 그 밑에 조그맣게 축대를 쌓아 단상으로 만들었다. 축대는 꽃을 놓아서 장식하였다. 단상으로 만든 평평한 곳에는 간이 의자들을 가져다 놓아서 졸업생들이 앉게 하였고, 그 옆에는 연단을 놓아두었다.

오늘 날씨는 너무 더웠다. 폭염이라고 부를만 하였다. 어제까지도 그렇지 않았는데 온도가 화씨로 100도가 넘었단다. 핸드폰을 이용하여 섭씨로 환산해보았더니 37.7도이다(삼성 애니콜은 모르는 것이 없다). 무지막지한 더위였다.

야외무대에 앉다 보니 거의 몸이 익는 수준에 이르렀다. 더구나, 나는 양복정장에 넥타이까지 맸으니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이스 박스에 생수병들을 재어 놓고, 끊임없이 물병들을 나누어 주었다.

11시가 되었다.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은은한 실로폰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숲속에서 옹달샘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음악이었다.

갑자기 뒤쪽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졸업생들이 남녀 한쌍으로 짝을 이루어서 경사면의 돌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입장하고 있었다.

남학생은 검정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는 흰장미를 꽂았다. 여학생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한손으로는 남학생의 팔짱을 끼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빨간 장미를 한송이씩 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젊은 한쌍이 결혼을 위한 행진을 하는 것 같았다. 아까의 음악은 오늘의 졸업식을 위해 이 학교 음악 선생님이 작곡한 것이었다. 숲속에서 걸어 내려오는 이들 앳된 젊은이들의 모습은 마치 숲속의 요정들 같았다.

120명쯤 되는 졸업생들은 그렇게 한쌍씩, 한쌍씩, 걸어 내려와서 단상 위의 간이의자에 차례대로 앉았다.

미리 나누어 준 Commencement Program은 노란색 고급종이에 짙은 검정색 글씨로 인쇄 되어 있었다. 표지를 제외한 첫 페이지에는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의 full name이 인쇄되어 있었고, 두 번째 페이지에는 오늘 식순이 기재되어 있었고, 세번째 페이지에는, 올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9학년부터 12학년 전학년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여 메달을 수여받은 학생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어제 Senior Talent Show에서 단신의 키로 열창한 아주 긴 이름의 태국 청년은 수학 천재라는 명성답게 과연 수학 분야에서 메달을 수상하였고, 어떤 분야에서는 10학년 학생이 선배들을 제치고 그 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급히 석휘 이름을 찾았다. 앗, 있었다. 그런데, 그 분야는 vocal 부분이었다. 여학생 1명과 함께 공동수상이었다.

공동수상자의 이름을 보니 그 여학생이 vocal 상을 받은 것은 이해가 되었다. 어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기타도 연주하고, 피아노도 연주하던 만능 뮤지션이 바로 그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석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어제, Senior Talent Show에서도 막강한 노래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지 않았는가.

나중에 석휘에게 물어보았더니 자신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뭔가 본 것이 있으니까 준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하였다. 어쨌든, 석휘가 상을 받은 것은 기쁜 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연단으로 걸어 나왔다. 간단히 오늘의 졸업식 순서를 소개하였다.

먼저 이 학교에서는 오랜 전통상 외부 연사를 초청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대신 졸업반 학생들이 졸업에 즈음하여 쓴 essay 중 가장 우수한 것 3편을 골라서 그 essay를 쓴 학생들로 하여금 각 낭독하게 하고, 끝으로 학생들이 자기들을 대표하여 가장 고별연설을 잘 할 것 같은 학생(Valedictorian)을 투표로 선발하였는데, 그 학생이 speech를 하고 졸업식이 끝난다고 하였다.

그 영예의 Valedictorian은 석휘와 음악상을 공동수상한 바로 그 여학생(Anna Jean Spackman)이었다.

학생들이 Essay를 읽으면서 졸업식이 진행되고 끝나는 이런 형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외부 연사를 초청해봤자 맨날 그게 그 소리이다. 졸업생들이 연사들의 말을 누가 귀담아 듣고 있겠는가.

그것보다는 자기의 친구가 자기들과 함께 보냈던 지난 4년간을 회고하면서 쓴 essay를 낭독하는 것을 듣는 것이 훨씬 가슴에 와 닿지 않겠는가.

