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의 정치가 지닌 위험성

by 남재준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은 위험한 말이다.

원칙 내지 전제는 맥락과 주체 등에 따라 매우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세상만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정치에서, 선공이라는 말은 보통 자기를 낮추고 당을 우선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맥락에 따라 주류의 보스에 대한 과잉충성과 비주류에 대한 충성 강요의 명분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필요한 비판들을 막아 자정 작용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막기도 한다.

구체적 상황 예컨대 선거가 임박한 국면이라면 당의 명운은 본인과도 직결되는 것이니 스스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낮추는 것'이 원칙이 되어버리는 경우 앞서 말했듯 다수결 원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에서 소수를 쉽게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소위 '자기정치'라는 말도 그렇다.

이는 보통 하지 말라는 맥락에서 쓰이며, 자신의 이익만을 보고 과도하게 돌출된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불가피한 차이가 있어 어떻게 보면 모든 정치는 자기정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데 동시에 정치는 본인의 신념을 관철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저해하는 압력의 프레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재임 시 상충하는 두 목표를 모두 이루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당시에는 그때까지 친윤이 주도하던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함으로써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한편으로는 여당 대표로서 정부를 뒷받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는 다른 감성과 레토릭의 정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한 전 대표는 이러한 두 목표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소 직설적으로 대통령실도 들이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해버렸다.

이는 친윤의 분노와 한 전 대표에 대한 압박ㆍ의정갈등 이슈에서의 한 전 대표와의 충돌로 이어졌으며 당내 갈등이 더 심각해졌다.

친윤은 '자기정치를 하지 말라'고 한 전 대표에게 말했지만, 자기정치를 할 여지없이 용산에만 충성했다면 민주당은 쾌재를 불렀을 것인데 국민의힘이 대통령과 함께 수렁으로 들어가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었다.

실은 보수정당은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진박마케팅', '진박감별사' 등으로 상징되는 주류 계파 중심 패거리 정치로 대실패했고 국정농단도 통제하지 못했었다.

혁신 없이 반민주당에 기초해 윤석열이라는 머리를 긴급히 꽂아 어떻게든 집권했는데 결국 더 심하고 노골적인 주류 계파 중심 정치와 계엄의 사전통제 실패로 이어졌다.

민주정치에서는 그물을 성기게 해야 여러 쓸모 있는 의견들이 들어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물론 이러한 각자의 의견이나 이니셔티브들이 공회전하고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수렴해가는 각자의 자발적 노력과 오피니언ㆍ민주적 리더십이 중요하게 된다.

의견을 서로 달리 하는 것의 관용이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럽거나 잘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리더십ㆍ수렴의 노력 등을 통해 전체적으로는 조직을 더 발전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자기정치 하지 말라는 선공후사를 원칙으로 하는 경우에는 단기적으로 기율이 잡혀 일사불란하게 단일대오로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조직은 자정도 더 나은 대안 찾기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보통 선공후사는 수단적ㆍ상황적인 말이고 항상ㆍ상시적 원칙은 아니다'라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논리를 펼치는 순간 결국 그 논리는 지속되는 원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진정 부정적 의미로 '자기정치'를 하는 다수와 그들이 추종하는 1인 보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테니까.

나는 정치적 맥락에서 보수라고 보기 힘듦에도 이전부터 일본 자유민주당에 호감을 느껴왔다.

물론 이 당이 '우경화의 본산', '파벌 간 이익 나눠먹기와 대기업 등 사회적ㆍ경제적 기득권에의 복무' 등이 지적된다는 점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그 당이 그토록 오래 민주국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유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면서도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국민정당'으로서 정책과 대안 중심의 '수권정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본다.

이시바 시게루 현 자민당 총재 겸 총리가 총재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 아직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던 2021년의 발언을 보면,

"자민당은 다양한 의견으로 힘을 얻는, 다시 말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반대 의견에 대해 '발목을 잡지 말라'는 것은 빗나간 말이고, 그런 담론은 오히려 '배후의 발목잡기'가 되어 자민당을 강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말하기를,

”이데올로기 정당이 아니라 정말 일본적인 존재라는 점도 자민당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 있는 정당입니다. 이데올로기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의 눈에는 다소 무성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자민당의 현실적인 면이 많은 일본인의 감성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진보', '보수'를 가로지르는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만사ㆍ만인은 서로 구체적으로 다르고, 이것들을 존중하면서도 조화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즉 예컨대 '보수'라는 개념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특정한 정책 선호의 조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의 존중을 바탕으로 정당정치ㆍ제도정치의 맥락에서 숙의를 통해 접점을 찾고 논의를 통해 수렴하거나 수용하거나 기각하는 등 구체적인 타당성이 있는 결론으로 나아가도록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최근 다시 '거여巨與'로 복귀한 더불어민주당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대통령ㆍ정부와 '더불어' 국정을 주도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충성경쟁 내지 대통령과의 일치도ㆍ공감도 경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입법부는 비록 대통령 역시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더라도 행정을 지도하는 법률의 제정ㆍ개정을 핵심 기능으로 한다.

정부의 민주적 통제를 민주당이 스스로 강조해오기도 한 만큼 대통령과의 건강한 거리 유지와 대통령에게 없는 요소들에 대한 보완이 가능한 당대표가 더 필요하다.

박찬대 의원이건 정청래 의원이건 이런 면에서는 적절치 않은 후보들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이토록 압도적으로 한 계파(그것도 강경함이 디폴트값인)에 의해 장악된 적이 없으므로,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힘들지만 후에 정권의 지지가 떨어질 때 당내 주류 교체로 완화하는 등의 작용이 불가능하고 정부와 당이 같이 수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하다.

정리하면 총체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기정치'는 사익만 챙기는 정치일수도 궁극적으로 더 나은 신념의 관철을 지향하는 정치일수도 있다.

그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둘 모두를 규제하고 집단이 한 방향으로만 나가면 모두가 함께 레밍 떼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원칙적으로 존중하면서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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