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Life politics)에 관한 단상 1

패러다임 시프트를 위하여

by 남재준


일본의 '생활정치(Life politics/또는 생활자 정치(生活者 政治))'에 관한 논문을 좀 보고 있다.


요는 시민 주도의 협력적 거버넌스와 (생활 문제를 다루는) 정책 주도 정치에 있다.


이전에도 간간히 관심을 두긴 해 오던 것인데, 최근의 정치문화를 보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적 차원에서, 정당/노동조합 등에 기대거나 대중주의/직접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 모두 문제가 있다.


실은 두 가지 양상이 우리나라에는 전부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가 단순히 극심해지는 것을 넘어 양 진영 내부에서 포퓰리즘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중도층이 양 진영을 견인하거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기 보다 양 진영이 중도층을 두고 선택을 강요하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또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진영 대립이 극심하고 정작 정책 논의는 한참 정체성과 이념이 핵심적 균열 축이었을 때보다 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민간의 역량이 매우 커지고 볼륨이 높아지고 복잡해져서 단순히 국가의 힘으로는 자원이건 가치이건 온전히 효과성을 장담하기 어려워 졌다.


게다가 시민의 의식 발전은 그러한 국가의 후견적 개입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민을 단순히 시혜적 존재로 취급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시민의 생각이라면 옳다고만 하는 것도 둘 다 문제이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노동시장 유연화, 복지 등 공공서비스의 민간화/민영화 등)의 결과로서 '생활의 불안정'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


생활정치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노동자, 소비자 등 가계와 서민을 통합하여 정치주체로서 강조하면서, 사회적/문화적으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의 공존(젠더/섹슈얼리티/가족 등)과 고용노동, 복지, 환경 등의 사회문제들을 경제와 더불어 포괄적/통합적인 '삶의 질' 차원에서 다루고자 하는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종래 동아시아의 국가/가족 등 중심의 보수주의와 계급 등 중심의 진보/혁신정치를 넘어서면서, 뉴노멀이 된 신자유주의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각자도생에서 공존으로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구체적 실현은 상당히 난망하다.


왜냐하면 완전한 직접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동시에 정치적(정당으로부터)/사회경제적(이익집단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차원에서 자유롭고 이성적인 시민의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발적인 연대라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각자도생이 뉴 노멀인 상황에서는 생활정치는 이를 위한 문화변동을 향한 리더십이나 여러 정치사회적, 정책적 시도들이 축적되는 장기적 기획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정당에서의 오픈 프라이머리 및 정당 자체의 개방적 플랫폼화나 중앙행정 차원에서의 공론화 활성화 등이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네트워크 사회나 사회 사이버네틱스(자기조정기제)라는 것은 사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라면 몇 가지 사회/정책 실험이라도 있지만, 국가 단위 패러다임으로까지 성공해본 적은 없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삶의 문제를 숙의하고, 또 정부가 이를 조정하면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체제라는 발상은 질적 변화에의 염원이지만 동시에 질적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 그러한 정치사회를 향한 여정은 그 자체로 단계적이거나 완결적인 것이 아니라 진퇴를 반복하면서 계속되는 것이다.


어떤 노드(예컨대 리더십)나 사건이나 사회변동 등의 충격 등이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자체적인 변화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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