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에서 구조로 : 절대왕정에서 재정-군사 국가로

역사 이해의 또 다른 지평

by 남재준

2022 개정 역사 교육과정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는, 종래의 '절대왕정'이라는 명칭을 '재정·군사 국가'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존 브루어(John Brewer, 1947-)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교수가 18세기 전반의 영국사를 설명하면서 이용해 대중화된 개념이다.


별 것 아니어 보여도, 이는 역사를 이해하는 해석적 내지 개념적 관점 또는 프레임의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본래 절대왕정이란 군주권을 절대적으로 행사하는 형태의 정체를 의미한다.


왕권신수설과 같은 이론적 근거를 지닌다.


그러나 이는 르네상스, 신항로 개척과 더불어 전체 역사의 흐름에서 서양근세가 지니는 중요한 분기점으로서의 해당 개념의 의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절대왕정은 단순히 군주 1인에게 온전히 권력이 집중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다소 피상적인 개념이다.


서양사는 단적으로 말해 '기나 긴 통합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서양중세의 봉건제는 이른바 '쌍무적 계약 관계'라 하나 어디까지나 봉신의 의지에 많은 것이 달려 있는 체계였다.


상비군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국왕이 귀족(봉신)들의 군을 필요 시 소집하는 형태였고 장원제로 각 봉지(영지)의 경제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봉건제는 약화되었고, 신항로 개척과 식민지 건설로 인해 중앙집권화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29-2008)는 근대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면서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말년에 귀족들은 김춘추를 후계로 세우려는 왕의 움직임에 불안감을 표한다.


특히 주진공(박영지 배우)의 말에는 뼈가 있는데, "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왕권은 강화될 것입니다."


전쟁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보다 거시적 맥락에서 보면 분권에서 집권의 경향을 만들어 낸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힘을 최고 지도자에게로 모으도록 하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계속되어 온 패턴이다. (또는 바꿔 말하면 최고 지도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명분을 외부의 적이 제공한다. 그래서 적대적 공생 관계 비슷한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점점 넓어지는 제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상비군이 요구되었고, 이를 위한 재정 전략 또한 요구되었다.


또한 장원경제가 해체되고 점점 화폐와 상업이 진흥하면서 부르주아(상공인)가 성장하였고, 이들은 장원의 소유자인 영주와 충돌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앙의 국왕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형성되었고,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중유럽의 후발 주자들에서 프리드리히 대왕, 마리아 테레지아 등 '계몽군주'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들 자체가 절대왕정이 단순히 '왕권신수'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고, 왕권신수라는 주장에는 배후의 목적이 있음을 알게 한다.


일단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정부로 힘을 모으고 체계적 중앙집권화를 이룬 후에, 결국 왕정이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구체제의 모순이 부르주아 주도의 시민혁명을 통해 주권을 시민으로 이양하도록 하면서 근대사회가 개막되었다.


말하자면 원시적 분권 형태의 봉건제 - 집권적 왕정 - 민주적 근대국가로 나아갔던 셈이다.


현대로 올수록 단순한 서사나 역사적 인과 중심 서술보다 이러한 '구조사(Structural History)'적(사회학적 접근)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학을 공부할 때 단순한 인과의 전개와 귀결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것이 '전체적 흐름 속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이다.


절대왕정에서 재정-군사 국가로의 개념 전환은 후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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