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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06. 2021

반(反) 직관적인 확률

직관에 반하다

경영학과 교수이면서 통계와 확률도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 몇 달 전 카톡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지금 카톡을 찾아보니 2021. 4. 9. 금요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게임 쇼가 있다. 문을 세 개 만들어 놓았다. 그 중 문 한 곳 뒤에는 황금열쇠가 있다. 사회자는 참가자에게 문 세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참가자는 1번 문을 선택하였다. 사회자는 3번 문을 열어 보였다. 뒤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황금열쇠는 1번 문 아니면 2번 문 뒤에 있다. 사회자는 참가자에게 선택 변경의 기회를 주었다. 참가자는 1번 문을 고수할 수도 있고, 2번 문으로 바꿀 수도 있다. 2번 문으로 바꾸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한가, 아닌가가 문제였다.


나는 처음에는 1번 문 뒤에 황금열쇠가 있을 확률이 1/3 이었는데 사회자가 3번 문이 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니 1번 문과 2번문의 확률이 모두 1/2로 똑같아졌고 따라서 1번 문의 선택을 고수하든, 2번 문으로 바꾸든 유, 불리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친구 유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사회자가 3번 문이 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순간 2번 문의 확률이 2/3가 되었으므로 참가자는 2번 문으로 선택을 바꾸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자가 3번 문이 꽝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난 다음에 새로운 참가자가 그 게임에 참가하였을 때 새로운 참가자에게는 1번 문의 확률과 2번 문의 확률이 똑같이 1/2이라고 하였다.


내가 질문을 하였다. 문이 100만 개 있다고 가정하자. 참가자가 그 중 750,000번 문을 선택하였다. 사회자는 880,000번 문을 열었다. 꽝이었다. 참가자에게 선택을 바꾸겠느냐고 물었다. 참가자는 선택을 고수하였다. 사회자는 이 번에는 215,888번 문을 열었다. 꽝이었다. 사회자는 참가자에게 물었다. 참가자는 처음에 선택한 750,000 번 문을 고수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사회자는 또다시 다른 문을 열어 보였고 꽝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하여 마침내 참가자가 처음에 선택한 750,000번  문과 사회자가 아직 열지않은 532,777번 문만 남았다.


유교수의 말을 따른다면 532,777번 문에 황금열쇠가 있을 확률은 999,999/1,000,000이 되므로 거의 100%다. 참가자가 532,777번의 문을 선택하고 그 문을 열면 황금열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참가자(참가자 1)는 그렇게 확률이 변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마지막 선택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사회자는 새로운 참가자(참가자 2)를 게임에 참여시켰다. 참가자 2에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하였다.


유교수의 위 설명에 따른다면 참가자 1에게는 532,777번 문에 황금열쇠가 있을 확률은 999,999/1,000,000이고, 750,000번 문에 있을 확률은 1/1,000,000이지만, 참가자 2에게는 문 두 개의 확률이 똑같이 1/2이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게 말이 되는가?


유교수는 진짜 그렇다고 했다. 참가자 1에게는 532,777번 문의 확률이 999,999/1,000,000이고, 참가자 2에게는 그 문의 확률이 1/2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조건부 확률이라고 설명하였다. 조건이 추가되면서 확률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직관(直觀)에 반하는 일은 과학에서 흔하다. 예를 들면 직관은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쉬운 예다. 그렇지만 다음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나는 오래 전에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쓴 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를 읽었다. 그는 자신의 초등학교 때 시절을 회상한다.


존경했던 선생님이 야외 학습을 나가서 "나무나 풀의 이파리 색들을 대부분 녹색으로 만들어 준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만일 붉은색으로 만들었다면 우리는 눈이 피곤해서 살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한다. 우리의 눈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신이 이파리 색깔을 녹색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자연에서 가장 많은 색깔인 녹색이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색깔은 원래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빛과 우리 인간의 감각 세포의 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태양 광선은 다양한 길이의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광선을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고 하는데 무지개 빛깔인 7색(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이 그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빛 자체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가시광선은 7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가시광선 중에는 빨강색 빛이 파장이 가장 길고 보라색 빛의 파장이 가장 짧다. '파장이 길다'라는 말은 골과 골 사이, 마루와 마루 사이가 길다는 말이다. 바다의 파도를 생각하라. 첫 파도와 두 번째 파도의 간격이 길 때 파장이 길다고 한다.


