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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Feb 12. 2023

검찰 개혁은 잘한 일일까? (3)

검찰개혁 이후 바뀌게 된 수사 과정

형사사건은 고소 사건과 인지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


고소 사건은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하여 수사가 시작되는 사건이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신고할 때는 고발 사건이 되고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고 전화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세세한 구별은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하자.


인지(認知) 사건은 수사기관이 여러가지 경로로 범죄정보를 입수하여 수사가 시작되는 사건이다. 뇌물사건, 마약사건 같은 경우다. 검찰개혁이 범죄피해를 입은 개별적인 국민(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목적인 이 글에서는 인지사건도 논외로 두기로 하자.


2021. 1. 1. 이전에는 수사가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범죄를 당했을 때 피해자는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할 수도 있고 검찰청에 제출할 수도 있다. 검찰청에 제출하면 검사는 그 고소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보내서 수사를 하라고 지휘할수도 있다.


경찰은 수사를 하고 검찰에 사건기록을 송치한다. 검찰 조직은 형사부, 특수부, 공안부, 공판부 등으로 구성되는데 형사부에 배치되는 검사들의 숫자가 가장 많다. 형사부 검사들의 임무는 경찰에서 송치되는 사건들의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기소, 불기소를 결정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자백하고 보강증거도 있는 사건, 사건내용이 단순하고 경찰에서 필요한 조사를 다 한 사건 등에 대해서는 검사가 추가조사를 하지 않는다. 혐의유무가 경찰조사만으로는 판단이 잘 안되는 사건은 검사가 관련자(고소인, 참고인, 피의자)를 소환조사 하는 등, 추가조사를 한다.


조사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검사는 기소를 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한다. 기소를 할 때는 공소장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불기소 처분을 할 때는 불기소 처분을 하는 이유를 기재한 불기소 결정문을 작성하고 고소인에게 불기소 사실을 통지한다.


불기소 처분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명예훼손)인데 고소인이 고소취소를 하는 경우,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등은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한다. 가장 많은 것은 무혐의 처분이다.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기소하는데 증거가 불충분한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혐의가 없는 것이 수사결과 밝혀졌는데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식으로 무혐의 처분 이유를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이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피고소인이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는데 결정문만 보면 마치 죄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기소가 안되었던 것처럼 제3자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부 검사의 임무는 고되다. 많은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추가조사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매우 복잡한 사건인 경우에 무혐의 결정문을 쓰는 일은 특히 진을 빠지게 한다.


경찰은 수사를 마치면 의견서를 작성한다. 의견서에는 이러이러한 증거와 고소인 및 참고인의 진술에 의할 때 범죄 혐의가 인정되므로 기소하는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는 기소의견 또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고소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참고인의 진술도 피의자의 변명에 부합하므로 불기소 처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는 불기소 의견이 기재된다.


검사는 그 의견에 구애받지 않는다. 검사의 수중에 사건기록이 오면 검사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여 기소, 불기소를 결정한다. 따라서 경찰도 의견서 작성에 그리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 조사도 완벽을 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최종적으로는 검사가 사건처리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검사가 수사의 최종책임자가 되므로 필요하면 검사가 추가조사를 하겠지 하는 것이고, 무혐의 결정문도 검사가 작성한 것이 고소인에게 통지되는 것이므로 대충 쓰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일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검사가 불기소처분을 할 때 “무혐의 이유는 사법경찰관이 의견서에 기재한 이유와 같다”라고 쓰는 관행이 슬그머니 생겼다. 고소를 대리한 변호사는 그런 의견서를 받아보면 열불이 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를 내용이 쓰여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식이 있는 검사는 무혐의 이유를 직접 작성한다.


이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고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2021. 1. 1. 이후에 수사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자.


가장 큰 변화는 수사의 주재자는 명실공히 경찰이 되었다는 점이다. 앞의 글에서 보았다시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검사는 외국처럼 정부의 소송대리인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일부 사건의 경우에 검사가 여전히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그 사건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으므로 검사들이 맹렬히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건은 일부에 불과하다.


