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비판에 대한 반론

by 남재준

1. 들어가며


다른 무엇보다 우선, 진실은 비명계에 대한 비난과 린치가 노골적으로 이어져 결국 아무도 자신이 비명이라거나 ‘친명패권’이 존재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발적 당심'과 그 지지를 받는 이재명 대통령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비명 인사 다수가 제21대 대선 본선에서 진짜 대한민국 선대위에 참여했다.


2. 대의원제 옹호와 당원민주주의에 관하여


비명계 누구도 의원 위주의 정당이 타당하다고 주장한 바는 없다. 비명계에서 대의원의 영향력 축소에 반대한 것은 일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대의원제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역대 어느 민주당계 정당 주류 계파보다도 과격하고 무비판적인 성향의 친명이 위주가 된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너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정봉주는 본래부터 비명이라고 볼 여지조차 없었고 2024년 전당대회 당시의 양상은 친명들끼리 더 큰 영향력 확보를 위해 서로 ‘찐명’을 가리는 추태를 보인 것이 본질이었다.


이재명 당시 대표가 주장한 소위 ‘당원민주주의’가 과연 제도적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에 이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필요했다. 당심은 곧 민심이 아니다. 오히려 본래 권리당원제는 정당을 좀 더 국민에게 개방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에서 문재인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대의원과 일반국민 표심의 덕분이었고 대선에서도 내내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해 왔으나, 이재명 체제 이후 당원의 비중과 영향력이 더 증가했다.


당원이 아무리 수백만 명이라 해도 비당원 지지층 전체의 민심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후자가 더 민심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그러나 친명 주도 민주당에서는 당원이 수백만 명이므로 민심이라 보아도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과연 당원민주주의가 ‘국민에게 열린 정당’이라는 초기의 이념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정당 모델이 바람직한가의 논쟁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장집 교수 사이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의 당원 중심 경향에 대한 유의미한 토론은 없었다.


3. 전직 대통령들을 '이용'했다는 점과 친문-친명 관계에 관하여


비명계가 전직 대통령을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전에 주장한 바와 같이 ‘이러한 방향이 전직 대통령들이 이어 온 뜻을 계승하는 것이 맞느냐’라는 비판적 의문에 대한 메신저 공격이다. 더구나 친명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는 듯한 영상을 만들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지층에게서 더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친명 측이 최소한 비명 측보다 전직 대통령들을 이용한 것이 모자라지 않다.


또 비난의 내용을 보면, 친문-친명을 분리해서 친명은 친문 주도 민주당의 실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2016년 분당 이후 재편된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다수가 친문이었고, 그들은 후에 안희정과 박원순 등이 사라지면서 이재명이 남은 유일한 대안이 되었을 때 급속히 친명이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친명이 되었다. 또 질적으로도 ‘친문-친명은 하나’, ‘명문정당’ 등을 내세워 왔다. 친문과 친명이 하나라면 문재인 정부 때의 책임에서 친명이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령 친문과 친명이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말할 만큼 당 주도를 강조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정당에서 나온 정권이라면 계파가 다르더라도 공과를 함께 지고 가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친명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나 비명 측의 문제 제기나 비판을 ‘갈라치기’로 몰아붙일 때는 ‘친문-친명 일체론’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고 친문 나아가 비명을 기득권으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명분상 우월성을 점하려 들 때는 ‘친문-친명 분리론을 전제로 한 친문패권주의’를 강조한다.


물론 친문과 친명이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고, ‘친문의 상당수가 친명이 되었다’라는 설명이 객관적일 것이다. 또 양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이재명이 모두 친문-친명은 하나라고 주장했으니, ‘전 정부 때리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침 뱉기이고 반대파에 대한 프레이밍에 불과하게 된다.


다수의 의지가 반드시 옳다는 법이 없으므로,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나 포퓰리즘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에 대한 관용과 생산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혀 없이 다수의 자발적 의지인데 그에 반한다는 이유로 린치하는 것은 민주당이 그토록 사수하려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4. 2023년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관하여


2023년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전까지 이재명의 대선 후 지선 공천 개입이나 비대위 통제 및 즉시 당대표 출마 등의 일련의 흐름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2022년 지선 패배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때문으로 가볍게 넘어가 버렸다.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이재명은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었는데, 그것은 그 말을 했을 때나 그 뒤에나 맥락이나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으므로 언행 불일치와 방탄이라는 공격에 대한 부담을 가중했다.


상황이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비명 의원들 중에 극히 일부가 나선 것이며, 이것이 조직적 움직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당시 의원들의 위기감이 하나둘 모여 가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비명계 측과 ‘거래’를 하려고 하면서 추상적인 ‘통합적 당 운영’, ‘공천 보장’을 운운하면서 비명계의 우려를 자기 기득권 보전을 위한 처신으로 여겼다. 특히 공천 보장에 관해서는, 과연 자당 대표가 구속된 상황에서 다음 총선에 어떻게 유리할 것이며, 그 전에 친명이 주류인 상황에서 공천을 받는 것 자체가 가능했겠는가? 실제로 가결 다음 해 총선 공천에서 동료평가와 당원투표를 통한 '비명횡사'가 일어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작 2022년 대선 경선 때 ‘팀킬’을 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낙연 후보를 공격해 놓고, 그 뒤에는 자신이 사실상 팀킬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친명 측 의원과 당원들의 린치로 그 뒤 2024년 공천 때 대대적인 숙청 즉 ‘비명횡사’가 일어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심지어 계엄 이후 공개적으로 ‘자기편’을 가려내기 위해 ‘함정수사’를 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니까 ‘말을 뒤집은 건 사실이나 지금의 검찰 수사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는 것보다도 ‘나도 가결될 것 같았는데 가결표 행사자들을 색출하려 했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5. 검찰개혁 '내통설'에 관하여


김용민 의원은 최강욱 전 의원 등과 더불어 가장 강경한 검찰개혁론자이다. 그리고 민주당 강경론자들의 상당수가 음모론과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과연 비명계 의원 중에 검찰 출신이 몇 명이나 있었는가? 비명의 전체가 친문이었는데, 검찰개혁은 친문의 상징과 같은 대표 의제였고 여야가 충돌한 핵심 지점이었으며 금태섭 전 의원과 같은 방법론적 비판자부터 이미 문재인 정부 당시에 몰아붙여졌다. 문재인 정부 때 개혁에 모두 반대해 검찰총장 후보 인선조차 어려웠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백한 바도 있다. 게다가 검찰 출신 의원들은 이제 범친명에 더 많다. 물론 그들 중 상당수가 ‘추미애 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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