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07)-6월 8일(일)
2008-06-10 오후 9:13:28
1. 한 달 이상을 여행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빨래였다. 양말이나 속내의는 호텔의 목욕탕에서 매일 빤다고 하더라도 다른 옷은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여름에 여행하는 우리로서는 옷이 땀에 젖기 쉽기 때문에 더욱 빨래가 문제가 될 터이었다. 또한, 양말이나 속옷을 호텔 목욕탕에서 빤다는 것은 말이 쉽지 피곤한 여행 일정에서 매우 번거로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빨래 후 말리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늘 간단히 해결되었다. 어젯밤 졸업 파티에 갔다가 아침에도 소식이 없는 석휘를 기다리던 중 아내가 호텔에 코인 세탁기가 설치되어 있는 세탁실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석윤이가 Front Desk에 전화를 해보니, 그런 세탁실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묵는 이런 중급 호텔은, 이런 면에서 매우 편리하다. 여러가지 Self-Service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방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 메이커가 비치되어 있고, 전기 스토브, 그릇 등 취사도구도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다가 Guest Laundry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아닌가.
며칠 사이에 밀린 빨래를 각자 가방에서 다 꺼내서 모았다. 아내가 세탁을 하러 가려 하기에 내가 세탁을 하고 오겠다고 자청했다. 나는 아직 집에서도 세탁기를 돌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동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동전 세탁기가 있는 세탁실에 세탁을 하러 가서 세탁기를 돌린 후 기다리다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장면을 자주 보아왔기에 코인 세탁기를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코인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있는 유경험자 석윤이를 앞세워서 빨래 뭉치를 한아름 들고 - 아내는 색깔이 있는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나누어서 두 뭉치로 빨래감을 만들어 주었다. - 1층에 있는 세탁실로 내려 갔다.
석윤이는 세탁실을 둘러보더니 2개는 세탁기고, 두개는 건조기라고 하였다. 세제도 사야 하고, 동전도 바꾸어 와야 한다고 프론트 데스크로 갔다.
잠시 후 담배갑 크기 두개 크기만한 1회용 detergent(세제)를 두개 사들고 왔다. 그러면서, 말도 안되게 비싸니까 나중에 슈퍼마켓에 가서 세제 한통을 사서 여행을 하자고 하였다. 아이들을 보딩스쿨에 보냈을 때 얻는 잇점 중의 하나는 스스로 빨래도 하고, 식기 세척도 하고, 짐도 꾸리고, 택시 예약도 하는 등, 생활독립인이 빨리 된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 자랐지만, "너는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가 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석윤이는 세탁기 뚜껑을 열고 색깔 있는 옷의 빨래 뭉치를 넣고 1회용 세제 종이 박스를 조심스럽게 뜯어서 빨래 뭉치 위에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25센트 동전 네개를 넣었다. 세탁기가 힘찬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석윤이에게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세탁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누구에게 배웠니?”하고 물어보았다. 석윤이는 나를 멀뚱멀뚱 보더니 “아니, 이런 간단한 것을 누구에게 배워? 저절로 아는 것이지” 하였다. '음, 그렇구나. 세상에는 저절로 알게되는 것이 많구나. 그런데 나는 매뉴얼을 통하여 뭐든지 배워야 하니 참 고달픈 인생이다'라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석윤이는 오락기로 오락을 하고, 나는 ‘달의 궁전’을 읽었다. 세탁실은 건조기의 열기 때문인지 몹시 더웠다.
조금 있다가 옆의 세탁기가 비어서 이 번에는 내가 직접 그 세탁기에 색깔 약한 옷의 빨래 뭉치를 넣고 세제를 골고루 뿌린 다음 25센트 짜리 동전 4개를 넣었다. 세탁기가 ‘윙~’ 소리를 내면서 작동을 시작하였다.
40분쯤 지났을까? 세탁기는 멈췄고, 석윤이는 세탁물을 꺼내서 옆에 있는 건조기에 넣었다. 세탁기의 뚜껑은 탈수기처럼 머리쪽에 있었다면, 건조기의 뚜껑은 정면의 배쪽에 있었다. 건조기 안에 방금 빨래 한 세탁물을 다 넣고 난 다음에 역시 동전 4개를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니까 건조기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면서 모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석윤이는 빨래 하는 것 보다 건조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였다.
석윤이 보고 이젠 나 혼자 할 수 있으니 방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기다렸다. 무려 1시간이 넘게 건조기는 돌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끝났다. 세탁물을 꺼냈다. 아주 기분 좋게 잘 말라 있었다.
