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짐이 되었습니다.
낯설지만 여기에서 잘 지내보자는 마음이 잠시 약해지다가도 다시 강해집니다. 이때까지 저는 누구보다도 긍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대학생 때는 홀로 돈을 모아 3개월의 중남미 여행을 가기도 하고, 취업하고서도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면 자의든 타의든 끝까지 완수해 왔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이때에도 준비하고 도전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었고,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 힘을 내어 이겨내었다고 문득 생각이 듭니다.
잠시 저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보겠습니다. 저는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고 1개월 먼저 호찌민으로 입국한 아내가 있고, 저와 함께 아내 입국 후 1개월 뒤에 입국한 두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가 먼저 가 있는 동안 많이 찾지 않으면서 용기 있게 잘 지내준 용감한 아이들이죠.
먼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해외로 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우리 아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해외에 있지만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는 피할 수 없는 미션이 부여되어 있고, 함께 나올 가족들과 함께할 거처를 마련하고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일에도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제가 다니던 기업에서는 발령 1~2개월 전 주재원 발령예정자는 사전 출장을 통해 집과 교육 등 가족들이 오기 전 준비해야 할 일들을 미리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내 회사는 주재원이 전체 회사의 절반인 기업인지라, 이런 종류의 배려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평일 반반차를 내거나 주말에 꼬박 부동산업자와 집을 보러 다니고 유치원 상담을 하러 다니느라 자신의 시간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함께 버텨내야 하지만 아내는 여기서 예상치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습니다. 휴직 후 해외 생활에 자신만만했던 남편인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거의 부정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는 티가 확 나는 편입니다. 잠에서 갑작스레 깨어 한숨을 쉬거나, 침대에서 거실로 화장실로 잠이 오지 않으니 불안했던 모습을 아내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얼마 전에 이메일로 사주를 나와 자신의 것을 한 번에 봐달라고 했고, 결과가 나왔다고 이메일을 전달해 주더군요. 재밌게 읽다가 마지막 아내가 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현재 육아휴직을 하고 저를 따라와 준 것인데, 최대한 오래 육아휴직을 해서 베트남에 함께 오래 있다가 돌아가는 게 좋을지, 1~2년 정도만 육아휴직을 하고 먼저 회사로 빨리 복귀를 하는 것이 나을지도 고민 중입니다. 남편도 내색은 안 하는데 휴직을 하고 해외에 오니 좀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정착 초반기라 더 그런 것도 있지만..."
질문을 보니 제가 괜히 아내가 걱정하게 만든 게 아닌가 합니다. 티 안 나게 있는다 해도 이런 저의 심리적으로 잠긴 모습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불안한 생각과 행동은 모두 글쓰기로 옮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6년간 공부, 10년간의 회사생활과 같이 매일을 집중하고 고통스러워도 해내야만 하는 삶의 가스라이팅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해내야만 하는 삶이 아닌, 해낼 수도 있는 삶. 부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삶. 그럴 수도 있는 삶.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