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수정/보완 가능)
우리나라 교육의 진정한 문제는 능력주의니 수시/정시니 하는 게 아니라, 선발 역량과 교육/직무 역량의 따로 놀기와 캠벨/굿하트의 법칙에 있다.
*캠벨의 법칙(Campbell, 1976): 의사결정에 쓰이는 정량 지표일수록 그 지표를 향한 부정·왜곡 압력이 커지고, 지표가 그 대상 영역을 왜곡한다.
*굿하트의 법칙(Goodhart): 측정치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측정치는 좋은 측정이기를 멈춘다.
나는 국제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때는 2011년 개정 교육과정(2009년 개정 교육과정의 부분개정)이 운영되고 있었던 때로 안다.
상당히 미묘한 시점이었는데, 정시 중심에서 수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으로 학교가 교육과정을 재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과도기로 인해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변화는 또한 아직 정시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나보다 2년 정도 선배들 때 국제정치 과목 수업시간에 수능 법과 정치를 수업하는 등의 문제를 적발당한 경험 등도 영향이 있었다고 안다.
하지만 개편된 교육과정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내가 교육과정평가의 운용과 국제고 제도에 대해 회의감이 있는 이유가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상황에서 그것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에 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국제고는 ‘국제 전문 인재’의 양성을 목표로 하지만, 이것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그 자체로만 본다면 외국어와 사회탐구 역량을 함께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것이 내가 대토론회에서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사회과가 너무 적은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들은 첫 번째 대답이었다. (두 번째 대답은 후술한다.)
영어와 제2외국어 즉 외국어를 조금 더 개설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영어가 거의 학기당 8-9단위에 달했다는 것이다.
국어가 통상 4-5단위이고 수학이 4-6단위 정도 되었으며 대강 16-17주 기준 주당 총 단위수가 약 30단위였으니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다.
보통 일반고에서 영어는 4-5단위 수준에 머무른다.
기본적인 영어 과목에 심화영어 과목을 하나 얹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1학년 때 실질적으로 모든 고등학교의 공통과목이었던 한국사 3단위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유일한 국제 관련 과목은 지역이해 2단위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그중에 상당 부분은 거의 일반선택과목인 세계지리의 내용 그대로였다.
당시 지리 선생님께 왜 이런 거냐고 물으니, 지역이해가 개설된 학교가 거의 없어 어떻게 가르치고 문제를 출제할지의 방향을 잡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사를 사회과의 일부로서 사회과 심화 교과(후에 2015 개정에서 국제 계열 전문 교과)와 함께 놓고 보더라도, 일주일에 5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과 심화 교과는 기본적으로 대개 ‘국제’가 붙은 과목들로서 국제고 전용 과목이었다.
영어과 심화 교과 등은 기본적으로 외국어고 전용 과목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 교육과정은 1/3을 국어, 수학 등 일반 교과로, 1/3을 영어로, 1/3을 사회와 제2외국어, 과학 등이 나눠가지는 식이었다.
그러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러면 국제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국제고 제도를 폐지하자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국제고 제도가 있고 그것을 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제도의 취지에 맞게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게 옳지 않나?
외고가 별도로 있는 한 국제 계열 교육과정에 영어를 과잉되게 개설하는 건 제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사회과 자체의 시수를 놓고 보더라도 전체 시수의 1/6에서 1/7 수준 밖엔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제2외국어는 학기당 꾸준히 3단위였는데 이 정도는 보통 일반고에서도 생활/교양 등 영역에서의 필수 시수가 있으니 일단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 때 언어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언어라는 것이 입문해서 1년 정도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언어를 수년은 해야 그래도 좀 능숙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택자 수와 변별 등의 행정적 문제 때문인지 학년을 올라가면서 언어를 바꿔야 했는데 이는 이 언어도 저 언어도 그냥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당초에 외국어 역량을 국제 인재의 중요 역량으로 본 것치고는 적절치 않았다.
다시 사회과의 문제로 넘어와서, 범사회과(도덕윤리+역사+지리+일반사회)의 시수는 2학년 때 8단위, 3학년 때 12단위 정도로 증가했다.
그 이유(1학년 때 사회과 시수가 매우 적은 두 번째 이유)를 교무부장 선생님은 1-2-3학년의 계열성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탐구 영역 과목들은 고학년에 배우는 것이 심화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타당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어-수학-영어를 ‘기초’ 영역이라 부르는 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교육과정이라는 게 어디 실제로 그런가?
국어, 수학, 영어는 도구성을 띠기도 하지만 독자적 학문이기도 하고 특히 국어의 문학이나 수학은 독자성이 강했다.
예를 들어 국제정치를 배우기 위해 굳이 문학이나 화법을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렇다고 국어-수학-영어 수업 운용에서 무슨 국제 관련 내용을 다룬 건 없고 그냥 일반고에서와 똑같은 수업이었다.
