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5,000원

by Nami

서촌 거리를 걷다 문득 노래방에 들르고 싶어졌다.

거의 만석이다. 온돌방, 헤드셋 방, 일반방. 가장 아늑해 보이는 온돌방을 골랐다. 30분에 5,000원.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결제하는 익명성이 편안하다. 시설과 냄새는 오래전 고등학생 때 드나들던 오락실 코인노래방과 비슷하다. 투박하고 정답다.


어떤 노래를 부를지 몰라 인기 차트를 훑어본다.


[인기 차트]

응급실 - izi
가시 - 버즈
체념 - 빅마마
나였으면 - 나윤권
사랑의 바보 - 더 넛츠
벌써 일년 - 브라운 아이즈


2026년인데, 차트의 시간은 2000년대 초반에 멈춰 있다.


첫 곡은 화사의 ‘Good Goodbye’. 좋아하는 곡이지만 화사의 Feel을 따라가기는 역시 쉽지 않다. 역시 이 곡은 화사의 목소리,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듣는 게 낫다.


다음은 윤도현의 ‘사랑 Two’. 오래전 밴드부 보컬이었던 남자친구가 자주 불렀던 곡이다. 옛 추억이 스치고 오래된 기억이 조용히 지나간다. 좋은 노래다.


Rachel Yamagata의 ‘Be be your love’를 부를 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레이첼 야마가타의 가사는 대개 절절하고 아픈 연애 이야기다. 한때는 이 감정에 공감하며 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다시는 그런 소모적인 연애로 나를 몰아넣지 않을 것임을. 슬픈 가사를 뱉어내면서도 내 안은 고요하고, 더 이상 예전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은 없다.


분위기를 바꿔 케데헌 'Golden'. 지난겨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어 수업을 했다. 가사를 완벽하게 외운 덕에 막힘이 없다. 아이들 목이 왜 매번 쉬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어서 'Soda Pop'까지. 그냥 신나고, 아무 생각 없이 부르기 최고다.


마지막은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친구들과 하이킹하며 자주 흥얼거렸던 노래다. 하도 무한 반복으로 들어서 친구들도 가사 없이 따라 부를 정도였다.


30분간의 즐거운 시간. 혼자 실없이 웃으며 방을 나왔다.


5,000원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