'essay 3편 + 대표 학생'의 고별 연설로 이루어진 구성은 뭔가 문화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느껴진다. 정신없이 이것, 저것하는 것보다 좋은 글을 낭독하고, 듣는다는 것은 진정한 로망이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첫번째 학생을 소개하였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유학을 온 학생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 학생에 대하여 지난 4년 동안 선생님들이 성적표에 기재한 내용을 발췌하여 몇 개를 인용하였다. 선생님들이 성적표에 기재한 표현들이 매우 문학적인 것이 많았다. 그 학생은 이 번에 U. Penn.에 입학할 예정이고,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면서 소개가 끝났다.

키가 훌쩍 큰 그 학생은 좋은 목소리로 자기의 엣세이를 낭독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잘 못 알아 들었지만, 중간 중간에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것을 보면 유모어도 많이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그 학생의 낭독 중에 갑자기 석휘 이름이 나왔다. 나와 아내, 그리고, 석윤이는 그 부분에서 긴장하여 들었다. 기말시험까지 다 봐서 이제는 아무런 부담이 없어진 최근 어느날 저녁, 석휘와 함께 교정을 걸어 가면서 그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이 학교의 곳곳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새삼 눈을 뜨게 되었고, 그러자 그 전까지는 무심했던 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갑자기 매우 슬프게 느껴졌다는 그런 취지였다.

두번째는 여학생이었다. 이 여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들어 온 학생이었다. 자기 아버님과 어머님은,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이 힘들게 살아왔고, 본인은 그럴수록 자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 왔으나 어느 순간, 자기가 너무나 폐쇄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기 위하여 엄청난 용기를 내어야 하였다는 취지였는데 읽는 도중 여러 번 흐느껴서 장내를 숙연하게 하였다.

석휘 학교에서는 20%에 달하는 학생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Financial Aid를 받는다. 이 학교를 예전에 졸업하였던 선배들이, 또는 다른 독지가들이 이 학생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누가 Financial Aid를 받는 학생들인지 극비에 부치고 있으나 알게 모르게 알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창 예민할 때의 나이들이라서 남모르게 많은 고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번째도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Valedictorian이 나왔다. 어제 노래를 부를 때도 죤 바에즈가 부르듯이 깨끗함과 청순함을 느끼게 하였는데, 오늘의 분위기도 그렇다. 침착하고, 동정심이 있게 보이고, 겸손하게 느껴진다. 아니, 무엇보다 이 여학생을 특징 지을 수 있는 말은 ‘편안하게 느껴진다’라는 말일 것이다. 명석하지만, 온화한 분위기 말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이 여학생들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하였을 것이다.

시간이 한낮으로 갈수록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청중석에 앉아 있는 학부모들이나 단상에 있는 학생들이나 죽을 맛이었다. 일사병이라는 것이 이럴 때 걸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어서, 졸업생 하나, 하나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학생들이 연단으로 나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수여받고, 교장선생님과 가벼운 포옹을 한 후, 청중석을 향하여 손을 흔들거나, 덤블링을 하거나, 축구 선수 같은 세리머니 동작을 하면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석휘 차례였다. 석휘는 졸업장을 수여받은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청중석을 향하여 멈춰 서더니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정중하게 우리나라식의 인사를 하였다. 이날 석휘 같은 인사를 한 학생은 석휘가 유일하였다. 청중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중에 왜 그런 인사를 할 생각을 하였느냐고 물었다. 석휘는 ‘고마운 분들이 많으니까’라고 간단히 대답하였다.

졸업장 수여가 끝나고, 교장선생님의 간단한 훈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청중석에 이곳 저곳 흩어져서 앉아 있는 선생님들을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여 감사의 인사를 표하였다. 학생들이 환호를 지르면서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하였다. 이어서, 이 학교의 여러가지 서무를 도와주는 직원들, 고용인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 다음 교장선생님은, high standard를 강조하는 아주 간단한 speech를 하였다.

그것으로 졸업식이 끝났다. 학생들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남녀 학생 한쌍씩 팔장을 끼고, 부모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퇴장하였다.