그 가시광선의 범위 바깥에 있는 것 중에 적외선, 자외선이라고 이름붙인 것이 있다. 적외선(赤外線)은 빨간 색 바깥에 있는(파장이 더 긴) 광선이라는 뜻이고 자외선(紫外線)은 보라색 바깥에 있는(파장이 더 짧은) 광선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은 사물에 부딪친 빛이 반사하여 우리 눈을 통하여 그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을 우리의 뇌가 영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이 없으면 우리는 볼 수 없다.


파장이 가장 긴 광선을 사람의 뇌세포는 빨강색이라고, 파장이 가장 짧은 광선을 보라색이라고 인식한다. 다른 동물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세포만 그렇게 인식한다. 따라서 개나 고양이는 같은 사과를 봐도 인간처럼 빨간 색을 느끼지 못한다.


빨간 사과가 빨간 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빨간 사과의 분자 구조가 태양의 빛다발 속에 있는 여러가지 파장의 광선 중 인간의 뇌(감각세포)가 빨간색이라고 인식하는 파장의 광선을 반사하고 나머지 다른 파장의 광선들을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원리를 이용하여 요즘에는 염색 공장에서 염료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낸다. 사물의 분자 구조를 바꾸면 흡수하는 빛과 반사하는 빛이 달라지므로 색깔도 바뀌는 것이다. 다른 동물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세포만 그렇게 인식한다.


히친스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직관에 의존한 무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직관을 믿으려고 하고 현명할수록 직관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하므로(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직관을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유교수의 확률 이야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똑 같은 문의 확률이 참가자 1에게는 999,999/1,000,000이 되고, 참가자 2에게는 그 문의 확률이 1/2이 된다는 말인가?


주말 동안 조건부 확률의 뜻에 대하여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는 것을 시작하여 계속 생각했다.


주사위 하나를 던졌을 때 6의 약수인 1, 2, 3, 6이 나오는 경우를 사건 A, 짝수인 2, 4, 6이 나오는 경우를 사건 B라 하자.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왔을 때, 그것이 6의 약수일 확률은 어떻게 구할까?


단순히 6의 약수가 나올 확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짝수가 나왔을 때’라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이렇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조건 하에 해당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조건부확률이라 한다. 즉 조건부확률은 사건 B가 일어났을 때 사건 A가 일어날 확률을 말한다. 확률이란 기본적으로 (특정 사건의 경우의 수)/(전체 사건의 경우의 수)로 계산되는데, 조건부확률은 분모의 전체 사건이 조건적인 사건이 되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사건 B가 전체 사건처럼 여겨진다.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조건부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條件附確率)]


나는 생각의 과정을 글로 정리하여 유교수에게 카톡으로 보냈고 유교수는 친절하고 끈기있게 내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주말 내내 미친듯이 생각했고 가끔은 “드디어 깨달았다”라고 환희의 미소를 짓고 열심히 글로 써내려가다가 “아, 이게 아니네.”하고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오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일요일 늦은 오후에 항복 선언을 했다. 내 직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에 부산의 어머님 댁에 갔다. 비가 몹시 왔다. 요즈음 나의 최애(最愛) 소설가는 이안 매큐언(Ian Russell McEwan)이다. 그의 소설을 모조리 찾아서 하나씩 읽고 있다. 쏴 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전자책 리더로 이안 매큐언의 스위트 투스(Sweet Tooth)를 읽고 있었다. 이 소설 또한 너무나 매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흥미진진하게 읽어가던 중 갑자기 유교수의 확률이야기가 등장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스위트 투스에서 남자 주인공인 톰은 소설가다. 여자 주인공인 세리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수학에는 흥미를 읽고 문학에 빠져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첩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톰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였지만 뛰어난 소설가인 톰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두사람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다가 톰은 그 동안 늘 자기만 이야기를 한 것이 미안했던지 세리나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특히 수학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세리나는 그 확률이야기를 해준다. 톰은 나처럼,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 확률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며칠 후 톰은 의기양양하게 그 확률을 소재로 ‘간통의 확률’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세리나에게 보낸다. “봐, 내가 드디어 이해하였어”라고 으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세리나는 톰이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안다. 세리나는 확률이론에 맞게끔 스스로 소설의 결말 부분을 고쳐 쓴다.


