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었다.
처음 보는 누군가를 대해야 할 때면 유독 긴장이 되었고, 오랜만에 보는 사이에 나누는 대화는 감정 소모가 크다. 어색한 시간이 불편해 이런저런 말들을 뱉어내고는 했다.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을 말들. 두서없고, 의미도 없으며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런 말들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낼 기회가 있지 않는 이상 새로운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강사를 업으로 삼은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나의 내면에는 언제나 갈등이 많다.
잠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밝은 사람이라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푼수 같다고도 말한다.
오랜 시간 깊이 만나온 사람들은 나를 보며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한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며 놀라워하기도, 대견해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상황에 나서지 않는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나서고는 한다. 나말고는 대안이 없는 경우에만 손을 들어 나서는 편이다.
명절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집에서는 온전하게 조용히만 지내고 싶었는데 친척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마음 한켠에 작은 긴장감이 생긴다. 왕래가 많지 않은 친척이니 가까운 사이지만 편한 사이는 아니다.
엄마는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 친척의 방문이 없었다면 하지 않으려 했던 명절 음식을 만들었고, 나는 거들었다.
연휴 첫날 늦은 벌초를 해서 인지 몸은 피곤함에 찌들었고, 전 부치기를 반복하며 기름 냄새에 음식을 먹기도 전에 체 할 것 같았고, 친척들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갑자기 외출이 하고 싶어 졌다.
엄마는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라고 했지만, 그냥 나왔다.
카페에 왔고, 커피를 마셨고, 짧게나마 글을 쓴다.
이제 가깝지만 먼 사이의 친척을 맞이할 여유가 생긴다.
집에 가서 인사를 해야겠다. 반갑게 인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