4. 졸업식이 다 끝나고 학생들은 서로 껴앉으면서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은 대체로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더구나,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24시간 같이 생활을 하였으니 오죽 정이 들었겠는가. 물론, 미운 정도 포함해서일 것이다.

일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석휘가 거의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를 빼놓고는 석휘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자가 울면 악이고, 울지 않으면 선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축구선수 이운재가 음주파동 후 기자회견 때 흘리는 억지 눈물은 경멸스럽지만, 그런 것 말고는 우는 것은 남녀 불문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석휘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다. 아내는 석휘가 유치원 다닐 때도 유치원을 마치고 떠날 때 가슴을 쥐어 짜며 울었고, 어릴 때 전학 갈 때도 그렇게 슬프게 울었다고 하였다. 자식에 대해서는 확실히 엄마가 정확히 알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석휘는 나보다 훨씬 예민하다. 상처도 잘 받고, 평소 실력보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도 그 나이 때 그랬는지 모른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중, 고등학교 때도 평소 실력보다는 시험성적이 오히려 잘 나왔다. 임전무퇴의 정신이 강해서 그런 모양이다^^

석휘는 땀 범벅에다가 눈물 범벅까지 되어서 이 번에 아내가 사들고 온 새양복은 마치 비를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석휘 주변의 친구들이 석휘가 우는 모습을 보자 위로하다가 어떤 친구들은 덩달아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지긋지긋한 더위만 없었으면 보다 느긋하게 즐겼을 건데 너무 더우니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남학생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이더니 어디서 꺼냈는지 모두 시가 한 개씩을 들고 있었고, 그것에 불을 붙여서 피기 시작하였다. 이것도 구경거리였다. 아이들은 시가를 문 채 함께 사진도 찍었다. 전통이란다. 이 학교만의 전통인지, 미국 고등학교의 전통인지, 나는 모르겠으나.

5.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석휘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오늘 석휘는 기숙사에서 완전히 나가야 한다. 그 말은 짐을 남김없이 싸들고 나와 check-out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석휘는 짐을 다 싸놓았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그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석휘가 나타났다. 석휘를 데리고 그의 기숙사 방에 올라갔다. 기숙사는 모두 이사를 하느라 완전히 전쟁터였다.

그 조그만 기숙사 방에 웬 짐이 그렇게 많은지 끝도 없이 짐이 나왔다. 나와 석윤이는 석휘가 가방을 하나 싸면 그것을 들고 현관 입구에 세워 놓은 자동차에 날랐다.

문득, 예전에 대학시절에 하숙집 이사를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는 리어카를 빌려서 그 리어카 안에 모든 짐을 다 싣고 친구들과 함께 밀고 당겨서 옮겼다. 나와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재*이와 재*이가 그 때 동원되었고, 나도 그들의 이사를 도왔다. 우리 때는 리어카 하나에 책상과 의자, 이불까지 다 들어갔었는데...

석휘의 방짝인 Caith의 부모들과 남동생, 여동생도 모두 와서 짐 싸는 것을 도왔다.

Caith 식구들은 하나같이 말없이 착하다. Caith는 자기 짐을 다 내려보내고 난 후에는 옆 방의 친구들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또한, 석휘의 짐 중 가장 큰 것인 매트리스를 석휘의 대학 입학식 때까지 자기 집에 보관하여 주겠다고 하여 Caith의 아버지는 큰 차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가지고 갔다.

석휘는 졸업앨범을 받았는데 그 앨범의 여백에는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석휘에게 주는 간단한 편지를 써서 남겼고, 석휘의 친구들, 후배들도 모두 펜으로 휘갈겨 쓴 편지를 남겼다.

석휘의 담임선생님은 예쁜 포장지로 포장한 책을 선물하면서(포장지를 내가 뜯을 수 없어서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다.) 석휘에게 엽서를 보냈다. 그 내용이 재미있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선배들의 강요에 못이겨 Freshman 1년 내내 술에 절어서 보내는데 석휘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석휘와 함께 NYU에 입학하는 Cara를 통하여 석휘의 동태를 관찰하겠다는 취지였다.