나는 이안 매큐언이 탁월하게 그려내는 이 장면을 보고 드디어 이 확률이론을 이해했다. 아직도 직관으로는 100%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였다. 흔히 하는 표현대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안 매큐언은 어느 수학 전공자에게 이 확률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며칠 간 고생했을 것이다.(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 사람이라고 별다른 사람은 아닐 것이므로.) 마침내 알았다고 하는 순간, 또 원점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완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이 왜 헤맸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헤매게 하는 포인트를 이해했던 것이다.


나는 유교수의 설명방식대로는 평생이 가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교수가 잘못 설명했다는 것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 설명하는 방식은 보편적으로 이런 문제를 가진다. 배우는 사람이 ‘전제조건’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그 전제조건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전제조건을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 전제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 글 뒤에 이어서 포스팅할 '반(反) 직관적인 확률-에필로그'에서 설명하겠다.


나는 법률개념에 대한 설명서를 쓰고 싶다. 좋은 설명서를 쓰기 위하여 강의를 하고 싶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떤 ‘전제조건’을 모르고 있는지 현장에서의 피드백을 통하여 알고 싶기 때문이다.


자, 이제 여러분들의 차례다. 아래에서 스위트 투스의 해당 부분을 발췌해서 옮겼다. 여러분들은 아래 내용을 읽으면서 이 매력적인 확률이론을 빠르게 이해하시길 바란다.


[Part 1]


톰이 짐짓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난 늘 당신한테 시와 소설 이야기를 하는데 당신은 나한테 수학에 대해 말한 적이 없어. 이제 때가 됐어.”


 “성적이 별로 안 좋았어.” 내가 말했다. “다 잊어버렸는걸”


 “그래도 안 돼. 난 꼭 듣고 싶어…. 재미있는, 아니, 반(反) 직관적이고 역설적인 걸로, 자긴 나한테 멋진 수학 이야기를 빚졌어.”


수학의 어떤 면도 내가 반직관적으로 여겨진 적이 없었다. 내게 수학은 이해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이었고, 케임브리지 이후로는 대개 후자였다. 하지만 나는 도전을 좋아했다. 내가 말했다. “몇 분만 시간을 줘.” 그래서 톰은 새로 산 전동타자기에 대해, 이제 얼마나 빨리 작업할 수 있는지를 얘기했다. 이윽고 나는 그에게 해 줄 이야기가 떠 올랐다.


“내가 케임브리지에 다닐 때 그곳 수학도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야. 아직 그 이야기를 글로 쓴 사람은 없을 거야. 확률에 관한 건데, 질문 형태로 되어 있어. <렛츠 메이크 어 딜>이라는 미국 퀴즈 프로그램에서 가져온 거야. 몇 년 전 그 프로그램 사회자는 몬티 홀이라는 남자였지. 당신이 몬티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나갔다고 가정해보자고. 당신 앞에 밀폐된 상자 세 개, 1번, 2번, 3번이 있고 그 상자 중 하나에 굉장한 상금이 들어 있어. 이릍테면…”


“고액의 연금을 주는 미녀.”