모든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게 됨으로써 경찰의 수사인력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다. 경찰의 수뇌부는 드디어 우리가 검찰에게 지휘를 받는 굴욕적인 지위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했을지는 모르지만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대충 수사하고 대충 의견서를 작성해서 검찰에 송치하면 검사들이 알아서 했는데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이 수사를 하고 나아가 무혐의 결정 이유까지 제대로 작성하여야 하니 죽을 맛이 됐다. 또한 예전에는 제법 많은 고소사건을 검사가 직접 수사하였는데 이제는 전부 경찰이 떠안게 되니 사건이 넘쳐난다. 고깃집으로 비유하면 예전에는 경찰은 초벌구이만 하고 그것을 검찰에 넘기고 검찰은 선별해서 고기를 섬세하게 더 굽든가 하였는데 이제는 경찰이 완전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고기를 구워내고 검찰은 젓가락만 들고 앉아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러자 경찰은 희한한 편법을 취하기도 하였다. 고소사건의 접수를 사실상 거부하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대리하지 않고 일반인이 작성하여 오는 고소장은, 때로는 변호사가 작성한 고소장도, 고소내용을 보니까 어차피 수사해도 형사처벌 대상이 안될 것 같다는 이유로 고소장을 반려시키는 것이다. 특히 사기 고소사건의 경우에 그렇게 많이 했다. 나중에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등 문제가 되자 지금은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사건 접수 거부는 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 즉 일반국민에게는 어떤 피해로 귀결되는가? 엄청난 수사 지연이다. 간단한 명예훼손 사건 같은 것도 수사결과가 나오는데까지 1년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다. 검찰 인력과 검찰의 수사역량을 묶어 놓고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것이 검찰개혁의 가장 큰 폐해다. 물론 그래도 검찰 공무원에 대한 월급은 그대로 꼬박꼬박 지급된다.


경찰에서는 어떻게든 일을 줄이려고 하다 보니까 고소인이 여러 사람들을 고소하고 피고소인들의 주거지가 서울 각 지방에 흩어져 있으면 자기 관할에 거주하는 피고소인만 조사한 후 다른 관할 경찰서로 그 사건을 이송한다. 또한 참고인이 다른 경찰서 관할에 있다는 이유로 그 경찰서에 이송해서 참고인 조사를 한 후 다시 보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법률에 피고소인의 주거지를 관할하는 경찰서만 수사할 수 있다는 근거조항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한편 이제 경찰은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수사종결 권한은 사실 엄청나게 막강하고 무서운 권한이다.


잘못 기소된 피고인은 3번의 재판을 받을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죄를 받아 억울함을 풀 수가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기소되지 않고 수사가 종결되면 달리 호소할 방법이 없다. 범죄피해가 크고 가해자가 악질적인 사람이라면 피해자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에서도 경찰의 불송치 결정(무혐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게 규정되어 있다. 고소인은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하여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사건기록은 검사에게 송치되고 검사는 필요한 수사를 할 수 있다. 또한 이의신청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기록은 일단 검사에게 송부되어 검사가 90일 이내에 재검토를 한 후 만일 불송치결정에 위법 또는 부당한 사유를 발견하였을 때는 경찰에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예전에는 검사가 수사의 최종책임자이므로 경찰은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여야 하고 검사가 추가조사를 직접해서 범죄입증을 하였는데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경찰에게 “다시 수사해봐주실래요”라는 식으로 되었다. 경찰은 재수사한 후 다시 불송치결정을 할 수가 있다. 여기에 관한 세부적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규정되어 있다.


경찰의 수사능력이나 검찰의 수사능력이나 차이가 없다면 경찰의 재수사 결과를 믿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경찰의 수사능력이나 검사의 수사능력에 차이가 없는 것일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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