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치의 단기적 전망과 일본 리버럴이 나아갈 길

by 남재준

일본의 일각에서 ‘다마키 총리론’이 나왔지만 결국 다카이치 내각의 성립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논의 중인 자민-유신 간 협력 논의가 연립정권으로까지 갈지 아니면 각외협력에서 그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야권으로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리지명선거는 중참 양원에서 재석 의원 투표수(무효표 포함) 과반을 달성한 후보가 있으면 바로 총리로 지명되고 결선투표로 가면 과반수(절대다수대표제)를 요구하지 않고 최다득표자가 선출되는 방식 즉 상대(단순)다수대표제를 따른다.


중참 양원의 총리 지명자가 다르면 중의원 지명자가 우선이므로 중의원을 기준으로 본다.


자민(191)+유신(35)의 중의원 의석 합계가 226석이고 입헌(148)+국민(28)을 합치면 176석이다.


입헌+국민에 공명당(24)을 더하더라도 200석이다.


유신회가 어느 편에 서느냐가 관건이다. (결선투표까지 간다고 했을 때 유신회만 다카이치에게 투표하면 그대로 지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렇지 않다면 입헌(148)+국민(28)+유신(35)=211표가 되어 자민당의 191표보다 앞서므로 야3당이 단일로 지명한 사람이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입헌(중도~중도좌파)-국민(중도~중도우파)-유신(중도우파~우익)은 서로 가치적 차원에서 연대하기에는 이념 차가 너무 크다.


예컨대 경제정책 차원에서 입헌은 생활보장을 중시하지만 유신은 작은 정부를 더 강조한다.


만약 이시바 총리 즉 온건파가 자민당 총재였다면 공명당과의 연립 지속을 전제로 유신회가 아닌 국민민주당과의 협력이 가장 맞다.


그렇지만 다카이치 총재는 좀 더 오른쪽이고 이 경우 일본유신회와의 협력이 더 맞으며, 나아가 과반(233석)에는 약간 미달하지만 공명당과의 연립이 파기된 상황에서 적어도 총리지명선거는 일단 넘길 수 있다.


총리가 되면 적절한 시점에 중의원 해산을 해서 자민당이 다시 과반을 확보하면 그만이다. (단, 그때까지 국민이 자민당을 계속 의석 여유 있게 충분히 집권시킬 만큼 지지한다는 전제하에.)


한편 입헌민주당 입장에선 우경화된 지민당 내각의 성립을 당장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수 있다.


우선 현재의 국민민주당은 2020년의 전(前) 국민민주당과 입헌민주당으로 통합될 때에도 따르지 않은 정도의 사람들이다.


보수 성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졌다.


하지만 입헌민주당은 기본적으로는 2017년에 호헌 리버럴 세력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고, 2020년 확대 후에도 평균적 기조는 이전 민주당-민진당보다 조금 더 진보적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같은 98년 민주당이라는 뿌리는 있지만 입헌-국민은 미묘하게 결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했듯 입헌-국민을 합쳐도 과반에 미달할 뿐만 아니라 공명당까지 합친다고 해도 과반에는 많이 미달한다.


그렇다고 입헌-국민-공명-유신이 한 연정을 수립하거나 하다못해 지속가능한 각외협력이라도 하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현재 다카이치 총재에 대한 일본국민의 기대감이 상당한 수준(약 60%)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해서 굳이 반자민이라는 반대의 정치적 대의에만 의존해 야권 연립내각을 수립한 후에 우왕좌왕하다 ‘역시 민주당계 내각은 무능하다’라는 등의 역풍을 매우 쉽게 맞을 수 있다.


자민당 정권에 대한 피로가 인물론으로만 돌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는 아직까지 비판적 의문이 있다.


다카이치 총재가 유신회의 손까지 잡는다면 공명당이 완충 장치 역할을 했던 아베 내각 때보다도 더 우익적인 성향의 내각이 들어서는 셈이다.


게다가 자민당의 통일교 유착이니 정치자금 회계 문제니 하는 것도 결국 다카이치가 속한 자민당 우파(강경파)의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결국 반(反)자민 야당의 시각에선 조금 더 국민이 자민당에 대한 신임을 잃을 때까지 기다리고(물론 최적은 정권교체까지 치솟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가 확실하게 수권정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어차피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말이다.


현재 입헌-공명 간에도 조심스럽게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잘 살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8111490.jpg 2009년 6월 9일, 차기 중의원 총선거를 위한 포스터를 발표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1947-) 당시 민주당 대표. 이 총선에서 민주당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제1야당으로서 입헌민주당의 핵심 과제는 예전 민주당 시절이나 지금이나, 자민당과의 차별점을 부각하면서도 국민에게 매력을 끌 수 있는 뚜렷한 독자적 화두와 감성의 제시이다.