“바로 그거야. 몬티는 어떤 상자에 연금이 들어 있는지 알지만 당신은 몰라. 아무튼 선택해야 해. 당신이 1번 상자를 골랐고 아직 열어보진 않았어. 그 다음에 연금이 어느 상자에 있는지 아는 몬티가 빈 상자 하나를 열어. 그게 3번 상자라고 치자고. 그래서 당신은 고액의 평생연금이 당신이 고른 1번 상자 아니면 2번 상자에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돼. 이제 몬티가 당신한테 2번 상자로 바꿀지 아니면 1번 상자를 고수할지 선택할 기회를 줘. 연금이 어디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클까? 상자를 바꿔야 할까, 그대로 있어야 할까?”


웨이터가 은접시에 계산서를 들고 왔다. 톰이 지갑을 꺼내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와인과 샴페인을 꽤 마셨는데도 그는 정신이 말짱한 듯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랬다. 자신이 얼마나 술이 센지 서로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


“뻔하지. 우선 1번 상자를 골랐을 때 난 3분의 1의 가능성을 가진 거야. 3번 상자가 열린 다음에는 가능성이 2분의 1로 좁혀지고. 2번 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고액의 연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두 상자가 똑같지. 그러니 내가 선택을 바꾸건 안 바꾸건 차이가 없어. 세리나, 당신 말도 안 되게 아름답다.”


“고마워. 당신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을 거야. 하지만 당신의 선택은 잘못됐어. 다른 상자로 바꾸면 다시는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될 가능성이 두 배가 되니까.”


“말도 안 돼.”


나는 그가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식값이 30파운드 가까이 나왔다. 그가 20파운드를 팁으로 탁 소리나게 놓았고 얼마나 취했는지 그 엉성한 동작이 말해줬다. 내 주급보다 많은 액수였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연금이 든 상자를 골랐을 가능성은 여전히 3분의 1이야. 확률의 합은 1이 되어야 하지. 그래서 나머지 상자 두 개 중 하나에 연금이 들어 있을 확률은 3분의 2여야 하고. 3번이 빈 상자라는 게 확인되었으니 2번 상자에 연금이 들어 있을 확률은 3분의 2야.”


그는 내가 어느 극단주의 교파의 전도사라도 되는 양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몬티는 그 상자를 열어서 내게 추가로 정보를 준 거야. 내 확률은 3분의 1이었어. 이제 2분의 1이 된 거고.”


“그건 상자가 열린 후에 당신이 그 방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 나머지 두 상자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만 성립해. 그 때는 당신이 2분의 1의 확률을 갖는 거지.”


“세리나. 당신이 진실을 보지 못하다니 놀라워.”


나는 독특하고 색다른 종류의 기쁨을,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신 공간의 한 부분, 어쩌면 꽤 크다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에서 나는 톰보다 똑똑했다. 어찌나 이상해 보이던지. 내게는 간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 그의 이해력 밖에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 만일 당신이 처음에 선택을 잘해서 연금이 1번 상자에 들어 있다면 2번 상자로 바꾸는 건 잘못된 선택이지. 그 경우 확률은 3분의 1이고. 따라서 2번 상자로 바꾸는 게 잘못된 선택일 가능성은 3분의 1이고, 그렇다면 옳은 선택일 가능성은 3분의 2가 되는 거야.”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다 얼핏 진실을 보았지만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말했다.


“내가 맞다는 거 알아. 설명을 제대로 못할 뿐이지. 몬티라는 사람은 연금을 넣을 상자를 임의로 뽑았어. 연금이 들어 있을 수 있는 상자는 두 개 뿐이고, 따라서 그 두 상자는 같은 확률을 가져야 해.”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도로 털썩 앉았다. “머리를 써서 어지럽네.”


내가 말했다. “다른 접근법도 있어. 상자가 백만 개라고 가정해보자고. 규칙은 같아. 당신이 70만 번 상자를 고른다고 쳐. 몬티가 일렬로 늘어선 상자들을 여는데 다 비어 있어. 그는 매번 상금이 든 상자를 피했어. 이제 남은 상자는 당신이 고른 것과, 음, 95번 상자뿐이라고 쳐. 그럼 확률이 어떻게 되지?”