영어과는 시수 여유가 있었기에 수능 영어독해에 더해 토론이나 프레젠테이션, 영미문학읽기 같은 것도 진행하긴 했는데, 모교인 중학교에 가서 내가 중3일 때 학년부장이셨던 영어 선생님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부정적인 의미로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그게 의미 있나? 이 비슷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일반과목 법과 정치를 먼저 이수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법과 정치는 아예 개설되지도 않았고, 국제정치의 4단위를 2단위씩 쪼개어 반은 선생님이 임의로 제작한 정치철학자 사상 정리, 반은 국제정치 교과서로 수업을 나갔다.
기본적으로 그래도 정치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국가 내의 정치 현상에 대해 이해한 후에 국제정치로 넘어가는 게 그래도 좀 더 타당하다고 본다. (실제 현 2022 개정 교육과정 ‘정치’에서도 국제정치는 맨 끝에 있다.)
체계성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내용적으로도 자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발표나 레포트 등이 있었다는 이유로 ‘대단히 선진적’이다, 우리는 대학에서 할 경험을 미리 한다는 식으로 자랑을 했다.
사실 이것도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내가 대학에서 역사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했던 말씀처럼,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 논쟁을 하려면 지루하더라도 공통의 개념과 지식, 전제에 대한 이해가 확고하게 선행되어야 한다.
더구나 당시 국제 계열 과목처럼 내용 구성이 교사의 자의적이기 쉬웠다면 더욱 우선 가능한 시수 안에서 선수 과목으로 볼 수 있는 일반선택과목(e.g. 세계지리, 법과 정치)을 우선 개설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모조리 영어과로 채웠다고 나는 본다.
또 3학년에 표면적으로는 사회과 시수가 많지만, 이는 거의 무의미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3학년은 1학기는 수능이건 수시건 본격적인 지원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을 상황이다.
2학기는 수능 직전이라 또는 수능 이후라 사실상 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 많은 시수들은 어차피 무의미해진 것이다.
게다가 내용상으로도 한국의 사회와 문화 과목(사회과 심화 과목의 하나)에선 시수 일부를 수능 한국사 수업에, 비교문화에서도 시수 일부 일부를 수능 사회문화 수업에 썼다.
여기에 더해 일반적으로 모든 대한민국의 사회-과학 탐구 과목에서 나타내는 ‘내용의 무의미화’가 나타났다.
예컨대, 변별력 있는 킬러 문항은 주지하다시피 논리 퍼즐, 시뮬레이션 통계 분석 등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임의로 제작된 ‘A국과 B국에서의 세대 간 사회이동 구성’의 표 분석 기술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그 분석 기술이 통계학인 것도 아니고, 순전히 시뮬레이션에 불과하기도 하다.
게다가 그런 문제를 한두 개 정도 다뤄놓고서는 시험 문제에선 태반이 통계분석 문제로 출제되었다.
이런 지점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니, 일반사회 선생님은 ‘다루지 않았느냐’라는 취지로 말했다.
시험에서 통계분석의 비중에 비해 수업에서 무슨 실제 사회통계분석이건 시뮬레이선 통계 분석이건 제대로 한 게 없었다.
그냥 두어 번 ‘다뤘다’라는 게 그렇게 난이도를 높인 시험의 명분의 전부였다.
대부분의 국제 교과 수업은 시수의 절반을 쪼개서 일반선택과목(e.g. 세계지리, 사회문화, 경제 등)처럼 운영되었다.
불가피한 선택인 면도 있었지만(앞서 언급한 지역이해의 경우나, 고등학교 수준을 넘지 않으면서 국제경제를 일주일에나 5단위를 수업하는 건 한계가 있다) 동시에 교사의 자의적 운영으로 내용상 체계나 논리가 없고 거의 뒤죽박죽이었다.
사실 이건 완전한 별론인데, 사회과는 탐구 과목(즉 예컨대 지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위한 지식 중심 과목)과 시민 과목(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주시민교육)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교육목표는 민주시민인데 내용은 대학교 개론 수준을 윤문하고 압축한 것이다.
게다가 그걸 객관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그냥 외워서 그대로 떠올리는 기계적인 학습 위주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젠더 불평등은 그냥 그 관련 개념 몇 개를 외우고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통계 등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끝난다.
이런 교육이 실제 성인이 되어 시민으로서 젠더 문제를 건설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반대로 너무 주제토론형으로만 가면 기본 지식에 대한 충실한 이해 없이 그냥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싶은 부분만 이해할 수도 있다.
또 사회과를 탐구과목으로 대하고 싶은 학생들도 있는데 그걸 다소 무시하는 셈이 된다. (즉 미래의 전공-진로와 직결해.)
