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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Feb 17. 2023

검찰 개혁은 잘한 일일까? (4)

경찰수사와 검찰수사의 차이

드라마나 영화의 절반 정도는 범죄수사와 법정공방을 소재로 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범죄의 종류는 대부분 살인 사건이다. 신문에서도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범죄 보도가 많다. 그래서 일반국민들은 범죄라고 하면 살인, 성폭행, 폭력, 강도 등 강력범죄를 연상한다.


강력범죄 수사는 경찰에게 특화되어 있다. 범죄 현장에서 지문이나 혈흔 등 증거를 수집하고, 목격자가 있는지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고, CCTV 화면을 확보하고, 용의자 출몰 예상 장소에서 며칠씩 잠복하고, 용의자로 인도해 줄 사람을 미행하는 등의 수사는 경찰이 검찰보다 훨씬 잘한다.


그런데 강력범죄는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강력범죄는 범인이 도주를 한 경우 범인을 찾아내는 일이 매우 어렵지만 범죄 형태는 단순하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고소장을 작성한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타를 당했다는 정도가 내용의 전부다.


그러나 사기, 배임, 횡령 등의 고소사건은 사연이 길다. 가짜 금을 진짜 금으로 속여 팔았다는 식의 단순한 사건은 없다. 상표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특별법 위반 사건도 많다. 이런 사건은 복잡한 법률이론이 얽혀 있다.


CCTV로 폭행 장면, 절도 장면이 포착되는 경우처럼 물증으로 증거가 확보되는 경우는 정말, 정말 극소수다. 거의 대부분의 수사는 관련자들의 진술청취로 진행된다.


제일 좋은 것은 관련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기가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경험한 내용을 말하고 그것을 녹화 파일로 남기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관련자는 수사기관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잘 모른다. 또한 자기 업계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를 쓰고, ‘걔가’, ‘그쪽이’ 라는 등의 대명사를 남발하면서 말하므로 제3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뉴스 보도 같이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게 간결하게 정리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거의 만나기 어렵다.


또한 시청각 자료는 판사가 싫어한다. 문서로 작성되는 것을 좋아한다. 3시간 짜리 녹화 영상을 보려면 3시간을 보내야 한다. 재미있는 드라마도 3시간 계속되면 지루한데 관련자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3시간 동안 꼬박 지켜 보고 싶은 판사는 없다.


반면에 문서로 작성된 것은 대각선으로 훑어 읽어갈 수도 있고 중요한 부분은 밑줄 쳐서 나중에 다시 찾아서 읽기도 편하다.


그렇다면 관련자에게 진술서를 쓰게 하면 어떨까. 진술서는 문서이지 않은가. 그러나 관련자의 입장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가 훨씬 더 어렵다. 조리있게 말하는 것도 힘든데 생전 글쓰기를 안해 본 사람에게 “당신이 그 사건에 관해서 경험한 바를, 범죄와 관련된 것만 추려서 글로 쓰시오”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래서 조사방식으로 가장 좋은 것은 수사관이 궁금한 것을 묻고 관련자가 그 질문에만 답변하는 방식이다. 그 문답의 내용을 기록한 것을 조서(調書)라고 부른다.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조서 등등.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질문을 하는 능력이 수사관의 능력이다. 질문을 잘 하려면 사건 내용에 대하여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진술자의 답변에서 거짓을 알아채야 한다. 거짓말은 전, 후 진술의 모순에서 발견된다. 앞에 한 말과 지금 한 말이 모순이 된다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정교한 논리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모순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가 증인을 상대로 신문하는 장면에서 예리한 질문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런 질문을 수사관이 관련자에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법정에서 검사가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정말 공판중심으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는 말로만 공판중심주의이지 사실은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가 증거의 핵심이고 법정에서 검사의 증인신문은 그 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정도에 그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의 글에서 설명할 것이다.


내가 다니는 전철역 앞에는 구청에서 만든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①비둘기가 생활환경(배설물, 털날림 등)에 피해를 줍니다. ②면역력, 생존능력이 떨어집니다.” 이 문장은 모순이다. 유해동물이라면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먹이를 많이 줘서 면역력, 생존능력을 떨어뜨려야 할 것 아닌가.  


