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인성보다 언어

중등교육혁신의 또 다른 차원

by 남재준

나는 중고등학교 때 이미 일반사회과를 매우 좋아했고 결국 재수 끝에 관련 전공을 하게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고등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며, 중등-고등 연계를 전제로 입시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공통교육의 차원도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무슨 이상적인 '전인교육' 때문이라기 보다는, 실생활이나 인간관계 등에서 보이는 여러 문제들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국어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사실 중등교육에서 기초교육이 강조되는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기는 하다.


어차피 사회에서는 직업의 본위로만 따지자면 용접공이나 환경미화원 등으로부터 대통령, 그리고 배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이한 역량과 분야나 지식, 기술 등을 요구하는 기능들이 있다.


그러나 국민공통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 하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언어 능력이다.


시민교육보다 언어능력이 어떤 의미에선 더 중요하다.


시민교육을 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시민성이 길러지진 않는다.


시민성은 단지 철학이라기 보다는, 도구적 역량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는 막말로 책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사 문제에 대한 해석이라던가 시민으로서의 독자적 의미 부여 등은 언어를 통한 사고 능력의 배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생각하는 능력'은 언어 능력을 통해서 기를 수 있다.


철학도 있지만, 철학은 다루는 영역이 다소 제한적인 반면에 (도구로서의) 언어는 대부분의 주제들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


또한 도덕윤리가 아니어도 인성교육은 언어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능한 부분이 있다.


대화의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적 맥락, 그리고 적절한 언어 예절 등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배우면 간접적으로 인성 함양도 가능하다.


어차피 인성이나 시민성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합의되어 충분히 포괄되지 못한다면, 그것을 유도해낼 수 있는 가시적 역량으로서의 언어 능력을 함양한다면 간접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


시민윤리나 민주주의 같은 것을 배우지 않아도, 문학이나 독서 등에서 다양한 텍스트를 감상하거나 독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회과가 개념 중심 체계라 맥락과 텍스트 중심인 국어과가 더 나을 수 있다.


또 오늘날 많은 청소년과 성인이 언론부터 SN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접하면서도 정작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결국 부정적인 사회적 파급 효과가 극심해지고 있다.


일상에서의 소통에서부터 사회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매체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위 'MZ 직장인(물론 편견이라 생각하지만)'이나 '서부지법 난입 폭동' 등이 모두 매체의 나비효과일 수도 있다.


결국 매체와 의사소통 및 화법에 대한 교육은 오늘날 매우 중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2015 개정 때 '매체'를 독자 영역으로 고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 포함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나아가 국어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객관식과 상대평가 등, 사실상 이공계의 편리성과 이공계적 사고 위주로 되어 있는 평가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국어교육이 가능하지 않다.


수능을 본위로 보면, 화법과 작문 영역은 사실상 '쉬운 독서(비문학)' 영역으로 전락해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냥 읽고 하나를 고르는 것 정도로는 총체적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언어는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대화하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자신의 언어생활을 점검하고 하는 것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아마도 학생부종합전형의 활성화와 2015 개정과 현재의 2022 개정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고교 때의 경험을 돌아보건대, 종국에는 지필의 부담을 덜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전히 변별의 압박이 심한 상황 속에 지필이 변별의 마지막 보루인 건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만약 실습 등 수행 요소를 더 도입하면 지필-수행 양면으로 학생들에게 과잉 학습 부담이 주어지고 실제로 그것이 내 경험이었다.


그래서도 A-Level형 수능으로 개편하고 정시를 확대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다.


수능으로 결정을 하면 내신 과정에서 최소한 경쟁을 분산시키면서 변별의 압박을 덜할 수 있다.


재도전과 늦은 도전 등을 받아줄 수 있는 제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기초영역을 완전히 P/F용 절대평가 과목으로 바꾸고, 각 학과/부의 전공적합성을 볼 수 있는 3~4개 과목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핵심이고 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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