“똑같지.” 그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각각 50 대 50.”


나는 어린애 대하듯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톰, 당신 상자에 연금이 있을 확률은 백만분의 1이고, 그래서 연금은 남은 한 상자에 있을 게 거의 확실해.”


그는 이번에도 똑같이 순간적으로 깨달은 듯한 표정이 되었으나 깨달음은 이내 사라졌다. “음, 아냐,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내 말은 난… 실은 나 토할 것 같아.”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작별인사도 없이 황급히 웨이터들을 지나쳤다. 밖으로 따라 나가보니 그는 승용차 옆에서 몸을 숙이고 신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찬 공기 덕에 기운을 차려서 어쨌든 토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집을 향해 걸었다.


그가 그럭저럭 회복된 듯 보이자 나는 말했다. “카드를 이용해서 경험적으로 시험해 볼 수도 있어. 그럼 우린…”


“세리나, 자기야, 그만. 또 그 생각을 했다간 진짜 토할 거야.”


“반 직관적인 이야기를 해 달라며.”


“그래, 미안해. 다시는 그런 요구를 안 할게. 친(親) 직관적인 걸 고수하자.”


[Part 2]


사훌 후 그의 단편소설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원고 첫 장에 브라이턴의 웨스트 피어 엽서가 붙어 있고, 엽서 뒷면에 “내가 제대로 썼나?”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출근 전 추운 부엌에서 차를 마시면서 ‘간통의 확률’을 읽었다. 테리 몰은 런던에 사는 건축가로, 아이가 없는 그와 샐리의 결혼생활은 아내의 잇따른 바람으로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다. 직업도, 돌 볼 아이도 없고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부까지 둔 샐리는 무모하고 상습적인 불륜에 전념할 수 있다.


또한 날마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점심식사 전 위스키를 큰 잔으로 한두 잔씩 즐긴다. 한편, 테리는 십오 년도 되지 않아 헐릴 싸구려 고층 공영아파트 설계에 주 72시간씩 매달리고 있다. 


샐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과 밀회를 갖는다. 그녀는 모욕적일 정도로 뻔한 거짓말과 핑계를 꾸며대지만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회의 몇 개가 취소되자 그는 빈 시간을 이용해 아내를 미행하기로 한다. 슬픔과 질투가 그를 좀먹어가고 있었고, 비참함이 극에 달해 그녀를 떠날 결심을 굳힐 수 있도록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그녀는 세인트 올번스에 사는 이모에게 놀러간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빅토리아역으로 향하고, 테리는 그녀를 미행한다. 그녀가 브라이턴행 기차를 타자 그도 두 량 뒤에서 같은 기차에 오른다. 브라이턴에서 그는 그녀를 따라 스타인을 가로질러 켐프 타운 뒷골목으로 들어서고, 마침내 그녀는 어퍼 록 가든스에 있는 작은 호텔로 들어간다. 테리는 그녀가 호텔 로비에서 웬 남자와 만나는 광경을 바깥 보도에서 지켜보는데, 다행히 체구가 왜소하다.


그는 두 사람이 프런트에서 열쇠를 받아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호텔로 들어가 프런트 직원의 눈에 띄지 않고 - 그냥 못 본 척해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 계단을 오른다. 위쪽에서 그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5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층계참에 다다른다. 앞에는 501호, 502호, 503호밖에 없다.


그의 계획은 두 사람이 침대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내에게 망신을 주고 그 조그만 놈의 머리통을 갈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느 방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안에서 소리가 새어나오기를 바라며 층계참에 조용히 서 있다. 신음이든 비명이든 침대 스프링의 삐걱거림이든 무슨 소리라도 들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501호로 결정한다. 문이 얇아서 날아차기 한 방이면 열릴 것이다. 문을 향해 달려가려고 뒤로 물러서는데 503호 문이 열리고 구개열(口蓋裂) 아기를 안은 인도인 부부가 나온다. 그들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간다.


