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어내고, 또 뱉자. 시작이 그러했듯.
호기로운 육아휴직 선언과 함께 정말 육아만을 위한 휴직의 시간이 1년이 지났다. 주변에서 1년 이상하신 남자분들은 잘 보기 어려웠고, 후기를 들어보기 어려웠다. 아직 남자의 육아휴직이 흔하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SNS에서 휴직에 대한 콘텐츠를 올리시는 남성 동지들을 보면 몇 분 되지는 않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마음에 감탄이 나온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10년 동안 회사에서 지내며 보고 듣고 한 수많은 긍정과 부정의 플라시보와 가스라이팅들이 결합되며 생긴 마음가짐일 게다. 계열사에서 유튜브를 한 여자 대리님, 연애프로그램에 나갔던 남자 과장님, 채용만 20년 하며 채용 관련 책까지 펼쳐낸 옆팀 팀장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재능과 능력 때로는 오기로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에 도전한 분들이다. 때론 사회적 지탄과 동료의 곱지 않은 시선이지만 자신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착실하게 쌓아가는 사람들.
기업에서 인사업무를 하며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직원들의 대소사를 듣고 앞과 뒤에서 챙기며, 경영진의 올바른 결정을 위해 객관적인 모습으로 항상 임해야 했다. 내 삶의 방향을 주변에 드러내기보다는 일의 방향이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는지, 경영진의 경영철학과 일치하여 조직의 운영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지. 이런 것들이 중심이며, 가끔씩 경영진이 하는 말에 대한 솔직한 척하는 대답들을 해온 것 같다. 아니 해왔다기보다는 해온 느낌이다.
인사담당자가 회사에서 나대면 소위 '깝친다'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 경우를 경험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인사부서만큼 동료와의 담배타임, 술자리에서 좋은 안주거리가 되는 소재가 없다. 직장인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만 봐도 알 수 있다. 블라인드 안에서 제조업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3대 악이 있다. 인사(HR) 부서, 품질(QA) 부서, 내부진단부서. 이 세 조직에 대해서 하나 건덕지만 잡혀도 공감이나 동조하는 직원들이 불쏘시개로 엄청난 산소를 들이부어댄다. 무관심에 꺼지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러면 어떠랴. 이미 불붙고 한 번 확 타올랐다 꺼지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는 겁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나를 한 번 돌아보자. 나를 보고 어떤 나를 다른 사람 앞에 들이밀 것인가.
지금 내 느낌에 나의 위치는 중간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육아를 정말 멋지게 해내는 아빠도 아니다. 그럭저럭 맡은 자리에서 직장인이라는 꼬리표를 어떻게든 붙잡으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으로 자위한다. 좋은 아빠의 모습으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며 아이들의 학교나 학원, 좋은 프로모션이 있는 가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창기 여기 왔을 때 놀아줬던 만큼 이제는 그리 몸으로 잘 놀아주지도 않는다. 친구들이랑 놀 수 있다는 이유로.
문득 정신의 흐름으로 생각한다. 갑자기 어두운 자기 파괴로 얼룩진 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술은 먹지 않았다. 그냥 집안에 불은 모두 끈 채 어둠 속에서 노트북 화면의 빛으로 키보드를 확인하며 한 타 한 타 딛는 손가락질로 물속에 잠긴 것 마냥 답답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조만간 돌아갈 복직자인가, 가족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아빠이자 남편인가,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의미 있는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시간인가, 의미는 없지만 재밌는 시간은 보내고 있는가. 나는 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육아를 하는 모습이 나인 것인가. 가족의 옆을 묵묵히 지키는 것이 여기서 내게 주어진 소명인가.
그래. 좋다. 이렇게 뱉자. 머리로 정리 안 되는 흩날리는 생각의 파편보다 물속에 잠겨 있어도 생각을 적자. 머리 밖으로 뱉어 나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자. 그런 나를 적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자. 이 글들의 시작이 그러했듯, 잠시 이를 잊었지만, 이렇게 하루를 뱉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