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신으로 유명한 김상헌(金尙憲)이 남한산성 출성 때 왕을 따르지 않고 낙향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신하는 군주의 뜻에 충성하는 것이지 군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또 최명길(崔鳴吉)의 현실주의적 주화와 김자점(金自點)의 권력지상적 친청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은 중도주의와 포퓰리즘의 구분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포퓰리즘은 '영합'이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적당히 골라 모두를 충족시키는 듯한 언어로 카리스마를 양념으로 뿌려 제공하는 정치다.
중도주의는 '중용'이다.
이해관계자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객관적ㆍ원리적 등의 차원에서 무엇이 더 국익ㆍ국민복리ㆍ안정 등에 부합하는지를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고민하는 태도이다.
이에 중도주의자는 고독하다.
감정과 이분법과 단순화에 빠지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중도주의자의 복잡함과 모호함을 싫어한다.
게다가 모든 중도주의자가 항상 적정한 균형의 도출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안철수의 새정치처럼 그저 모호함과 종래의 양극에 대한 반대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상당하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포퓰리스트가 중도주의자의 외피를 쓰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단지 그 자체가 정치윤리에 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설탕 입힌 속 빈 강정은 국민의 정치혐오를 초래해 나라의 지속가능성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