그들이 떠난 후 테리는 망설인다. 건축가이자 아마추어 수학가이기도 한 그는 숫자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 그는 급히 계산한다. 아내가 501호에 있을 확률은 3분의 1이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그녀가 502호나 503호에 있을 확률은 3분의 2였다. 그런데 이제 503호가 비었으니 그녀가 502호에 있을 확률은 3분의 2가 된다. 그 엄격한 확률 법칙은 불변의 진리이므로 첫번째 선택을 고수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그는 502호를 향해 달려가서 공중으로 날아올라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그들이 침대에서 알몸으로 그 짓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남자의 따귀를 때리고 아내에게 차가운 경멸의 눈길을 던진 후 런던으로 떠난다. 런던에서 이혼소송을 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Part 3]


나 때문에 그가 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했다. 그의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고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무가치하다고 어떻게 그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나도 부분적으로는 책임이 있는데.


503호에서 인도인 부부가 나왔다고 502호의 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내게 간단하고 자명한 이치가 그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인도인 부부는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몬티 홀이 했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다.


몬티의 선택은 프로그램 참가자에 의해 제약되고 결정된 것인 데 반해 인도인 부부의 등장은 임의적인 것이다. 몬티는 임의의 선택자로 대체될 수 없다. 설령 테리가 503호를 선택했다 해도 인도인 부부와 아기는 다른 문으로 나오기 위해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마술을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나온 후 테리의 아내는 똑같은 확률로 501호나 502호에 있게 된다. 그러니 처음 선택한 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지난 주말 레스토랑에서 했던 얘기가 또렷이 기억났다. 나는 톰에게 몬티가 임의로 빈 상자를 골랐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3분의 2의 확률은 성립될 수 없었다. 퀴즈에서 몬티는 참가자가 선택하지 않은 빈 상자만 고를 수 있다.


참가자가 빈 상자를 고를 확률은 3분의 2다. 그 경우 몬티가 고를 수 있는 상자는 하나뿐이다. 참가자가 선택을 잘해서 연금이 든 상자를 골랐을 경우에만 몬티는 빈 상자 두 개 중 하나를 임의로 고를 수 있게 된다. 물론 나는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실패한 단편소설이었고 내 탓이었다. 톰은 내게서 운(運)이 퀴즈 프로그램 진행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내게는 방안이 있었다. 톰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고쳐쓰면 될지, 어떻게 테리가 아내와 다른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확률이 두 배인 방으로 쳐들어가게 만들 수 있을지 알았다. 우선 구개열 아기를 안은 인도인 부부를 삭제했다. 그들은 매력적이긴 하나 이 드라마에서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대신, 테리는 501호로 뛰어들기 위해 뒤로 몇발짝 물러서다가 아래층 층계참에서 객실청소부 둘이 떠드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청소부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한 청소부가 "위층에 잠깐 들러서 빈방 두 개 중 하나를 청소할게"라고 말한다. 그러자 다른 청소부가 대꾸한다. "조심해, 그 커플이 늘 묵는 방에 있으니까." 두사람은 다 안다는 듯 웃는다.


테리가 청소부가 계단을 올라오는 기척을 듣는다. 실력 있는 아마츄어 수학자인 그는 자신에게 굉장한 기회가 주어졌음을 깨닫는다. 신속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가 세 방 중 하나 - 501호가 될 것이다 - 의 문 앞에 가서 서 있으면 청소부는 나머지 두 방 중 하나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녀는 그 커플이 어디 있는지 안다.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손님이거나 아니면 그 커플의 친구로 그들의 방에서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가 어떤 방을 선택하든 테리는 다른 방을 선택하여 확률을 두 배로 높일 수 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구개열인 그 청소부는 테리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후 503호로 들아간다. 테리는 결정을 바꾸어 502호로 뛰어들고 거기서 그들, 샐리와 남자의 불륜 현장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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