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 성찰과 내실을 바탕으로 수성의 강소국으로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제까지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광복절을 우리는 40여 년 간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 국권을 되찾은 빛나는 복된 날로서, 그리고 지난날의 치욕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경험이 없도록 민족정기를 다지는 날로서 새겨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격변기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에 국민과 국가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한민국의 다음 역사적 단계를 준비해야한다.
우리나라는 모두의 단결력을 통해 광복,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다시 신냉전과 복합위기 속으로 들어가며 선진국의 위상을 지니게 된 우리나라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여 안보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과연 더 이상 성장이 가능할 것인지와 그것만으로 경제가 추력을 얻을 수 있을지, 또 재분배를 어느 정도로 더 해야 하는지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양극화의 극단화와 껍데기만 남은 대립, 시민들의 피로감, 정치인들의 선동과 내용 없는 정치 등으로 정치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복지 지출의 지속적 증가 등 많은 진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자살 고위험군 국가이고, 삶의 질에 대한 만족이 낮고, 저출산ㆍ고령화,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 문제, 자산불평등과 고용불안정, 입시와 취업 경쟁, 개인들의 고립화와 파편화 등으로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제는 국가의 문화적 코드를 단결보다는 ‘성찰과 내실’로 전환할 시점이 되었다.
창업이 어렵지만 수성(守成)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위기 돌파의 국민’에서 ‘문제해결의 국민’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단지 그때그때의 필요가 아닌 자기 스스로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실 있는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2. 대한민국 3.0 : 개인의 역량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나라
우리나라는 대국도, 자원 부국도 아니지만 ‘사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작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하지만 우리는 약한 나라는 결코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하자.
국가사회를 내실 있게 재구성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새로운 전기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작지만 강한 나라’로서 제대로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권, 평화와 우리 삶의 방식을 지켜내기 위해 국제 규범에 따를 수 있도록 중견국으로서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한국이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하는 길일 것이다.
자동화 시대를 맞아, 단순한 성장에 대한 집착보다는 고용과 분배의 순환 고리가 절단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산업 분야에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는 동시에 시장의 섬세한 요구에 맞추어 규제개혁 등의 지원을 지속하여 신산업과 신시장이 발전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 접근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분배와 사회보장체계의 지속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단기와 중기 차원에서는 재정과 복지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되 장기 차원에서 균형재정과 세대 간 형평적인 사회보장이 가능할 수 있도록 증세 등의 복합적인 전략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의 참여를 증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숙의와 정책이 중심이 된 정치를 구현하여 이제까지 말한 문제들의 결정에 관하여 국민 스스로가 책임 있는 자세로 논의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정치인들은 이러한 논의의 중심을 잡고 새로운 의제 설정과 제안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민관 합동 고용 창출, 사회보장의 내실화 등과 더불어 총체적인 삶의 질 지표의 관리를 시행하고 이를 위해 공보육 확대, 중등교육과 대학입시의 혁신, 정신건강 및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 확충, 지방행정의 중앙에서의 종합적 조정 강화, 문화국가의 원리의 충실한 구현, 주거 안정 중심 부동산 정책 및 자산 형성을 위한 지원 강화 등을 단행해 전체적으로 양질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전체를 강조하는 흐름보다, 이제는 개인 간의 상호 이해와 관용이 중요해졌다.
공동체는 개인과 개인 간 관계에서 출발한다.
3. 인권과 미래 – 한일관계의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방향
다른 한편으로, 광복절은 무엇보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한일관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한일 양국은 몇 년 전 매우 심각한 갈등에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양국 국민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서로의 관계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와 인권의 문제는 온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다.
신냉전과 복합위기 속으로 들어가며 비서구권의 핵심 선진국 중 둘이며 같은 지역 세계에서 자유세계에 도전하는 중국을 마주하고 있는 두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각별한 위치에 있다.
또한 양국은 많은 것들이 다르면서도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관계, 절제, 공동체 등 동아시아의 좋은 가치들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내셔널리즘과 같은 나쁜 가치들도 공유한다.
진정한 의미의 ‘국가 간(Inter-national)’의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한일 갈등의 문제를 각자 ‘국가의(National)’ 문제로 보고 있으므로 진전이 없는 것일 수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가해-피해의 서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일 갈등의 뇌관인 역사 문제를 본질로서 ‘인권’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선 역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자학사관’이니 하는 말로 폄하하고, 한국에선 한일관계의 진전을 강조하면 ‘친일’이라는 말로 낙인을 찍는다.
이러한 각자의 내셔널리즘을 버려야 한다.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의 부족과 우경화의 경향 속에서도,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는 자민당 총재들도 있어왔고 나가사키 원폭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헌화한 공명당 대표도 있으며 간토대학살을 인정하자는 입헌민주당 의원들도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노력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본 전체’의 의지가 아니라 하여 계속 무시하거나 폄하한다면 결국 일본 내에서의 사과 노력도 무위에 그칠 수 있다.
또 일본이 사과함은 단순히 ‘한국에 대한 사과’가 아닌, ‘폭력적 역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계속 사과하자’라는 말이 ‘언제까지 사과하냐’는 폭력적 푸념을 이겨낼 수 있는 명분이 제공될 수 있다.
인권과 화해의 정신이 곧 각국의 입장을 넘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적 첩경이다.
일본이 진정으로 역사와 인권의 문제를 직면할 때, 비로소 일본은 진정으로 보통국가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이고 그때에는 동아시아판 EU나 NATO도 허언이 아니게 될 수 있다.
4. 나가며 – 광복 100주년까지의 20년, 응전의 미래
광복 80주년, 앞으로 100주년까지는 20년이 남았다.
그때까지 우리 공동체가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100주년 시점에서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국제사회의 리더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중견국에서 침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또다시 다가오는 역사적 위기를 무력하게 관망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되느냐는 모두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이번 광복절을 단지 대한민국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구상해보고 실천 의지를 다지는 날로 새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