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을 지켜보며
검찰청의 폐지와 기획재정부의 분리.
꼭 필요한 입법이었을까?
집권여당으로서 국정의 원활하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운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집권 초의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불필요한 의제에 소모했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사라지더라도 공소제기와 유지의 업무는 남는다.
그것을 공소청으로 재편하면서 수사지휘 기능을 따로 둔다는 발상은, 기능적 차원에서 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말로 요약된다.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이 '검찰개혁하면 죽느냐'라는 취지로 일갈했는데, 역으로 '검찰개혁이 아닌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면 죽느냐'라고 묻고 싶다.
어찌되었건 몇 년 전의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어 거대한 지각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절차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고도로 제한하는 특성을 지니므로, 인권과 기본권의 보장에 있어 긴요하지 않는 한 가급적이면 혼란이 없도록 변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형사사법체계의 원활한 운영을 통한 형사적 정의 구현은 검찰의 정치화에 대한 정치적 심판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중요한 궁극적인 목표이다.
검찰청의 폐지와 후속 절차 등의 거대한 행정 비효율을 감수하기에는, 검찰 심판은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검찰의 정치화가 검찰의 포괄적인 수사지휘권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도 아직 의문이 있다.
사실상 형사사법체계의 대규모 재편으로 인한 혼란과 제반 업무의 비효율만 증가시키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강하다.
기획재정부를 과거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때처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 자체가 절대적으로 작다고 말하기에는 이제 어렵다.
오히려 앞으로는 전달체계와 지출의 효율화, 생활보장과 건전재정의 양립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보장의 지속가능성은 이미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연금개혁 등과 관련해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또 토건을 통한 경기부양은 이미 민주당에서 금기시되어 온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달리 대규모 공공사업을 할만한 성질의 산업도 각별히 없다.
AI, 바이오 등 첨단산업들은 노동의 양보다는 숙련도를 더 따질 것이며 또한 고도의 시장 자율을 요한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도 않고, 민주당의 강령에서부터도 그러한 맥락에 따라 양질의 고용 창출과 사회서비스 및 사회적경제 활성화 등을 내걸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확장재정을 위해 예산 부처만을 별도로 떼어내 통제하겠다는 것은, 우선 확장재정이라는 전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잘못이며 또한 조세-예산의 순연과 유기적 연계를 위한 재정전략 및 재정개혁이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 타당치 않다.
차라리 이전에 언급했듯 금융정책 영역을 일반금융정책-금융감독-금융소비자보호 등으로 세분화하지 않고 따로 분리하면서 한국은행-금융위원회 간 적절한 거시-미시 금융정책 권한의 분산을 도모함이 타당하다.
정작 확장재정이 의욕하는 지출 대상 분야 중 하나인 복지 등이 중점이 되는 사회정책 영역이 총책인 사회부총리제는 폐지되었다.
장애인의 탈시설과 이동권 등 배리어 프리, 1인 가구 증가 즉 개인화 및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정책, 유보통합, 다양한 가족 형태의 지원, 가정 내 민주주의, 성평등 사회로의 갈등 없는 세심한 전환 및 조정, 인적자본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과 보장성의 양립, 고용보험과 개호보장의 충실 등 실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정책이 제일 중요한 정책 영역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외형상 서로 연관성이 적어 보이나 실은 유기적 연계와 통합, 조정이 필요한 사회정책 분야의 컨트롤타워를 아예 폐지한 셈이다.
과학기술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강조되어오던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과학기술은 단순한 경제성장을 위한 생산요소이자 외생변수가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한 내생변수가 되어 있다.
AI 상용화, 기후변화 등에 대응해 사회와 경제의 융합적이고 포괄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IT 산업이 처음 활성화되던 시대의 마인드로 과학기술 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 다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정부와 시장의 기능을 명백히 분리하고,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는 최적정부(Optimal Government)가 필요한 상황에 1930-40년대 뉴딜 시기의 큰 정부를 역설한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나 공공사업 등 뭔가 가시적이고 체계적인 기획과 청사진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이 정권은 말로만 실용이고 실제로는 실용이 아닌 이념에 따라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