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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02. 2021

해가 되는 행위

1. 정치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같은 편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편에게는 어차피 설득이 안될 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사게 된다.


가수나 연예인, 배우가 적극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힌다면 지지층에게는 더욱 인기를 끌겠지만 반대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예 그 가수의 노래를 안 듣고, 그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안보고, 그 연예인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리게 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호감을 가지고 블로그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정치에 관한 열변이 나오고 그 정치적 견해가 본인과 맞지 않으면 그 블로그를 아예 안 들어가게 된다. 기분 잡치는 것이다.


나도 요즘은 나라 걱정이 된다. 특히 내가 관여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실제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 입닫고 생산적인 활동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2. 자기 자랑


자기 자랑은 자기를 알아달라는 목적에서 한다. 따라서 자기 자랑이 끝나면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야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더 많다.


나를 소개하고 알려야 할 때는 있다. 결과적으로 자기자랑이 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fact에 충실해야 한다. 과장하는 순간 상대방은 본능적으로 안다. (2)보통 사람들을 할 수 없는 일을 했어야 한다.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을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떠벌리면 유치한 자기 자랑이 된다. 갑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주로 하는 일이 자기 자랑이다. 을은 영혼없이 들어준다. 갑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랑을 하고 싶을 때는 내가 갑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3. 공감요청


카카오톡이 생긴 후 '공유'가 쉬워졌다. 내가 본 유튜브, 내가 읽은 글, 내가 들은 음악, 내가 본 경치에 감동을 받으면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링크나 사진을 보낸다. 그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카카오톡에 공유 기능이 있다고 해서 감동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생뚱맞을 수 있다.


감동은 주관적인 상황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 노래에 대한 자기만의 추억이 있는데 그 노래를 오래간만에 듣게 되니까 물밀듯한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상대방에게는 그저 노래일 뿐이다.


골프 레슨 동영상을 보고 이거다!!! 하고 무릎을 친다. 즉시 친구에게 보낸다. 친구는 나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 그 동영상에 흥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4. 컴플렉스


컴플렉스 때문에 공연히 상대방이 싫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없이 골프 이야기를 하는데, 골프가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자신이 골프를 칠 형편이 안된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 상대방은 잘난체 하려는 것도 아니고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골프를 치지 않으니까 나를 배려해서 골프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려심이 없는 처사였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배려를 하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당신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상대방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잘난체 하기 위하여, 또는 당신을 무시하기 위하여 떠들어 댄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화가 날 때는 본인의 컴플렉스 때문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한다.


5. 일반화


일반화가 습관이 된 사람이 있다. "중국사람은 다 그래" 라는 식이다. 미국을 싫어하는 좌파는 미국의 매 행동이 노림수라고 보고, 미국에 우호적인 우파는 그래도 미국이 제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일반화의 유형에 속한다.


일반화가 모두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어차피 확률게임이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을 확률보다 아파트가 무너져서 죽을 확률이 훨씬 적기 때문에 밤새 큰 걱정없이 고층 아파트에서 잘 수 있다. 일반화는 확률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유용한 면이 있다.


그런데,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는 연세대 의대를 나온 의사보다 실력이 더 나을까? 낫다면 얼마만큼 을까? 서울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보다 실력이 더 좋을까? 좋다면 얼마만큼 좋을까?


사람들은 세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서울대 의대, 서울대 법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사법시험에 늦은 나이에 합격하면 재학 중에 합격한 사람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은 머리가 나쁘기 보다는 공부하기 싫어했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가 문제였던 것이다.


학벌에 목매고, 지역감정이 팽배한 이유도 맹목적인 일반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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