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업보 : 조선 세조의 후계에 관하여

by 남재준

정희왕후 : 자식들 중 전하의 성정을 가장 빼닮은 아이입니다. 끝까지 전하에게 등 돌릴 수 없을 것이니, 당분간은 다그치지 마시고 내버려 두시지요.

세조 : ... 세자마저 아픈 이 마당에.

정희왕후 : .... 세자는, 꼭 일어날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전하께서 더없이 당당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셔야지요. 전하께 거스르려는 자들이 많으리라는 것은 각오한 바가 아니옵니까.

세조 : .. 외가에 가 있는 황이를 불러와야겠소.

정희왕후 : 황이가 보고싶으십니까. 병이 차도가 있다 하오니 조만간 불러오지요.

_ 드라마 <공주의 남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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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정희왕후의 성격 차이가 보이는 대목이다.

세조는 1457년(세조 3년)에 의경세자 이장이 20세로 요절하자 해양대군 이황을 세자로 책봉하니 그가 후일의 예종이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아들이 아픈 순간에도 후계에 대한 염려를 아들에 대한 걱정과 함께 하는 세조의 비정한 성격을 잘 드러냈다.

세조가 해양대군을 찾는 이유 중 (극중) 정희왕후나 일반인이 흔히 하는 생각으로 장남이 아프니 차남도 걱정되고 보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은 반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종사의 대계를 이을 후사가 위중하다는 데 대한 조선국왕으로서의 걱정 그리고 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진 혈통을 끊어버리고 자신으로부터 이어지도록 다시 만들어낸 왕통이 끊어질 수 있다는 개인적 욕망으로부터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실제 세조 역시 의경세자가 아팠을 때부터 이런 걱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의경세자 사망 당시 2세에 불과했던 장손이자 의경세자의 장남이었던 월산대군 이정의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대신에 7세의 차남 해양대군을 세자로 바로 책봉했다.

세조가 즉위했을 때 이미 38세였는데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40-50세였고, 형 문종이 그 나이에 죽은 바가 이미 있었다.

게다가 월산대군이 너무 어리다는 점이 이와 맞물려서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이 큰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러한 양상은 예종이 요절하는 바람에 또 다시 반복되어, 자성대비(정희왕후)는 예종의 차남(장남 인성대군 이분은 1463년(세조 9년) 2세 때 사망했다)인 제안대군 이현이 3세로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왕통을 다시 의경세자계로 돌려 의경세자의 차남이었던 잘산군 이혈을 예종의 후계자로 결정하니 그가 성종이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장손임에도 또 다시 왕위계승에서 비껴가게 되었는데, 잘산군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어쨌든, 궁극적으로 보면 세조는 자신에게서 왕통이 이어져 나가게 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지만 부모로서 참척을 겪고 손자인 인성대군이 아기 때 사망하는 등 불행한 가족사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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