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14)-6월 15일(일)
2008-06-17 오후 10:28:47
곤하게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가 뭐해서 좀 더 자게 두었다. 10시쯤 호텔을 출발하게 되었다.
네비게이터는 목적지까지 5시간이 소요된다고 표시하였다. 오늘도 90번 하이웨이를 계속해서 타고 가야 한다.
미국 대륙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주에 따라 지형이 바뀐다는 점이다. 시간대도 바뀌고, 어떤 경우에는 계절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사우스 다코다 지역은 광활한 평원 지역이다. 거의 산이 보이지 않는다. 수십킬로미터 앞에서 비가 내릴 때는, 누가 물통을 높이 들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 보이듯이 짙은 먹구름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비를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차 안에서 MP3 음악을 차의 스피커에 연결하여 듣고 있다. 같은 노래를 또 듣고 또 들어도 지겹지도 않은지.
나도 이 번에 빅뱅이나 빅뱅의 멤버라는 태양이라는 가수를 알았다. 노래를 잘 부른다.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다. ‘나만 바라 봐’라는 노래는 가사도 재미있다.
계기판에는 엔진 오일을 교체하라는 경고등이 계속하여 들어 와 있었다. 이것 때문에 렌트카 회사를 찾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반면 그 때까지 차가 버틸 수 있을지도 불안하였다. 일단 내 돈으로 엔진 오일을 갈아 넣고 나중에 렌트카 회사에게 말하여 그 돈만큼 렌트비에서 빼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Mt. Rushmore 가기도 바쁘므로 하이웨이를 빠져나가 엔진 오일을 바꿔 줄 Auto Service를 찾으러 다닐 여유가 없었다. 내일까지는 이 문제를 잊기로 하였다.
한참을 달리다가 Rest Area에 들어가서 점심 먹을 준비를 하였다. 아내가 지시하는 대로 삼부자는 밥통과 밥그릇, 밑반찬이 들어 있는 아이스 박스를 Rest Area에 준비되어 있는 식탁으로 옮겼다. 그리고서는 다음에 어떻게 할지 몰라 모두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차에서 뭐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오면서 그 광경을 보더니, “어이, 삼부자, 그림처럼 앉아 있지만 말고 좀 움직이지.”하였다. 아이들은 뭔가 하려고 하였고 나도 그냥 앉아 있기는 미안하고 뭘 해야 할지는 몰라서 식탁 오른쪽 귀퉁이에 옮겨 있는 물병들은 식탁 왼쪽 귀퉁이로 모두 옮겼다. 아이들은 그런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말고 도움이 되는 동작을 하라고 말하며 킥킥 거렸다.
나와 석윤이는 코를 박고 배가 터질 때까지 허겁지겁 먹는다. 석휘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운 자제력을 보여 준다. 앞으로 밤 10시 이후에는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먹지 않겠고 특히 저녁에 인스턴트는 안 먹겠다고 선언하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축구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살이 찌면 안된다는 것이다. 석휘는 작년에 대학 스카우터로들부터 축구로 대학을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었다고 한다.
석윤이는 2학기 때부터 미식축구부에 들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슨 포지션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형제끼리 의논하다가 석윤이는 “귀찮으니까 그냥 매니저나 할까?”하였다. 매니저는 선수 운동 스케쥴을 짜고, 간식을 준비하는 등 일종의 서무역할을 하는 것이다.
석휘가 그 말을 듣더니 “남자 새끼가 무슨 매니저를 하냐?”하였다. 석윤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우리 학교는 남자 새끼가 할 수 밖에 없어” 하였다. 석윤이의 학교는 남학생만 있는 학교였던 것이다.^^
석휘에게 어떤 여학생이 남자 운동부 매니저를 하느냐고 물었다. 운동하기 싫은 여학생과 (매니저를 해도 운동 activity 점수를 준단다.) 운동부에 자기 남자 친구가 있는 여학생이 매니저를 한단다.
어느 순간 또 핸드폰의 시간이 일제히 바뀌었다. Mountain Time이 적용되었다. 오후 3시가 2시로 되었다. 1시간을 벌었다.
이곳 하이웨이를 달려보면 램프에서 진입해 오는 차량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들어온다. 나는 2차선으로 빠른 속도로 가고 있던 중 저 앞의 램프에서 차량이 머뭇 거리지 않고 그대로 우리 차의 진행방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하이빔이라도 쏘려고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태연하게 들어오기에 혹시 이곳의 관행이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않았다. 잘 참은 것이었다. 이곳의 관행은 램프에서 진입해오는 차량이 있으면 2차선에서 가던 차량이 알아서 1차선으로 비켜주는 것이었다.
드디어 러쉬모어가 있는 Rapid City에 도착하였다. 그 동안 산이 없고 온 사방에 지평선만 보이는 대평원만 계속 되더니 Rapid City에 가까이 올수록 저 멀리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Rapid City에 도착하였다. 러쉬모어가 있는 곳까지는 이곳에서 또 30마일을 더 가야 한다.
네비게이터는 러쉬모어로 가는 길을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가 가고있는 길을 길이 없는 들판으로 잘못 인식하면서 마구 re-calculating을 해댔다.
Rapid City에서 새로 이 길을 만든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온통 이곳은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곳곳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집들도 새로 짓고 있었다.
곰 공원이라든지, 파충류 공원이라든지, 뭐, 이런 theme park도 만들어져 있었다.
