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기묘하다면 기묘한 취미가 하나 있다.
나는 명단이나 목록을 보거나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2025년 기준 관심 분야 학술논문 중에 관심가는 것들.
특정 정권에 봉직한 사람들.
화학의 모든 하위 분야들.
특히 사람들의 명단은 특정 카테고리로만 분류해도 정말 많다.
문득 '이 사람은 어떤 경위로 언론중재위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단 하나의 조직을 움직이고 또 그 조직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하나의 그룹이 되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느 하나의 경향으로 말하기 어려울 만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며 살아감의 신비함이었다.
연초에 부산현대미술관에 갔을 때 예술가 그룹인 Universal Everything의 ‘Tribes’라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봤다. (링크를 첨부했다. 감상할 수 있다.)
정확히 내가 보는 세상의 심리적, 물리적 모습이다.
이 작품은 본래 제목대로 사람들의 집합적 현상을 묘사한 것이긴 하지만 꼭 그 지점에만 주목할 필요는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신이 내려다본 세계’이다.
베로니카 로스의 영어덜트 소설 <Insurgent> 영화판의 엔딩에서 조망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시카고 전경과 그 안의 사람들을 가로지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gXBWJHjnxI
각자의 안에 하나의 우주를 품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신비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70억 개의 우주들과 그것들이 서로 하나둘씩 엮여 만들어지는 무한대의 우주들이.
그들 각자의 서사와 일상이 어떨지 궁금하다.
비록 칼 세이건의 말과 보이저 1호가 본 것처럼 우린 우주에선 그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임에도.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도덕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일부분을 지배하려 한 탓에 흘렀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증오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고 보면 만사는 상대적이다.
우리가 이토록 큰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주 속에서 우리를 보면 우린 한없이 작다.
그러나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다시 우리를 보면 우리의 세상은 한없이 크다.
작은 곤충 하나에게는 이 건물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우주겠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코스믹 호러일 것이고 다시 우린 은하와 우주 속에 있다.
한강공원의 야경을 볼 때나 한화 빌딩 밑을 지나갈 때.. 버스나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생각한다.
저 수 많은 불빛들을 모두 사람들이 만들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직무와 서사와 관계와 감정과 경험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궁금하다는 것을.
각자의 하루는 아무도 모르고 우린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더운 날에도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앞날을 고민하며 뒤척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다가올 공연이나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다음 회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또 하루의 아픔을 견디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아이가 또 한 발 걸어나가는 것을 지켜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시간은 하나의 세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우주들이 자아내는 맥락 속에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고요히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내일 당장 우리가 서로 다른 수많은 장면들과 세월들을 거쳐 아무 것도 모르는 새 인연을 만날 가능성을 품고서.
그리고 조지 칼린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있기 이전에도 지구는 있었고 어쩌면 우리가 없어진 이후에도 우주는 계속 흘러가거나 없어지거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