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이지만 수사는 유죄추정의 원칙이다. 관련자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전제해야 추궁을 할 수 있다. 말하는 대로 받아 적는 것은 수사가 아니다.


진술자가 ‘걔가’, ‘그쪽이’ 라고 대명사를 쓰면서 말할 때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바꿔서 조서에 기재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고, 아주 길게 말할 때는 정리하여 기록할 줄 알아야 한다.


사전에 수사관이 충분히 사건내용을 파악한 후 필요한 질문만 하고 진술자의 말을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10쪽 자리 조서로 3시간 짜리 동영상에 담긴 진술과 똑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법원의 속기사는 증언을 녹취할 때 사건 내용을 모르고 기계적으로 받아 적는다. 한글이 표음문자(表音文字)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자처럼 표의문자(表意文字)일 때는 불가능하다. 표의문자일 경우에는 뜻을 알아야 문자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속기사가 기계적으로 받아적다 보니까 가끔은 증언한 사람의 취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뜻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무능한 수사관도 그렇게 받아쓰기를 한다. 아무 영혼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한 사안에 대하여 수사할 때, 사전에 그 사안에 대하여 공부를 하지 않고 수사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렇게 수사는 거의 대부분이 관련자에 대한 문답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수사를 경찰이 잘할 것 같은가, 검사가 잘할 것 같은가.


경찰보다는 검사가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다. 공부를 잘 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읽기, 쓰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사법시험 합격자의 숫자가 적었던 시절에, 자기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대학교수 등이 ‘법전을 달달 외워서 합격하는 사법시험’ 어쩌구, 저쩌구 하곤 했다. 마치 사법시험이 서울 시내 지하철 역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외우는 암기 테스트인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은 시험장에서 제공하는 법전을 옆에 놓고 친다. 사법시험 8과목의 기본 교과서만 해도 조그만 책장 한 개를 채우고 남는다. 그걸 어떻게 다 외우는가. 논리적으로 사고해서 법률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렇다고 나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다른 모든 분야도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다는 망발을 부리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돈을 버는 능력, 운동하는 능력, 창작하는 능력은 공부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현재 교육시스템에서는 그런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교과과목을 체육의 각 분과로 채운다면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검사는 사건기록을 성실하게 읽고 조리있게 질문을 하고 진술자의 답변을 간결하게 정리하는데 있어서 경찰관들보다 대체적으로 낫다. 그 점은 검사가 작성한 조서와 경찰관이 작성한 조서를 비교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위에서 본 것처럼 경찰은 강력사건 수사에 있어서 검사보다 능력이 뛰어나다.


고소사건 대리를 수임하여 의뢰인과 열 몇 시간씩 상담한 후 고소장을 작성한다. 증거기록까지 첨부하면 고소장은 100쪽이 될 때도 있다. 경찰관이 고소인을 소환할 때 나도 입회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할 때 고소장을 사전에 면밀히 읽어본 후 고소인을 조사하는 경찰관을 거의 보지 못했다. 조사하면서 그 때서야 고소장을 흘끔 흘끔 읽어본다. 그 복잡한 사건이 이해가 되겠는가. 그러니 문답은 여기저기에서 헛돈다.


사건에 따라서는 법률지식의 유무에 따라 피의자에 대한 추궁이나 참고인으로부터의 진술청취 목적이 달라져야 하는데 검사의 법률지식이 대체로 경찰보다 풍부하고 정확하다.


앞의 글에서도 말하였지만 정치 사건은 전체 사건의1%도 안된다. 나머지 99%의 사건은 일반국민들이 관련된 사건이다. 그런데 왜 검사의 수사역량을 못쓰게 만드는가.


정치검사가 문제가 된다면 정치검사들만 솎아내면 되지 않는가. 그거 한다는 명분으로 고위공직자범죄 수사처도 만들지 않았는가.


무능한 수사는 범죄자가 처벌을 받지 않게 만든다. 범죄자가 처벌을 받지 않을 때 피해자는, 억울한 수형자, 억울한 사형수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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