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실천적이다

by 남재준

인문학은 실천적이다.


다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의 '실천'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보통 어떤 학문이 '실천적'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간단히 말해 실생활이나 경제생활 등에 도움이 된다.


예컨대 의학은 인간의 건강을 지키며 공학은 경제생활의 기반이 된다.


무엇보다 그러한 학문들은 대개 취업과 직결된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실천은 대개 사회과학, 형식과학, 자연과학, 응용과학을 포괄해 '과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본다.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과학과는 방법론이나 인식론의 측면에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대개 (반드시 물질이 아니더라도) '피상'을 다루지만 인문학은 보통 '추상'을 다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는 사회, 우주, 인체 등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지만, 인문학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인문학은 이와 같이 메타과학(Meta-science)의 차원도 가진다.


자연은 본래 개념적 구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인간의 인식에서 비롯된 개념이 그것을 제한적 범위 내에서 설명할 따름이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것을 다룬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 주제는 한 마디로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을 다루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의식은 심리학과 뇌과학 등에서 다루므로 추상이라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간단히 말해, 추상은 피상적 객체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 추상성만 가지는 객체에 대해서도 모두 성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과 뇌과학은 피상적인 객체로서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지만 철학에서는 추상적인 객체로서의 의식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이는 물리학+천문학 그리고 철학의 우주론의 차이와 같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문학에서의 '실천'은 이러한 인문학의 특성에 비추어 역시 앞서 언급한 실생활이나 경제생활 등의 피상적 실천이 아닌 '추상적 실천'을 의미한다.


추상적 실천이란 예컨대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인생과 의미란 무관한가?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생을 사는가? 인생에 의미가 있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또 그 전제로서 어떤 가치관,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인가?' 등이 있다.


한 마디로 다른 영역들이 하드웨어를 담당한다면, 인문학은 소프트웨어를 담당한다고 나는 본다.


사람에게는 정신적 깊이(Mental Depth)라는 것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것과 추상적 실천은 중요한 관계가 있다.


정신적 깊이가 깊은 사람이 추상적 실천에 더 신경을 쓰며 꼭 쓰지 않더라도 실천을 해 나가고, 반대로 정신적 깊이 얕은 사람은 추상적 실천에도 덜 신경을 쓴다.


그런데 반대로 추상적 실천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정신적 깊이가 깊기도 하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성숙한 사람은 자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유의미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생각이 많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성숙한 면모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러한 영역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라는 하나의 이유로 중요하다.


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이다.


그 이유가 생물학적이건 뭐건 간에, 우리는 가치와 생각의 동물이며 가장 단순한 인간조차 생각을 한다.


인간은 실존적 위기에 던져져 있다.


인문학은 여기에 도움을 준다.


실존이라는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도움을.


그래서 어떤 식으로건 인문학을 '제대로' 접한 사람은 사회적 명예, 경제적 부 등 피상적 차원이 어떻건 인간으로서 평안 같은 것을 가지고 또는 발전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비록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않았거나 아예 평가 절하하는 사람은 사회적 명예, 경제적 부 등 피상적 부유함을 누리더라도 불행하거나 불안한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 이유를 스스로는 절대 알지 못하며 그래서 더 불행하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인문학의 가치를 깨닫고는 하는데, 그것은 삶을 살면서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경험 등 '인문적 층위'가 점점 원숙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인문학은 마치 모래 속의 보석과 같다.


찾고자 하며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쓸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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