기러기 아빠 시절에 처음으로 혼자 전기밥통으로 밥을 해 보고 난 후 세상에 밥하는 일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단 말인가하면서 여자가 밥을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 적이 있다. 오늘 세탁을 하면서, 세탁 역시 별 것이 아닌데 여자들이 가사 중노동 어쩌구 하면서 엄살을 피워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 빨래 뭉치에 대한 세탁과 건조도 마치고, 빨래 뭉치 두 개를 큰 쇼핑 백에 나누어 담아서 방으로 올라 갔다.
아내에게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 빨래는 전부 내가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아니 그 동안 이 정도 일 가지고 큰 소리를 쳐왔다는 말이냐 하는 소리는 물론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만한 자제력은 있으니까.
다만 아내에게 그것은 물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집에 건조기를 설치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하면 일일히 빨래를 말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아내는 건조기를 설치하려면 뜨거운 공기를 외부로 빼는 장치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아파트 구조상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전기값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글쎄, 빨래보다 말리는 작업이 더 번거롭고 힘든 점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 그 점에 대하여 우리나라 주부들이 편리함을 모르기 때문에 즉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석휘로부터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아내는 전화를 한 번 해보라고 하였으나 어제 밤늦게까지 놀고 늦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11시가 넘자 슬슬 걱정도 되었다. 문자를 보냈다. “뭐 하냐? 언제 오냐?”, 30분쯤 후에 답이 왔다. “12시 30분”
결국 석휘는 1시가 넘어서야 자기 학교로 돌아왔고, 우리 부부는 석휘를 학교에서 픽업하여 호텔로 데리고 왔다.
호텔로 가기 전에 처음으로 기름을 넣었는데 토요타는 대단하다. 한 번 기름을 넣고 560km를 뛰었다. 시내가 아니고 주로 하이웨이를 달렸으므로 연비가 좋았겠지만 그래도 미국차에 비교하면 대단한 연비이다. 토요타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졌다.
석휘에게 어제 재미 있었느냐고 물었다. 어제 이 번에 졸업한 친구들 80명, 그리고, 그 친구들이 데리고 온 친구들 40명, 합해서 120명이 함께 놀았다고 하였다.
도대체 120명이 어떻게 한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하였더니 집에 축구장까지 있는 저택이라고 하였다.(나는 테니스장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축구장까지 집에 있다는 것은 잘 상상히 가질 않았다.) 말(horse)도 있다고 하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유명한 햄버거 식당의 주방팀들이 그 날 저녁에 와서 햄버거 요리를 해 줬고, 아침에는 근처의 대형 식당에 모두 몰려가서 베이글로 아침을 먹었다고 하였다. 부모님도 계셨느냐고 하였더니 물론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1인당 5달러씩 내서 캔맥주를 샀다고 하였다. 아내는 “그렇게 다 해주는 부모님이 맥주는 왜 준비해놓지 않았을까?”하고 물었다. 석휘는 “이제 막 졸업한 아이들에게 술까지 provide하는 것은 이상하잖아”라고 하였다.
자기 아이들 친구 120명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이고, 밤새도록 놀게 하고, 아침에는 다 몰고 가서 아침을 사 주는 그 부모가 멋있게 보였다. 초대한 집의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착하다고 하였다.
어제도 30분 밖에 자지 않고 놀았다는 석휘를 보면서 이럴 때 부모가 늘 하는 대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공부를 그렇게 좀 해봐라’, 그러나, 아내와 나는 성숙한 부모인 척 하기 위하여 뻔한 대사를 하지 않고 잘 참았다.
호텔로 돌아와서 석휘가 기숙사에서 마구 쑤셔 넣은 짐을 정리하였다. 그 중 많은 부분은 옷이었는데, 세탁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당당히 내가 세탁을 해오겠다고 자청하였다. 석휘의 빨래 뭉치 두개를 역시 색깔 있는 옷, 색깔 없는 옷, 두 뭉치로 나누어서, 세탁실로 내려 갔다.
오전에 한 요령대로 세탁기의 뚜껑을 열고 세탁물을 골고루 넣고, 동전 4개를 넣은 후 막 스타트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갑가지 뒤에서 “아부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석윤이었다. 석윤이는 싱글싱글 웃더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였다. 손에는 1회용 세제가 들은 박스를 들고 있었다. 아, 나는, 스프를 넣지 않고 라면 끓이는 것 같은 실수를 범할 뻔 했던 것이다.
석윤이는 "물론 세탁기가 돌아간 이후에도 세제를 넣을 수도 있지만…”하면서 세제를 세탁물 위에 골고루 뿌렸다.