2012년에 참패한 직후 2016년 민진당 창당까지의 민주당은 가이에다 반리, 오카다 가쓰야가 당대표로 있었는데 이때의 화두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지키는 힘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나라로’)


‘국가와 성장’을 내세우는 아베 내각에 맞서 ‘사람과 삶’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2009-2012년의 끔찍한 난맥상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그냥 정권교체도 아니고 자민당에 민주당의 5~6배에 달하는 압도적 과반을 선사했다.


그랬으니 레토릭이 좋아도 정국의 바이브상 약진조차 기대하기 힘들었다.


지금의 경우에는 일단 이념적 단일대오는 약간 더 강해진 상황이다.


‘사람과 삶’은 각각 구체적으로 전자는 특히 역사와 방위 문제에서, 후자는 경제와 복지 문제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삶’ 또는 ‘생활’의 문제를 일본의 민주당계는 강조하면서 사회보장의 확대와 충실을 강조했다.


이는 가계의 구매력을 뒷받침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했으므로 한편으로는 자민당 내각에서 점진적, 지속적으로 해 온 소비세 인상은 없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다른 한편으로 토건 중심 경기부양을 최소화하고 지출심사제도를 강화해 ‘낭비되는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내적 모순이 있는 정책들이었다.


물론 케인스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적자재정이 일리가 있다고도 하지만, 사회보장 체계가 지속가능하려면 재정 전략과의 순연은 필수 전제였다.


이는 결국 간 내각 때 소비세 인상 논쟁으로 인한 민주당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현재 고물가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상당한 상황에서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최소한 식료품 등 생필품에 한해서는 소비세를 감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일리가 있다.


소비세를 증세하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건 불을 지르면서 물을 끼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고 더구나 고물가 상황에서 임금이나 사회보장이 물가상승을 지속적으로 따라잡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전체적으로는 누진세제인 세목들을 확대하여 중산층 이상 국민들에게 부담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요청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을 것이다.


요는 자민당은 적자재정을 계속 감수하더라도 확대재정을 하겠다는 취지이고 확대재정의 상당 부분은 방위나 토건에 들어가겠지만, 입헌민주당은 생활보장과 건전재정 양립을 원칙으로 증세에 대한 합의와 생활보장 및 첨단기술, 중소벤처 등에의 전략적 지출에만 집중한다는 차별화이다.


이는 과거 민진당이 말했던 ‘사람에 대한 투자’와 맥이 닿는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정치적으로 겁을 먹어 제시하지 못했던 전면적 증세론을 꺼내든다는 것일 점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부채는 너무 심각한 수준이고, 중앙은행이 언제까지 이를 커버할 수도 없으며 이미 저출생-고령사회인 상황에서 복지 수요는 거대하게 팽창한다.


언제든 국민에게의 청구서는 불가피한 것이며 빠르냐 늦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나마 늦었다가 경기가 지속적으로 호전 상태를 유지하고 구조개혁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있지 않다면 어쩌면 긴축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며 국민의 생활보장에 충실한 방향으로 목표와 지출을 집중하면서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하는 편이 타당하다.


다른 한편으로, 종래 평화주의를 중심으로 군국주의, 국가주의로의 회귀를 반대한다는 취지로 ‘사람’을 강조해 온 부분이 있다.


이 지점을 국가-국민 관계와 방위 확대 및 개헌을 서로 연계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반대 논리를 제시할 필요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컨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리버럴과 혁신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반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인본주의가 있으며, 이는 무엇보다 일본국민들에 대한 사죄이다.


일본국민들은 징병과 원자폭탄 등 군국 시대 자국 정부에서 상당한 고통을 받은 면이 있다.


국민의 자유와 평화는 인간안보 등의 개념으로서 오늘날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단지 외국에 대해서만이 아닌 자국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방위를 과잉 확대하고 나아가 자위대를 군으로 전환한다면 이는 이미 상시적인 경제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민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안길 뿐만 아니라 장래에 징병제를 부활시킬 수 있는 명분의 초석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일본의 누구도 먹고 살기에도 힘든데 방위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징병제가 부활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 본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국민적 기저 감정이 1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압도적 과반을 점하고도 아베 내각이 개헌에 실패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설령 공포 마케팅이라고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우리 국민에게 왜 좋지 않은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역사-방위 차원의 문제에서 조금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자민당 주도의 지속불가능한 관성에서 벗어나, 사람을 돌보며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일본을 만든다’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활보장과 건전재정의 양립,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본위의 개헌 반대 등 일관된 자유주의적인 정책 이니셔티브가 과거 민주당 정권 때의 난맥상과 내분 그리고 다소 약한 논리 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0년 입헌민주당의 출범은 과거 민주당 시절의 근본적인 내부 노선 분쟁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것 같다.


그러나 정권교체로까지 나아가려면 여당이었던 시절의 미숙한 정권 운영과 강하고 지속가능하지 못했던 화두 및 비전 제시 문제를 극복 즉 수권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적 과제이다.


다카이치 체제하의 자민당 나아가 일본의 정치와 국정이 훨씬 우경화될 것인 만큼 일본정치의 균형추를 위한 입헌민주당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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