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가 침몰하기 시작한 분기점은 2020년이었다.
이재명-윤석열은 상징적 구도일 뿐, 이미 서구에서 시작된 포퓰리즘의 바람이 우리 정치의 주도 세력 교체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투, 검찰개혁 파동(조국사태-추윤갈등)을 거치고 21대 총선을 분기점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전체적 기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2020년 총선은 어디까지나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강을 건널 때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와 '도저히 대안이 되지 못하는 미래통합당'이라는 두 전제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유례 없는 압승을 거둔 것이었다.
사실 이 압승은 어떤 면에서 민주당에게 불운이었다.
미투나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정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것을 전부 건너 뛰어 버렸고 되려 강경한 태도만 더 커졌다.
맨 처음에는 민주당도 '이 승리가 우리가 잘 해서 이룬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낙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는 리더십과 독자적 신념 부재, 김태년 지도부 통제 실패 내지 방임, 서울시장 보선 불공천 파기 등으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화근이었던 당내 강경파의 통제를 하지 않았거나 통제에 실패했다. (그는 이미 과거에도 '양념 발언' 등으로 극문들에 너무 안이했었다. 선플 운동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문재인-이낙연 두 사람에게는 민주당의 포퓰리즘-다수주의 폭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모든 것의 결과로 좌파 포퓰리스트 이재명만이 남았다.
문재인 국정과 정무 5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없었고 어영부영 대윤석열 투쟁에 모든 논리와 화력이 집중되었다.
민주당의 가장 큰 불행은 되려 '너무 많이 승리한 것'에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부혁신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취지처럼, 조직은 지속적으로 피드백과 혁신을 통해 자정을 해야 급변하는 현실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당장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일지라도 멀리 보아 그 길이 더 조직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민주당을 지배하기 시작한 논리와 경향은 당면한 상황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와 적을 극렬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내부적으로까지도 '빨갱이 색출'처럼 이견을 제시하는 자들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문재인 정부의 적절한 대처가 아니었더라면 민주당은 조국 사태 다음 해의 그 총선에서 패배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재명이 문재인을 '이으면서 동시에 단절한' 결과로 2022년 대선에서 석패하고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데다 직후에 바로 지선이 치러지면서 또 다시 자성론이 대두하지 못했다.
지선 대패가 최근의 유일한 패배였지만 민주당에게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넘겨져 버렸다.
2년 뒤 총선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거대한 난맥상과 권위주의 등의 반사 이익을 대규모로 얻었고 그 해 말에 '자폭'이 된 위헌계엄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1개월여 전의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왜곡된 기억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정국 중심으로 삼은 바 없고, 높은 지지율에도 불안해 했다.
스스로를 나름 잘 다졌음에도 결국 잘 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반성도 없이 변질되고 극단화되었으며 자성이나 자정도 전무했던 지난 4년 여의 민주당이다.
국민의힘은 반대로 스스로 혁신의 경고와 심판이 수없이 주어졌지만 본인들의 태생적 한계(권위주의적 관성)에 갇혀 결국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중간엔 민주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분에 넘치게도 집권까지 했다가 결국 제대로 된 혁신과 재정비 없이 민주당에게서 빌려 온 '반대와 심판의 논리', '맞불작전'만으로 나가다 처참하게 실패했다.
포퓰리즘과 내용 없이 껍데기만 남은 진영 논리가 양당을 지배하면서 결과적으로 중도층이 사실상 캐스팅보터가 아닌 한 진영을 쳐내기 위해 다른 진영에의 선택을 강요 받게 되었고, 진보정당 등은 약 20년 만에 제도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강고한 양당제가 복귀했다.
원래도 우리 정치가 정체성과 레토릭 다툼(e.g. 민주주의, 산업화, 반공주의), 스캔들과 약점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것만 남은 것까지는 아니었다.
본래 그런 것들은 입법, 정책, 국정이 정치의 메인이고 내용인 가운데 어느 정도 '기본', '최저선'이 되는 문제들에 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만이 전부가 되었다.
권위주의적 통제에서 극단적인 분열과 파편화로,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적 문제가 대두했다.
이미 저출생, 고령화, 사회보장 위기, 저성장의 만성화, 고용 없는 성장, 노동의 자동화, 극단적 가치관의 난립, 세계적 극단주의의 대두와 신냉전 등 사회와 경제 나아가 나라 전체가 지속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태가 뉴노멀이 된 시대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돌파해 나가야 할 정치가 되려 문제의 뇌관이 되었다.
국가를 움직이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에 요구되는 상황인데, 사실상 집권하는 측은 자기만족에 빠져 폭주하고 반대 측은 공수 교대 즉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내리기에 착수한다.
내용과 성과가 없고 투쟁과 균열만 있는 정치는 이미 일상의 힘겨움과 불안 속에 있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고 이는 정치혐오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행정, 시장 등에서의 혼란과 난맥상이 지속되면서 국가 경쟁력이 하락할 위험성도 매우 크다.
제대로 된 자성과 오피니언 리더십의 복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기의 시한폭탄은 계속 다가오는데 한 세대(40년대~50년대생)가 퇴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패러다임과 시스템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그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상태의 악순환' 자체가 우리가 지금 처한 근본적 위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