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경계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노는 편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른들 속에 있으면 아이였으니 당연히 불편했지만(어렸을 땐 사실 어른들 속에 있는편이 조금 더 나았다), 또래 속에 있을 때는 너무나 불편했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어딘가가 항상 내가 있는 곳이었다.
정치 성향도 부동층/크로스 보터/무당층 중도가 되어 왔다. 일본에서 자민당 좌파와 입헌민주당 우파, 미국에서 공화당 좌파와 민주당 우파, 영국에서 노동당 우파와 보수당 좌파를 오가는 식이다. 나는 보수나 진보에 모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일정 부분 반대한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섞이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내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원을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젠더 차원에서 종래의 젠더적 스테레오타입으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모두 일정 부분 공감하고 일정 부분 회의적이다. 계층 차원에서 나는 중산층 중 하층에 속한다. 말하자면 부모님이 전문직 중 변호사나 의사 같은 상위 클래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교사나 구조기술사와 같은 하위 클래스에 있는, 그러나 아주 부족한 것도 반대로 아주 풍족한 것도 아닌 중하층에 있었다. 지역적으로도 나는 일산 출신인데, 성남이나 일산 등은 수도권에 포함되고 대개 부동층/중도층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지역 정서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모저모를 따져보면, 나는 어느 측면에서나 어느 한쪽에 명백히 속하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도 꽤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측면이 있어서 이제는 단순히 감성이 ‘같은 것 같다’라고 해서 무조건 어느 주장이나 진영 같은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장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명확한 나의 가치관과 문법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 기준과 상황을 보는 시각과 판단에 따라 양쪽을 오가거나 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중립(Neutral)이라기보다는 중도(Centrist)에 가깝고, 또 중도 중에서도 무색무취한 경우보다는 가치관과 바이브가 뚜렷하게 있는 중도를 선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학규, 안철수, 이낙연 등 중도를 자처해 온 어떤 한국 정치인에게도 공감하지 않는다.
경계인으로서 나는 세상을 스펙트럼으로 본다. 어느 하나의 측면이 세상이나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보다는 그 측면은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나 자신이 그러한 인식의 증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