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가(經世家)가 아닌 운동가 마인드로 통치하다

역대 최악의 기성세대

by 남재준

1. 최소한 친문은 명확했다


최근 금융소득세제 관련 논쟁에서 일부 친명이 ‘운동권적 반시장’ 운운하며 현실감이 없다는 식으로 진성준 전 정책위의장을 공격했었다.


하지만 운동권의 나쁜 점이 최악으로 치닫게 된 것이 바로 민주당의 현주소라는 점에서 그들의 그런 말은 어불성설이고 매우 가증스럽게 들린다.


친명은 본래 친문보다 반시장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냈었는데, 지금은 또 몇 년 만에 다시 급선회를 했다.


그런데 정책이 기조를 따라가느냐 하면, 양도세-법인세-부동산금융 등의 차원들이나 소위 '국가 주도 AI 개발' 같은 패러다임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친문의 프레임은 '윤리적 시장경제, 국가의 재분배 확대'라는 비교적 깔끔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친명은 아예 그런 게 없다.


자신들의 실제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친시장이 무슨 준거점이었다는 것처럼 비판을 하고, 또 안 그래도 부족한 다원주의와 토론 문화 등을 더욱 파괴해 나간다.


지난 금융투자소득세제 때 이미 '온라인 포퓰리즘에의 항복'이라는 진보 언론의 평가가 있었는데, 친명은 친시장이나 반시장을 따지기 전에 자신들의 철학과 입장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자들과, 자신들이 원하는 범위와 밀도 등으로만 국한해 토론에 임하려는 그 자세부터 고쳐야 함은 물론이고 말이다.


2. 운동의 태생적 한계와 경세와의 조화 노력과 실패


친문 세력 스스로가 자꾸 진영의 승리와 보수 방어라는 운동권적 대의에 갇혀 ‘갈라치기’ 프레임에 당하지 말라는 프레임에 동조하는데 그들의 진정한 나약함은 그런 데에서 비롯한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골 정신’, ‘비판과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친노·친문과 친명은 성립 연원, 철학과 바이브, 정책 등 많은 것들이 다르고 이는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사회운동은 본질적으로 기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 비판, 도전이라는 특성을 내포한다.


이는 기존의 관성적 틀을 깨고 사회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운동만으로는 세상을 경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정책기술자가 되지 않으면 즉 경세가가 되지 못하면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혁명이라는 것이 설령 일견 타당하다손 치더라도, 진정한 변화는 신체제의 수립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운동권에게는 한계가 뚜렷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니 하는 것들은 한때일 뿐, 수십 년 간 나라를 장악해 온 보수 세력을 이겨내려면 학계, 관료, 전문가 등을 두루 포섭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리더는 운동권의 혁신 의식과 경세가적 현실 의식을 적절히 결합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40년대-50년대생이 퇴장한 후 온전히 시대의 주인이 된 60년대생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사회학적 좌파의 협소한 거시 담론, 좌익내셔널리즘의 한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를 단지 신자유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보수 진영의 레토릭 정도로 이해하는 저질의 이해 수준이 이를 방증한다.


86세대 중에서도 일부는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고 입법 경험을 쌓으면서 현실 의식을 새롭게 만들어 나간 사람들이 있다.


젊은 시절의 꿈과 감성 및 탈권위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 감각을 길러 온 사람들이다.


반시장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이들이 꾸준히 인문주의, 탈권위, 민주주의, 자율과 분권, 재분배와 복지국가, 인권 중심 등을 강조해 온 것은 치하할 만하다.


비록 오류와 한계도 많았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했다는 점에서는 인정할 수 있다.


3. 흑백논리, 교조주의, 표리부동, 정책무능, ... 누가 진정한 운동권의 실패인가


하지만 86세대 강경파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편협한 흑백논리와 거시적 사회 담론, 이를 위한 교조주의와 기율 중심 조직 논리에 사로잡힌 이들은 더 나이가 들어가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서 자신들의 본의에 반하는 부정합한 수단이라도 정당화하는 메타인지의 마비에 이르렀다.


실용이라는 것도 최소한의 정합성과 기준을 요구할뿐더러, 민주주의하에서의 실용주의가 결과지상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화 즉 탈권위주의와 시스템 및 절차 중심주의를 핵심적 정체성으로 삼아온 자신들의 전통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 하는 것은 전혀 납득될 수 없다.


오늘날 실용이나 중도로 은폐된 민주당의 본질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데, 심지어 그것을 감출 생각도 없는 노골적인 표리부동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숙의나 절차를 무시하는 비민주주의를 택한다.


정책기조로서 친시장을 주장하지만 실제 내놓는 정책은 반시장적인데 그렇다고 그것이 진보적인 지향성을 지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인권 중심은 사라지고 정무적 눈치만 남았다.


이들의 심리는 아직도 스스로를 비주류로 생각하는데 정작 사회적으로 중간관리자 이상급이며 경제적으로 중산층이고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인식과 실제의 괴리는 현실인식과 정책기조 그리고 실제 정책과 정무적 행보 등에서 각 항목이 전후좌우가 어긋나고 그 항목들 간에도 부정합한 뒤죽박죽에 엉망진창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예컨대 민주당은 압도적 권력을 쥐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비주류라 생각한다.


자동화 시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 놓고는 언제 그것을 주장했냐는 듯 자동화를 가속화하는 정책을 성장 중심 담론이랍시고 내놓는다.


보수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시기가 이미 지났고 스스로도 그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 중시 등을 강조하며 보수임을 입증받고 싶어한다.


너무 뒤엉켜 있어서 어디서부터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도 가늠키 힘들 만큼 현재의 민주당은 엉망진창이다. (비명, 친문 등도 사리보다 당의를 앞세워 이를 두둔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60년대생의 화양연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민주당은 역대 가장 미숙하고 무능한, 자아도취에 빠진 기성세대가 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는 상황에서 이 무능의 죄악과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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