6. 우리는 석휘가 대충 싼 짐을 자동차에 가득 채우고 호텔로 향하여 떠났다. 석휘는 호텔에서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친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갔다가 내일 아침에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몇 명이 가느냐고 물었더니 졸업생 거의 모두가 다 간다고 하였다. 아니, 도대체 집이 얼마나 크기에 100명이 넘는 졸업생이 다 갈 수 있는지 아연하였다. 그리고, 그 100명을 불러서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일 것인지, 참 대단한 부모라는 생각을 하였다.

석휘에게 우리 집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술이 약하니까 술을 많이 마시지 말고, 오바하지 말라고 하였다.

석휘는 요즘 일주일째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다고 하였다. 오늘만 밤샘하고 놀고 내일은 하루 종일 자야겠다고 하였다.

7. 호텔에서 석휘는 샤워를 하고, 우리 가족은 사발면으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석휘를 다시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석휘를 태워다 주러 가는 길에서 너무 졸렸다. 실제로 깜박 졸기도 하였다. 나도 미국에 온 이후로 하루에 세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하니 저녁 무렵에는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다가 거의 사발면으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 때문인지 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8. 호텔로 돌아오자 마자 저녁 7시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밤 10시쯤 되었다. 거실쪽으로 나와서 어제의 일기를 쓰고 있을 때 석윤이도 잠이 깨서 나왔다. 오후 4시쯤 사발면을 먹은 것이 전부라서 배가 고팠다. 석윤이도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석윤이는 사발면을 먹자고 하였다. 나는 이제 사발면을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하였더니 석윤이는 웃으면서 아빠 벌써 지치면 안되지 우리는 1년 내내 먹는데 하였다.

석윤이가 물을 끓이고, 우리 부자는 사발면을 맛있게 먹었다. 또 먹어도 맛있었다.



2008-06-09 오후 10:32:29


유재*


4년전 석휘를 기숙사에 두고 떠나는 차 안에서 석휘 엄마의 눈물을 보았었는데, 이번에는 4년간 정들었던 학교와 친구를 떠나는 석휘가 눈물을 흘렸구나. 인생에서 가장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고등학교를 떠나고 이제 새로운 시작의 첫 발을 내딛게 되는 석휘의 졸업을 축하한다.

토요일 엄청 더웠었지? 이곳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대부분 6월 이맘때 하는데 행사 내내 더위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사 하나 하나가 아주 의미있게 진행되기에 볼 만 하더구나.

어제(일요일)는 우리 교회 10주년 설립 기념 행사가 있었는데 내가 행사기획팀이다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사을 주관해야했기에 저녁 7시가 넘어서 끝나게 되어 너를 보지 못하였다. (저녁 8시가 지나면 너는 시차에, 더위에 헤롱헤롱 하였을테고...)

이제 오늘 가족과의 미국횡단여행이라는 장도에 오르게되는구나. 비록 날씨는 아주 덥지만 인생에서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구석 구석 잘 다니기를 바란다. (나도 미국에 오자마자 그런 여행을 생각은 했었는데 그만 7년이 지나면서도 한번도 실행하지 못하였네.)

지금 생각하면 16년전 온가족이 작은 차에 먹을 것 가득 싣고 영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서 약 한 달간 이곳 저곳 다녔던 여정이 인생에서 값진 추억으로 남아있네.

그럼 건강하게 다니면서 재미있는 얘기들을 이곳에서 기대할께.


2008-06-10 오후 2:58:34


양재*


섬세한 묘사로 머리속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듯하다. 백인거주지역을 여행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영화 장면을 통해 짜집기해야만 하지만 졸업식장의 광경이 잘 그려진다.

졸업식을 마치고 엉엉 우는 석휘의 모습에서 6개월 후에 있을 양원*석의 졸업식 모습을 생각해 보았지만, 우리가 그러했듯이 고교 졸업식장에서 우는 남고생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석휘의 눈물에서 남씨 집안 진화의 현장을 보는 듯하여 흐뭇하였고,

졸업식 모습에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아 클다송년회를 통해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손총무와 협의함은 물론이다.

지금 나는 주*씨가 완성한 답변서를 가지러 왔다가 광이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같은 컴퓨터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라도 제작자에 따라 품질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해 본다.

석휘의 졸업을 축하하고, 남씨네 미주대륙횡단 여행의 안녕도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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