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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Oct 31. 2022

내면 깎이

어릴 적 글을 익히기 위해 많은 글자를 써야 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도구는 연필. 연필을 잡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날카로운 심이 둥글어졌다.



엄마는 연필깎이에 연필을 끼워 손잡이를 돌렸다. 날카로운 심으로 변한 연필을 다시 손에 쥘 수 있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새 연필 한 자루가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연필을 깎는 연필깎이의 역할은 연필을 깎는 것이다. 나에기도 깎이가 하나 있는데 몸 안에 있다.


 "내면 깎이"


내면 깎이의 역할은 내면을 깎아내리는 일이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면 분노하거나 불쾌하거나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 내지 속으로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깎아내리면 참 오묘하고 은근하게 기분이 더럽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과는 비교조차 불가다.


요 근래 나의 취약한 부분이라 하면 관계를 맺는 일이겠다. 소개팅을 곧잘 하는데 하는 족족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중이고, 나도 아니고 상대도 아니고 그냥 서로가 아닌 시간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찰나의 외로움. 순간의 심심함. 다양한 이유로 인연을 찾고는 있지만 인연을 만난다고 이것이 완벽히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안다.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 이러저한 대화를 하다 나를 농담거리로 던졌다. 다들 웃고 , 나도 웃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나를 외로운데 노력은 안 하는 노처녀만들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를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싫다.



다들 한다고 나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게 맞다. 삶을 살아내는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거다. 


그걸 알면서도 잊었다. 깎아내리지 말고 소중히 대해줘야 하는데, 나한테 미안해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깎다 나의 내면몽당연필처럼 짧아지 곤란하니까. 날카롭지 않도록 닳지 않도록 잘 관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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