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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pr 18. 2024

small talk.

하겐다즈 그 낭만에 대하여.

21살 우리들은 학교 카페테리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곤 거리며 말했었다

"있잖아 옛날에 러시아에 사형수가 있었는데 사형집행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게 뭐냐 물으니까 

 하겐다즈 바닐라였데 근사하지"

무슨 죄로 사형수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사형수가 살인. 강도는 아닐 거라고 정치범이나 사상범 정도일 거라고 확신했었다. 게다가 그는 미지의 러시아 사람이다.

죽기 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 그것도 하겐다즈.

당시 맨해튼에는 배스킨라빈스는 드물었었다.

21살짜리 여자 아이들은 쓰디쓴 커피보다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고 학교 카페테리아의 저렴한 소프트콘보다는 하겐다즈를 선망했었다. 무슨 아이스크림 종류가 31개나 된다니 품위 없게 그리고 그 회사 아들 동물보호 운동한데 젖소들 보호한다고. 하겐다즈 소들은 다를 거야. 첫맛이 고급스러워.

우리는 Bean &Jerry의 바나나 크런치와 하겐다즈의 딸기와 바닐라를 사랑했었다.


H가 너무 좋아서 확 끌린 나는 아무도 모르는 상사병에 걸렸었고 친구들은 맘이 아플 땐

하겐다즈 하프겔런을 먹으면서 슬픈 영화를 보면 낫는다고 했고 난 곧이곧대로 실행했었다.

룸메이트는 서울을 갔고 넓디넓은 집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프 겔런 아이스크림 통을 안고 밥숟가락으로 퍼 먹으면서 아마데우스를 봤는데 슬프지는 않았고 영화는 좋았는데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난 배앓이가 찾아와서 남자고 뭐고 혼자 긴긴밤을 죽다 살아났었다.

그 사형수도 하프갤런정도를 먹었으면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 거야... 정신이 아득해서 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꼬박 앓았었댜.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이상한 점에 꽂혀서 누군가를 좋아했으며 상대방은 눈치도 못 채는데 우리는 너무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뮤지컬 공부하는 뼈대만 근사한 새끼를 좋아했고 멀쩡하게 자신 좋아하는 남자 제쳐두고 늙수룩한 오빠 좋다고 맘앓이를 하고 저마다 사연은 구구절절 하나 어느 것도 마땅한 것은 없었다.

"센 강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랑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은 손가락이 없데 도중에 후회해서 살아 나오려고 다리밑 기둥을 너무 긁어서 그런데 돈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은 깨끗하데 살 생각이 없어서 너무 슬프지 그러니까 사랑보다는 조건이야 "

말인지 막걸리 인지 이런 대화를 꽤 진지하게 나누었다.

여자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남자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왔어도 23 정도 나이였고 그들도 엉뚱한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델리 아르바이트 한 돈 모아서 명품 핸드백 선물하고 일주일 뒤에 이별 통보받은 녀석 때문에 주영이는 " 일어서"하면서 여자 아이 아파트에 찾아가서 주눅 든 남자아이대신 백을 받아 와서는 "나쁜 년이야 저년은 구분은 해야지 공들일 데 공들여라"하면서 건네주었고 남자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었다.

씩씩한 언니는 학교도서관에서 백인 남학생이 "go out with me"라 했는데 "미친놈 밖에 비 오는데 왜 나가자는 거야' 라 생각하고 "no"라 외쳤고 후에 그 남학생집에 헬기 있다는 말과 함께 사귀자라고 했다는 걸 알고는 분노했었다. 명품으로 휘감은 중국 남학생의 질긴 구애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던 친구는 정말 소박한 남자와 어두운 사랑에 빠졌었고 오레오 크림만 먹던 어리바리한 녀석은 까만 쿠키만 먹는 똘똘한 여자를 만나 재미있는 연애를 했었다.

다들 슬펐고 다들 기뻤으며 다들 행복했고 다들 불행했었다.

그 우후 죽순 같은 커플들 중에 살아남은 커플 없고 초반에 찢어지느냐 결혼까지 갔다가 헤어지느냐의 차이만 존재했다. 사형수가 죽음의 직전에 느꼈던 하겐다즈 달콤함이 그때 우리가 믿었던 사랑이었다.

무모했지만 달콤했었다. 나? 나는 계속 무모하고 또 무지해서 쫓아다니다가 별명이 경주마였다.

양눈 가림막하고 줄곧 달린다고

당시 오빠들이 술자리에서 "경남이가 최고다"라고 했단다

술. 자. 리. 에서 취. 해. 서 맨 정신으로는 아니었나 보다. 아이스크림이나 먹어야겠군. 나의 하겐다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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