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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Aug 27. 2021

변사또는 검사인가, 판사인가.

거나하게 취한 친구가 물었다. “오해하지 말고 듣거라. 검사일 때는 범죄인을 잡아넣던 사람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갑자기 범죄인을 변호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술자리에서 짧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서 훗날에 글로 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우선, 왜 검사, 변호사, 판사를 나누어 놓았는지부터 설명을 시작하려고 한다.


춘향전에는 고약한 변사또가 등장한다. 변사또는 수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춘향이를 체포한 후 문초한다. 춘향이는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서 옥살이를 한다. 변사또는 검사인가, 판사인가? 춘향이를 위한 변호사는 그 때 있었는가?


정답을 말하면 변사또는 검사와 판사를 겸했다. 검사 역할도 했고 판사 역할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 시절에 변호사라는 직역은 없었다.


지금처럼 정교한 법체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법률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소추(訴追)하는 직책과 심판하는 직책을 나누게 된 것, 즉 ‘소추와 심판의 분리’가 확립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검사가 길을 걷다가 취객에게 갑자기 구타를 당하는 봉변을 당했다. 검사는 그 취객을 법의 힘을 빌려 혼내 주고 싶다. 구속해서 재판을 받게 하고 싶으며 벌금이 아니라 실형을 살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구속을 하고 싶어도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해줘야 하고, 실형을 살게 하고 싶어도 판사가 실형을 선고해줘야 한다.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 실형을 선고해 달라고 의견 진술(구형)을 하는 것에 그친다.


이 번에는 판사가 길을 걷다가 취객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했다. 분개한 판사는 그 취객을 구속해서 재판을 받게 한 후 실형을 선고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구속을 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해줘야 하고, 실형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기소(공소제기)를 해줘야 한다.


아직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법률가 입장에서는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엉터리 수사, 재판 장면이 등장한다. 유족이 반대해서 부검을 할 수 없다라는 장면 같은 것이다. 유족이 범인일 수도 있으니까 부검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유족이 반대한다고 부검을 하지 못하겠는가. 하기야 시위 중에 사망하든지, 그런 비슷한 상황에서 유족이 반대하여 부검 영장(검증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니 작가가 그렇게 믿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소추와 심판이 분리되어 있는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재판 중에 증인이 범인인 것이 밝혀지고 즉석에서 판사가 증인을 살인죄로 체포하고 감방에 보내는 장면 같은 것은 더 이상 안 나오길 바란다.


소추와 심판을 분리한 이유는 변사또 같은 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남용되기 마련이므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부단히 연구해야 한다. 사법절차에서 소추와 심판을 분리시킨 것도 그러한 연구의 산물이다.


이 번에는 프로골퍼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는 클라이언트였다.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궁금해했다. “골프 룰은 경기위원이 해석해 주면 그대로 따르면 되는데 왜 법은 검사, 변호사가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가요?”


골프 룰이 적용되는 상황은 경우의 수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세상은 훨씬 복잡하다.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게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률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입법되고, 추상적인 표현이므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형법 298조는 강제추행범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어떤 행위를 추행으로 볼 것인지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자기의 정액이 담긴 콘돔을 여자의 가방에 슬쩍 던져 넣은 홍길동을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것이 아니므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고, 결국 그 가방 주인을 겨냥하여 한 행위이므로 강제추행죄가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으므로 강제추행죄가 안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고 정액이  콘돔을 가방에 던져 넣는 행위 자체가 폭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검사는 홍길동에게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기소하고, 변호사는 홍길동의 행위는 강제추행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변호한다. 홍길동이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죄형법정주의는 도덕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하여 형사처벌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사람을 감방에 보내는 세상이 오지 않게 하려면 홍길동 같은 자 수백명이 무죄로 방면되는 한이 있더라도 죄형법정주의는 반드시 수호되어야 하는 대원칙이다.


검사와 변호사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증거에 대한 판단이다. CCTV로 살인현장이 명백하게 촬영되어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있을 수 없다. 이럴 때 변호사가 선임된다면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상(情狀) 변론 밖에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실제 살인 사건에서는 CCTV 같은 명백한 직접증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직접증거가 있다면 피고인도 당연히 진작 자백하였을 것이다.


10년전쯤에 낙지 살인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피해자는 21살의 여성이다. 남자는 여자를 사망보험에 들게 한다. 여자가 사고로 사망하면 2억원의 보험금을 받게 되는 보험수익자는 처음에는 여자의 법정상속인이었지만 여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남자로 변경된다. 남자는 남편이 아니다. 단지 여자의 남자친구일 뿐이다. 오래 사귄 사이도 아니었다. 보험에 가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남자와 여자는 같이 술을 마신다. 모텔에 들어가 술을 더 마시기로 하고 낙지를 통으로 산다. 새벽에 남자는 다급하게 119를 부른다. 여자가 통낙지를 먹다가 목에 낙지 조각이 걸려서 숨을 못 쉰다는 것이다. 여자는 의식을 잃었고 며칠 후에 사망한다. 남자는 여러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귀고 있었으며 그 여자들의 명의를 이용하여 대출을 받는가 하면, 자기에게 자동차를 산 사람이 아직 명의를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자동차를 몰래 가지고 오기도 한다. 강도예비죄로 실형 6개월을 복역한 전과도 있다. 한마디로 품성이 불량한 자이다.


