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토인비적 응전 : '새로운 중도'가 필요하다

by 남재준

국가의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더 심각한 건 문제가 폭발 직전이라는 거야.. 내 임기 중에.
It's a situation that can't help but affect the stability of the country. And what makes it worse is, it feels it's all about to erupt.. On my watch.

_ 존 메이저 John Major, 드라마 <더 크라운 The Crown> S5 E1, "Queen Victoria syndrome"


우리의 영광들은 과거의 유물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를 두고 움직일 것이고.. 우린 아무 것도 없이 남겨질 겁니다.

Our glories belong to the past.. And the world will move on.. And we will be left with nothing.

_ 웨일스 공 찰스 Charles, Prince of Wales, 드라마 <더 크라운 The Crown> S5 E10, “Decommissioned”


******


우리 세대는 새로운 역사적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거나 서로에게 분노하고 있을 뿐, 시대에 맞서고 있지 못하다.


토인비(A. J. Toynbee)적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응전(Response)'이 가능한가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선진국들의 리더십조차 새로운 위기에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이젠 우리 스스로 새로운 패러다임과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실존의 위기 극복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새천년 시작 때의 '지식정보사회의 편리성', '탈냉전과 단극의 순간' 등 낙관적 기대들은 모두 사라졌다.


21세기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파편화되고 고립된 문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 '좌우 대립에서 중도 대 포퓰리즘-내셔널리즘으로 재편된 정치', '노동의 소멸과 자동화 경제, 악화되는 소득-자산 불평등', '인구 구조 변동과 만성적 경기침체로 가속화되는 사회보장과 재정의 위기', '신권위주의의 부상과 신냉전 체제 돌입',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 인류사회와 문명의 근본적 명맥을 위협하는 복합위기'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분명 이념과 정의(Justice)를 말할 수 있던, 핵전쟁과 공산 진영의 위협은 있었지만 경제는 호황이었고 사회는 진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던 그 시대는 오늘날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로 한가하면서 동시에 위태로운 역사였다.


오늘날에는 넓게는 전후의 패러다임, 좁게는 80년대 이래의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해 가는 상황에서 자유 세계의 내외로 위기가 해일처럼 역사적 면역으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으로 밀려든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인류의 사회와 문명이 '지속가능(Sustainable)'할 것이냐의 과제로 수렴된다고 본다.


민주주의 내부에서 민심을 이용해 더욱 교묘하게 재부상한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에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삶의 조건을 구축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의식과 책임 있는 시민들과 리더들에게 주어져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정규직, 사회보장, 젠더와 문화, 인권, 금융, 신성장 산업,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여러 사회, 경제와 정책 영역들의 문제들에 대한 시민 스스로의 숙의(Deliberation)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숙의와 공론의 장에서 제안을 내고 논의의 기조를 주도(Stir)하는 오피니언 리더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복잡화된 사회와 경제의 현실에 맞게 세밀하고도 미시적인 정책의 검토와 합의가 중요해졌다.


예컨대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임금-동일노동 원칙 법제화, 근로감독 강화와 동시에 업종이나 기업 규모별 비정규직/파견근로 등의 사용 및 구체적 계약 조건 제한 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또 재정의 경우에도 일정 부분 자산가나 고소득자, 중상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 차원의 증세를 요구하되 동시에 공공사업 축소, 지출 우선 순위 설정, 효율적 지출 전략 마련, 사회보장체계 재구축 등을 통해 재정 자체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젠더의 경우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다시 접근하여 개인의 생활과 일상 문화에 과도하게 사회적 공론을 개입시키지 않되 여성의 실질적 사회참여 활성화, 일-가정 양립, 가정 내 민주주의, 성폭력 엄단과 피해자 지원 강화 등의 실제적 차원에서 젠더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의 경우, 양도세를 건드리기 보다는 장기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마련과 배당세의 정률세 구간 상한선의 상향, 세율 인하 등을 검토하여 장기적으로 배당 목적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복잡하고 다변화된 현대 사회와 경제와 특성에 맞게 매우 다양한 '숙의적, 창의적 중도'의 해법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논의와 공론 얼마나 생산적으로 운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고,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운영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여 정치효능감과 주권 행사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하여 포퓰리즘 등을 배격하면서 민주주의를 개혁하는 주춧돌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거대 정당들의 경우 국민참여경선제 활성화, 정책위원회의 정책입안 기능 강화, 전당대회에서 정책컨퍼런스의 제도화 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오랜 세월 독재&산업화 vs 민주화 대립 구도가 양극으로 이어져 왔고, 민주화 이후로는 정책과 정무가 분리되고 감정 과잉의 정무가 정책을 통제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그러한 맥락 속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계가 내건 '중도개혁주의'는 실상 보수 세력에 맞서기 위한 개념적 구호에 지나지 않았고 그 실체는 호남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등의 영향이 짙게 묻어나 있었다.


안철수의 새정치와 중도 역시 끝까지 실체가 부재한 상태로 여기까지 왔다.


중도를 단지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이 아닌' 정무적 위치를 지칭하는 데 지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이제까지의 인물 중심, 감정 중심, 역사적 정체성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프레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양당을 지배하기에 이른 포퓰리즘을 청산해야 하고 나아가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숙의와 정책 중심 정치'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한 타협과 조정이 아닌 현장과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심리 및 중장기적 안정성-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최소 중범위 수준의 유기적인 국가 비전과 정책의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 있는 국민의 숙의와 오피니언 리더십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무대들을 제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민주정치를 혁신하고 질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파편화된 서구적 신자유주의와 과거의 위계 질서/가부장제/개발독재/권위주의 등을 넘어, 종래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 위에 중용, 절제, 관용, 내실, 조화, 균형, 포용, 자비, 유연 등이 중심이 되는 신(New)아시아적 가치를 본위로 서구의 헤게모니 붕괴 및 권위주의로 위협받는 사회문화를 다시 묶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중도를 절실히 호명한다.

작가의 이전글어떤 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