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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Feb 25. 2023

검찰 개혁은 잘한 일일까? (5)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한다면

앞의 글에서 보았듯이 2020. 2. 4.에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개정(2021. 1. 1.부터 시행)이 있었고, 2022. 5. 9.에 다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개정(2022. 9. 10.부터 시행)이 있었다.


2020. 2. 4.의 개정으로 검사의 경찰(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없어졌고, 경찰은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검사는 모든 범죄가 아니라 일부 범죄에 대하여만 경찰 개입 없이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22. 5. 9.의 개정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더욱 축소되었고,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 번 글에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어떤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관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시키려는 이유는 검사가 권한을 남용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A 검사가 C 피의자에 대하여 수사를 하였지만 C 피의자를 기소할지 여부는 B 검사에게 맡김으로써 A 검사의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다. 수사를 하면 피의자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든 기소를 하고 싶어진다. 끝까지 파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는 이른바 탈탈 털리게 된다. 조국 전장관에 대한 수사가 전형적인 경우다.


이처럼 수사검사가 감정에 치우쳐서 먼지털이식 과잉수사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혐의가 입증이 되지 않는데도 무리한 기소를 하게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국 전장관에 대한 수사 같은 케이스는 만 개의 사건 중 1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검사들이 일반 사건도 그 수사의 반의 반, 아니 100분의 1만큼만이라도 열심히 수사해주면 정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겠다. 그런 희귀한 경우를 일반적인 경우처럼 전제하여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시킨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조국 전장관의 수사 때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시절이 아니었지만 그런 사건이 지금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수십명의 검사가 달라붙어서 맹렬하게 수사를 했는데 같은 검찰청에 있는 다른 검사가 기소를 할 수 없다고 결정할 수 있을까.


자기 방에 앉아서 혼자 사건기록을 읽고, 혼자 판결문을 쓰는 판사와 달리 검사들은 큰 사건을 마주하면 팀 플레이를 해야 한다. 압수수색을 검사 혼자 달랑 가서 할 수 있겠는가? 수십명의 참고인들과 다수의 피의자들에 대한 수백시간의 조사를 검사 혼자서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여러 명의 검사들과 다수의 검찰수사관들이 동원되어 불철주야 수사한 사건을 다른 검사가 “아니야, 내가 사건기록을 보니까 기소할 수 없어.” 하고 기소를 거부한다고?


검사 혼자서 수사를 하는 일반적인, 평범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선 검찰에서는 검사가 수사한 사건을 부장검사가 결재하는 제도가 있다. 중요한 사건일 경우에는 검사장까지도 결재에 관여한다. 대충 수사하고 기소하려고 하거나 검사가 편견이나 아집에 빠져 증거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기소하려고 할 때는 결재과정에서 걸러진다.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는 제도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직 시행된 지 몇달 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제도가 운영되고 정착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운영되거나 아니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히려 폐해만 초래할 수 있다.


검사는 범인을 찾아내서 합당한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 입증이 충분하지 않거나, 법리상 죄가 안되는 이유로 잘못 기소된 피고인을 구제해줘야 하는 임무는 법원에게 있다. 그렇다고 검사가 대충 수사하고 기소하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검사는 억울한 피고인보다는 억울한 피해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억울하게 기소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게 만들겠다는 것은 기소된 사건의 무죄율을 0%로 만들겠다는 말과 같다. 그런 의도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이다. 무죄율 0%는 검사가 조금이라도 무죄 가능성이 있으면 아예 기소하지 않았을 때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치고 피의자가 자백하거나 100% 물증으로 증거가 확보되는 사건은 드물다.


한편 검찰에서는 원래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는 분리되어 있다. A 검사는 재직 중에 계속 공판업무만 하고 B 검사는 계속 수사업무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판부라는 부서를 두고 거기에 순환보직으로 배치되는 검사가 공소유지업무를 담당한다는 말이다.


공판부를 두는 이유는 A 검사가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들이 법원의 여러 재판부에 흩어져서 배당되기 때문이다. 만일 A 검사가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을 A 검사가 직접 공소유지까지 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법정, 저 법정에 가야 한다. 형사 합의 1부 재판부가 A 검사가 기소한 사건만 재판하는 것도 아니므로 A 검사는 자기 사건의 재판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형사 합의 2부에서 재판하는 법정에서도, 형사 제1단독에서 재판하는 법정에서도 역시 A 검사가 기소한 사건이 재판이 열릴 수 있다. 이처럼 수사검사가 자기가 기소한 사건을 직접 공소유지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판부를 두는 것이다.


수사검사는 수사만 하고 수사한 결과를 사건기록으로 만들어서 공판부에 넘긴다. 공판부 검사는 그 사건기록으로 사건의 내용을 파악한 후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의 재판에 참가하여 증인을 신문하는 등 공소유지 업무를 한다.


특이하게 부지런한 공판검사가 아닌 다음에야 공판검사는 사건기록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 공판검사는 수사검사가 열심히 수사한 내용이 참고인 진술조서, 피의자 신문조서, 압수수색한 증거물 등으로 사건기록에 저장되어 있고 판사가 판결을 하기 위하여 사건기록을 세밀하게 읽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는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사건기록을 파악한다. 재판 때 검찰 측 증인에 대하여 맹공격을 퍼붓는다.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이 법정에 와서 방청을 해보면 변호사는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데 검사는 멍청하게 보인다. 때로는 검사는 사건 내용도 잘 몰라서 증인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피해자 측 사람들은 무능한 검사가 답답하여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중요사건은 수사검사가 공소유지도 직접 한다.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변호인은 수사검사가 법정에 들어오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수사검사는 피고인의 변명 또는 거짓말을 훤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검사는 피해자를 조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피의자가 얼마나 교활한지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몸으로 느낀 감정을, 종이문서에 불과한 그것도 양적으로 제한된 조서에 모두 옮겨낼 수는 없다.


재판을 받는 법정에서 피고인은 재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법정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주인공이다. 피해자는 사건기록에서 피해자 진술조서로만 존재하고,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할 때만 잠깐 출연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공판검사는 자기가 수사한 사건도 아니고 자기가 처리해야 할 사건이 그 사건 1개만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별로 성의가 없다. 무죄만 안나오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중형을 선고받게 해야 한다는 의지까지는 없다. 그러니 법정에서는 온통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만, 그리고 반성하고 훌쩍이는 피고인만 부각된다. 판사의 양형이 솜방망이가 되는 이유다.


검사는 피해자를 대신해서 분노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수사검사와 공판(공소유지)검사만 분리되어도 검사(공판검사)는 피해자의 대리인 역할에 충실할 수 없다.


그런데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부터 분리시키자고? 그렇게 해서 억울한 피고인을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수사검사, 기소검사, 공소유지 검사가 모두 같은 검사라야 한다. 그래서 지금 중요사건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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