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과 법적 역량이란 무엇인가

by 남재준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편견 중 하나가 '법학은 법전을 외우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수학은 계산을 하는 것'이나 '역사는 연표를 외우는 것'이라고 하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법학을 모욕하는 편견이다.


왜 '더'라고까지 하느냐 하면, 계산력이나 연대기적 흐름의 암기는 도움이 되거나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지만 법학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 내지 그에 수반되는 것조차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과 '산술'이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학은 단순히 법전을 외우는 것이 아니며 법전을 외우는 것 자체는 따로 이름조차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다.


만약 법학이 단순한 법전 암기에 불과하다면 '학(學)'이 붙을 필요도, 그것의 해석과 적용을 전문으로 하는 사법(司法)이 전문 영역으로 발달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분명 '학'이란 단순한 암기 이상의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


법적 사고 역량에는 조문의 문리적-논리적 풀이 능력, 사실관계의 객관적이고 제3자적인 정리 능력, 사실관계의 구체적 타당성 있는 조문에의 포섭 능력, 전체 법체계나 판례 등의 맥락과 일관된 법리 제시 능력 등이 있다.


법학은 통상 법의 해석과 적용 즉 사법을 다루는 것이며, 법은 단순한 법조문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조문과 그것을 구성하는 개념 그리고 그것들이 조직화되어 이루는 개별 법규범과 법의 규범적 위계 체계, 그에 대한 해석을 보조하는 학설과 판례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종합적인 규범 체계이다.


법학이 어려운 건 개념의 생소함, 분량의 방대함, 적용의 복잡함 등에서 기인한다.


법은 극단적으로는 그 자체로 완결된 체계라고 볼 수 없으며, 기껏해야 그 완결성은 잠재적이거나 규범적 필요(즉 완결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적용이 어렵다고 보는 한)에 의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결국 법적 문제는 어떻든 인간의 가치 판단을 요한다는 의미이다.


법이 현실적인 강제력을 지니는 유일무이한 사회규범이라는 점에서, 법적 문제해결은 법리의 논리성만이 아니라 고도의 구체적 타당성을 요한다. (예컨대, 어떤 판사가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한다고 하면 그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결국 원래 기대 가능했던 수명에서 일정 기간을 깎는 셈이 된다. 일반사회에서의 격리란 결국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니까. 어떻게 보면 생물학적으로만 연명할 따름이지, 실질적으로는 그 시간들은 죽어 있는 시간과 같다. 그러니 사건 하나라도 어찌 가볍게 보겠는가.)


또한 사회와 경제가 복잡해지고 가치판단이 다원화되면서, 본래 성문법을 현실의 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하는 사법의 기능도 보다 고도화된 정밀성과 타당성을 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법은 단순한 기계적 해석과 적용에 지나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점에서 AI가 사법을 온전히 대체하는 것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화되느냐의 별도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을 AI라는 적어도 인간과는 별도의 어떤 인공 주체가 행사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수용 가능한가?)


법학은 기계적 학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동적 학문이며 동시에 실천 기술이고, 그렇기에 결코 단순한 법전의 암기일 수가 없다.


오늘의 다수의견이 내일의 소수의견이, 반대로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논증의 과정에 있다.


판결이건 변론이건 제반 사법 작용의 본질은 결국 연역적으로 보다 타당한 법적 논증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러한 역량은 반드시 지능에 의해서만 함양된다기 보다 오히려 실무 경험의 축적으로 향상될 수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앞으로 변호사시험의 온전한 자격시험화와 허들의 낮춤은 법조계에도 많은 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보다 유능한 법조 인재의 진출을 위한 필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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