이후, 석윤이는 올라가고, 나는 ‘달의 궁전’을 마저 다 읽고(아쉬웠다), 노트북 컴퓨터로 일기를 쓰면서, 2시간 동안 세탁을 하였다. (아니 세탁기, 건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세탁실 안은 더워서 중간중간에 호텔 로비 등을 걸어다니면서 땀을 식혔다.
깨끗하게 세탁되고, 뽀송뽀송하게 말려진 세탁물을 들고 방으로 올라 갔다. 지금부터는 아내와 석휘가 정리하여야 한다. 이 번 여행 중에 가지고 다녀야 할 옷, 나중에 한국에 가져가야 할 옷, 여기에 놓아두었다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 기숙사에 가지고 갈 옷 등.
그 동안 나는 석윤이를 데리고 근처 맥도날도에 가서 햄버거를 사 왔다. 오래간만에 먹는 햄버거는 맛있었다.
석휘의 기숙사에서 뺀 짐 중 매트리스는 Caith가 맡아주기로 하였으나 나머지 짐은 어떻게 해야할지 곤란하다가 뉴욕의 아는 집에 맡기기로 하였다.
짐을 정리하고 난 후 석휘는 잠을 자기 시작하였고, 아내와 나, 석윤이는 한국 슈퍼마켓으로 향하였다. 아내는 인터넷을 통하여 필라델피아의 대형 한국 슈퍼마켓 두 군데를 찾아 냈고, 나는 재*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 두 군데 중 어느 곳이 나은지를 물어보았다.
오늘 재*이가 시간이 나면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재*이는 교회행사 때문에 어렵단다.
이렇게 필라델피아나 뉴욕에 자주 오게 되면 늘 갈등되는 일이 있다. 이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친구들이 섭섭해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전화를 하면 그 친구들 나름대로 이곳의 일상생활이 바쁠텐데 멀리서 온 친구를 만나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것 같고.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네비게이터(참고로, 미국 여행을 가실 분은 네비게이터 종류 중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GARMIN 제품을 쓰기 바란다. 아주 쓰기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그래픽도 좋다. GPS의 기능이야 어떤 제품이야 똑같겠지만, 사용자가 어떻게 편리하게 쓸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제품의 차별성이 결정되는데 GARMIN은 완벽하다. 참,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는 미국 갈 때 빌려달라고 해야지 하고 벌써 머리를 굴리고 계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해둔다. 대여불가이다)에 그 슈퍼마켓 주소를 입력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필라델피아는 큰 도시이다. 따라서, 한국인도 많다. 또한, 그래서, 한국인을 위한 대형 슈퍼마켓이 있다.
한달 동안의 여행 동안 매번 식당에서 사먹는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매 도시에 갈 때마다 일일히 한국식당을 찾아 다니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기밥솥 작은 것을 준비했고 오늘은 밑반찬을 사기 위해서한국 슈퍼마켓을 찾았다.
이곳에 온지 며칠 밖에 안되었는데도 한국 슈퍼마켓에 즐비해 있는 한국 음식들을 보니 다 먹고 싶었다.
적절히 밑반찬을 사고, Target에 들러서 아이스 박스를 사고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거리가 많아서이다. 미국에서 한 번 왔다갔다 하면 보통 60km 정도는 기본이다. 분당에서 일산까지의 거리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로망이 잘 되어 있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우리나라 같은 교통체증이 없어서 차의 속력을 고속으로 낼 수 있으므로 그렇게 멀리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었다. 꿀맛같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호텔 방안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경우 그 냄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한겨울이라도 창문을 한참 동안 열어놓아야 한다. 뒤에 오는 사람은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팁은 많이 주고 자원은 아끼려고 한다. 호텔 안에 있는 새수건들도 다 쓰지 않으려고 한다. 지구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는 것이 좋다. 호텔 요금을 제대로 다 주는데 왜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 기본적인 정리도 해야 하고, 수건도 최소한만 써야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아내와 아이들은 가끔 불만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기 것은 끔찍히 아끼면서도 남의 물건은 함부로 쓰는 사람들이다. 특히 미국에 있으면 이들의 낭비가 거슬릴 때가 많다. 자기의 돈을 쓰는 낭비는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므로 괜찮다. 그러나, 지구 자원을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여행 준비가 다 끝났다. 내일부터 드디어 시작하는 것이다.
2008-06-11 오후 12:54:24
(혜*)
세제를 넣지 않고 세탁기를 돌리는 실수를 하면서 "스프를 넣지 않고 라면을 끓이려는 실수를 할 뻔 했다"는 비유는 정말 압권입니다.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주는 일탈의 여유가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쥔장이 좋아하는 로망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문화는 여유의 산물이라더니 일상에서의 치열함보다 이런 글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부디 보람되고 안전한 여행되시길 기원하며 앞으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여행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