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by 남재준

세대가 지나면 (사람들은 돌아보고서야 느낄 정도로 점진적이긴 하지만) 조건이 개선된다.

예를 들어 윗세대로 올라갈수록 '버티기와 이겨내기'가 미덕이지만 아랫세대로 내려갈수록 '직면하기와 이해하기'가 중요해진다.

물론 서로에 대한 이해의 단절은 여전하니 아직도(어쩌면 영원히) 개선은 계속될 것이다.

윗세대의 입장에선 아랫세대의 그런 모습이 '사치'나 '나약'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드물다고 보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아랫세대는 고통스럽다.

차라리 애초에 들리지 않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을 수 있다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하게나마 그 결의 부분을 보거나 이해하거나 겪거나 한 사람들은..

내가 정말 너무 사치를 부리고 나약한걸까.

내 마음을 직시하고 누군가의 이해를 바란다는 게 정말 불가능하고 순진하며 유약한 것일까.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구태여 그리 생각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느냐고 반문할 테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나약하다 손가락질하는 어른이 아니고 그 반대로 너의 삶을 살라 존중하는 어른이어도 정작 자신들의 삶의 궤적에서 비롯되는 억울함은 눌러놓아도 비어져 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게 아랫세대까지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윗세대가 딱히 의도한 게 아니라 그냥 살아온 삶과 그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고, 다시 그들이 만든 삶의 환경 속에 아랫세대가 살아가는 것이므로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인생에 답이 있을까..

없을거다.

각자의 일시적인 답만이 있겠지.

그 답들은 언젠가 깨지기를 기다리는 것들일 뿐이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중도주의와 포퓰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