첫 재판에서는 남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수건 같은 천으로 만취 상태에 있는 여자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켜 죽여놓고 낙지를 먹다가 질식한 것처럼 꾸몄다고 사실관계를 파악하였다. 그렇게 파악하게 된 이유를 여러가지 들었다. 만일 통낙지를 먹다가 목에 걸렸으면 그것을 뱉어내기 위하여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을 것인데 반듯하게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된 점 등이 그 예이다. 여자의 목에 걸려 있는 낙지가 없었다는 점도 유죄인정의 근거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남자는 자기가 손가락으로 여자의 목에서 낙지 조각을 빼냈다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남자의 말을 거짓으로 봤다. 물론 일시적으로 사귀고 있던 사람에 불과한 남자가 보험수익자로 변경되었고 그 변경 이후 얼마되지 않아 여자가 사망한 점이 살인죄를 인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살인죄를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충분히 수긍이 가고 남자의 악행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러나 고등법원에서는 남자가 살인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공소사실처럼 남자가 여자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켜 사망하게 하였다면 여자가 격렬히 저항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났어야 하는데 그런 상처가 없었다는 것 등이 무죄 판단의 이유였다.


남자가 살인 용의자가 된 것은 여자가 사망보험을 가입하였고 보험수익자가 남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인데 그 때는 이미 여자가 사망하고 화장까지 끝난 후였다. 제대로 된 검시도 없었고 부검도 없었다. 고등법원에서 여자의 얼굴에 상처(반항 흔적)가 없었다고 본 근거는 여자가 의식을 잃은 후 사망하기 전까지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의 진술 등이었다. 당시에 얼굴의 상처가 중요한 관심사항이 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의사가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을 가능성도 없었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제대로 기억할 리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무죄판단의 근거로 판결문에 설시된 다른 내용을 보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남자에 대한 무죄가 확정이 됐다.


피해자는 죽어서 말을 할 수 없고 살아 있는 자는 진실을 이야기할 리가 없다. 결국 여러가지 간접사실을 놓고 검사, 변호사, 판사는 각자 상상을 하여 실제 일어났었던 일을 재구성할 뿐이다. 이 때의 상상은 창의적 상상이 아니라 논리적 상상이다.


검사는 수사를 하면서 수집한 증거가 살인을 가리킨다고 판단하면서 판사를 설득하려고 하고 변호사는 그 증거는 살인을 확신케하는 증거가 될 수 없거나 오히려 무죄의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반박한다.


가장 흔한 예는, 남자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여자는 강제로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다. 서로 주고받은 카톡이 있는데 그 카톡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관하여 검사와 변호사는 완전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사건 수임을 거절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중 하나는 대학생 몇 명이 밴을 훔쳐서 밤늦은 시간에 주택가에 잠복해 있다가 귀가하는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강간을 한 사건이다. 같은 수법으로 여러 번 했다가 검거되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변호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불량품을 만든 조물주를 탓하던가, DNA가 잘못되었다고 진화과정을 공격해야 하는데 법정에서 받아들여줄 리 만무하다. 이처럼 명백하게 나쁜 범행을 한 자들에 대하여는 사실 변호사가 할 일이 없다.


또 하나는 뺑소니 운전을 했는데 본인이 모두 자백을 하는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은 변호사 선임을 할 돈으로 피해자에게 넉넉히 보상하고 합의하라는 조언 밖에 할 것이 없다.


이제 요약하여 친구의 질문에 답을 하려고 한다. 완전히 나쁜 사람, 완전히 좋은 사람으로 구별되어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김철수가 한 A라는 행위는 선행이고, 그 다음 날 김철수가 한 B라는 행위는 악행일 수 있다. 또한 악행이라도 관점에 따라 이해할 여지가 있기도 하다. 아버지를 죽인 자는 패륜이므로 보통의 살인죄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죽하였으면 아버지를 죽였을까 하는 사정도 있을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에 의할 때 법률의 해석에 따라 유, 무죄가 엇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검사, 변호사, 판사로 나눈 이유는, 권력의 분점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편견 배제를 위해서이다. 수사를 하다 보면 검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피의자의 말은 모두 간악한 변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피해자가 모두 꾸며낸 거짓말일 수도 있다. 오래 전에 유명한 개그맨이 자기 소유의 벤츠 승용차에서 여대생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구속까지 되었고, 거액의 돈으로 합의금을 지급한 다음에 1심에서 집행유예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 여대생은 이른바 꽃뱀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그맨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그 여대생은 무고죄로 기소되었다.


어떤 사람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임직원이 100명쯤 되는 중소기업의 오너가 앞으로 우리 회사의 직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은 모두 내게 들고와라,  공정한 판단을 해주겠다고 선언했다고 치자, 그 오너는 일류 대학을 나왔고 인격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자. 그래도 그 오너가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을 다 하는 것 보다는 검사 역할을 할 상무, 변호사 역할을 할 전무를 두고 본인은 판사 역할만 할 때 더 현명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한다고, 지나가는 여성을 납치하여 훔친 밴에서 상습적으로 강간하는, 어떻게 보아도 나쁜 인간들에 대한 도덕적 감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사의 역할과 변호사의 역할이 엄연히 다른 것이고, 달라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변호사가 되면 변호사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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