그나마도 예컨대 사회문화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을 킬러문항으로서의 통계분석이 차지함은 주지의 사실이며, 다른 사회-과학 교과들에서도 그러하다.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 시험 문항으로서의 논리 퍼즐, 시뮬레이션 통계 분석 등이 실체고 사회나 과학의 내용들은 껍데기처럼 전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객관식 평가가 매우 적절치 않은 사회과는 더 취약하다)
사실 노동, 금융, 젠더, 세계화 등 다양한 주제들을 실제 사회현상 및 시사와 연계해 실천 중심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통합사회는 본래 그런 의도로 설계된 과목이지만, 평가와 입시까지 전면 개혁 없이 하다 보니 결국 개별 교과 교사들이 쪼개서 2-3학년 선택과목 내용의 일부를 가르치고 그걸 붙이는 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손 치더라도 수능 과목으로서의 통합사회는 그냥 ‘쉬운 공통과목 1’ 정도의 위상이다.
불안정노동 문제라던가 내셔너리즘의 부상, 기후위기의 현실화, 인공지능과 정보윤리 등 다소 예민한 사회문제들을 학생들의 불완전성이라느니 보호라느니 하면서 교육의 진공 상태로 두어 버리니 그 공백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극단적이고 부실하며 천박한 내용들로 채워버린다.
이런 점에서 시민 과목과 탐구 과목은 분리되어야 한다. (e.g. 일본처럼 ‘공공’을 전체 공통으로 두되, 탐구 과목은 우리 선택과목 그대로)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이중 평가 방식에 대한 부담이다.
실질적으로 상대평가 내신은 결국 지필평가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아는 흔한 다수의 객관식과 약간의 단답형 내지 서술형으로 구성되는 그 시험 말이다.
그런데 수행평가를 발표나 레포트로 잔뜩 채워서 학생들에게 할 일이 많아지게 한 다음에 정작 또 지필평가는 일반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고 지필평가는 난이도가 높았다.
당연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전부 영어 성적 기반으로 선발되어 들어왔고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학생들이었으며 열심히 하는 이들이 많았으니, 이 상황에서 상대평가로 가르려면 별 수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40%의 레포트나 발표 등과 60%의 고난도 지필평가를 한 번에 감당해야 하는 거대한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 문제는 후에 등급제가 완화되면서 내신 자체로서는 약간 해결되었을지 모르지만, 대입 차원에서는 수시의 공정성이라는 의문을 새로 만들었다. (만약 상대평가를 완화해 5등급제로 만든다고 하면 어떻든 이전의 9등급제보다는 1등급이 늘 것인데, 그러면 이제는 순전한 주관을 가지고 학생부를 평가한단 말인가? 그런데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정확히는 불평등한 학교 인프라라는 배경이 전제되어 있다.)
결국 학기 시작 후 몇 주 간은 수행평가 때문에 다시 지필평가 전 2주 간은 지필 때문에 과로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끝나고 우는 아이들을 많이 봤고, 결국 필연적으로 이 잔인한 피라미드는 만들어져야만 했으며 그 꼭대기에 있는 아이들 중심으로 지원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고 특목고에서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있는 이들은 일반고보다 열악한 입장이라고 볼 여지도 있었다.
왜냐하면 입시의 차원에서 보면,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정시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내신에서 밀린다면 정시를 오로지 혼자 힘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고.)
다른 한편으로 학교가 정시를 아예 의식하지 않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미적분1을 이수할 때 일주일에 6시간을 배웠으니 5일 내내 수학 선생님을 보고도 하루는 2시간을 보았다.
정시를 의식하지 않고는 이렇게 편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과 과목 중에 6단위를 차지하는 과목은 없었다.
사실 좀 더 거시적 차원으로 보면, 국제고 제도는 태초부터 그 취지 달성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꼭 당시의 선생님들 탓만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속였거나 아니면 대외적으로 속인 건 사실이다. 1학년 때 수시로 충분히 대학을 갈 수 있다 했지만 3학년 때 학부모들이 3학년부 교무실로 찾아올 만큼 피라미드의 상층 일부를 제외한 사람들은 결국 사실상 ‘개털’이 되었으니.)
국제 전문 인재는 구체적인 성과 지표로 나오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외교학과를 많이 보내면 되는 걸까?
그러기도 어렵거니와, 관련 대학 학과들이 국제고 출신자에게 주는 무슨 특별한 제도적 안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당초 특목고 제도를 설치한 다양성과 전문화라는 명분이 타당하다손 치더라도 실제로는 입시 구조 등의 이유로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구조적 운명에 처한 제도였다.
대학입시가 중요하고 수많은 자사고, 특목고와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다)
또 내부적으로 여전히 상대평가를 본위로 변별을 강하게 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도 했기 때문에 수행-지필의 이중고, 그리고 그것이 낳은 특목고에서 버려진 이들의 양산은 어떤 의미에선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