관광객을 본격적으로 끌어 모으겠다고 어떤 적극적인 시장이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사실 러쉬모어는 그 동안 그것만 달랑 보겠다고 그 벽지까지 가느냐는 인식이 미국 국내 관광객들에게도 팽배하여 있었다. “그것만 보려고 가기에는 멀다”라는 오명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러쉬모어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90번도로가 폐쇄되어 먼 길을 돌아온 것까지 포함하면 시카고에서부터 무려 2,000킬로미터를 달려 온 것이다.
러쉬모어 관람대의 주차장, 관람대까지의 진입로 등 모두 새것 냄새가 났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내셔널 트레져’의 속편이 이곳 러쉬모어를 배경으로 한 것도 Rapid City의 적극적인 홍보전략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러쉬모어 산에 새겨진 대통령 얼굴(조지 와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브라함 링컨, 테디 루스벨트) 조각상은 막상 직접 보면 그리 웅장하지 않다. 나즈막한 돌산인데 그 꼭대기의 화강암을 파내고 깎아서 얼굴 조각상을 만든 것이었다. 영화에서 이것을 보고 지나친 기대를 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다. 아이들도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시대에 저런 산에 저런 조각을 하겠다고 생각해 낸 조각가의 아이디어와 그 실행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러쉬모어 관람대 진입로에는 그 조각가의 흉상이 있었다. 그 흉상을 조각한 사람은 그 조각가의 친아들이다. 부전자전이다.
오늘은 마침 미국에서 Father's Day이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Father’s Day에 아버지에게 무엇을 해 줄 생각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것은 미국에서 정한 날이니까 한국인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가볍게 씹었다.
러쉬모어 산을 뒤로 하고 그곳으로부터 약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Devil’s Tower로 향하였다.
Devil’s Tower는 화산작용으로 생긴 엄청나게 큰 바위 덩어리이다. 옛날 셜록 홈즈 시대 때의 영국인들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면서 쓰고 다니던 높은 모자 모양이다. 200미터가 넘는 높이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rock climber에게는 좋은 도전코스일 것이다. 이렇게 밋밋하게 곧게 솟아 있는 바위 덩어리를 손과 발의 힘으로만 타고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취미도 다양한 별난 종자임에 틀림없다.
Devil’s Tower 주변 trail을 따라 한바퀴 돌았다. 2km 정도의 거리였다. 아내는 그 밑에 있는 Visitor Center에서 머물렀고, 삼부자는 모처럼의 운동 기회를 맞아서 신나게 걸었다. 워낙 운동부족이라서 이런 기회라도 반가웠다.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한다. Yellowstone 국립공원이다. 우리가 며칠 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미리 예약해놓은 모텔을 최종 목적지로 입력하니 네비게이터는 최종 목적지까지 10시간 거리라고 화면을 통해 알려줬다.
오늘 4시간쯤 가고, 내일 6시간 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저녁을 거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도중에 식당이 있는 Town이 나타나면 그 exit로 빠져 나가기로 하였다.
2시간쯤 가니까 아담한 town이 하이웨이 옆으로 보였다. 깨끗한 그 동네의 ‘Apple Bee’ family restaurant에서 저녁을 먹었다.
미국에서처럼 franchise가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없다. Apple Bee도 베니건스처럼 franchise인데 우리 같은 여행객은 그 franchise에 가면 최소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므로 매우 편안하다. 낯선 곳에 가서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가는 바가지를 쓸 수도 있고 메뉴가 형편없을 수도 있다.
호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철저히 Comfort Inn이나 Best Western Inn 같은 곳을 이용한다. 그런 경우에도 물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형편없는 시설일 수도 있고, 시설에 비하여 가격이 비쌀 때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Inn에 들어갈 때 겪을 수 있는 황당함에 비하여는 안전하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프랜차이즈 산업이 발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제도는 결국 한국으로 유입되게 되어 있다.
걱정은 내일 도착할 엘로스톤의 숙박시설이다. 시간에 쫓겨 대충 예약하였는데 그 위치가 어떤지, 시설이 어떤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름에 ‘모텔’이 들어간다. ‘모텔’은 대부분 시설이 형편없다. 모텔의 특징은 로비 라운지가 없다.
우리가 식사를 하러 들른 동네는 면도기 회사 이름인 ‘Gillete’ 라는 곳으로 작은 도시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동양사람들을 처음 본 듯 흘끔흘끔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는 물가가 쌌다. 가장 좋은 steak의 메뉴가 18달러 정도였다. 음식도 매우 맛있었다. 이 번 여행을 떠난 후 두 번째로 식당에서 제대로 밥을 먹었다.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할 수는 없다. 예산 초과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도 너무 빼앗긴다. 주방이나 웨이터나 모두 동작이 느린 미국인 식당에서 밥을 한 번 먹으면 꼬박 2시간 가까이 흘러간다.
식당을 나와서 1시간 정도 더 90번 West를 타고 달렸다. Buffalo라는 도시이다. 이 이름을 가진 도시는 미국에서 여러 곳 있는 것 같다.
가까운 곳에 Comfort Inn이 있어서 들렀으나 방이 없단다. 좀 헤매다가 Best Western Inn이 있어서 그곳에 check-in을 하였다. 방값이 시설에 비하여 터무니 없이 비쌌다. 아침식사도 따로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단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우리는 피곤하여서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다.
대충 정리하고, 사무실 직원과 skype로 통화하고, email을 체크하였다. client로부터 법률질의가 들어와 있었다. 내일 새벽에 처리하기로 하고 침대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