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대/동아시아적 자유주의를 위한 제안
자유주의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개인의 삶과 공간을 존중하고 사회가 개인을 돌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문화,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또 직무/학업 역량을 제대로 합리적으로 측정하는 교육,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사회보장/재정 차원에서의 지속가능한 사회경제를 위한 구조개혁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래의 케인스주의, 확대재정, 보편 복지, 지방분권, 법조개혁, 균형외교 등 민주당의 모든 노선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가치 - 개인의 자유와 인간존엄성, 지속가능성 - 을 본위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개
-내 욕구의 충족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공존, 사회적 관용까지 나아가는, 가치관/문화/바이브의 진정한 의미의 열린 사회로의 진전
-사회투자와 건전재정의 균형,
-관치경제의 근본적 타파와 진정한 자생적 시장으로의 전환
-중산층까지의 조세 부담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저소득층과 중하층이 자산 형성을 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경제 구성
-수능혁신을 전제한 정시의 확대, 로스쿨 제도의 혁파와 변호사 자격시험 간소화 등 합리적 교육혁신
-국민참여경선 확대 등 당원 중심 포퓰리즘 정치를 타파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하여 국민에게 열린 정당, 신념과 리더십 있는 유능한 정치인을 키울 수 있는 정치개혁
-지방분권보다 중앙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현실적 인정
-국제적 스탠다드에 맞춘 문화예술, 기초학문, 인권보장의 증진
-신냉전 시대에 맞춘 대중 기조 전환과 한일, 한-EU 관계 등의 강화와 국제사회에 책임지는 규범 선도 한국
등을 골자로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비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무능한 민주주의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정치체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비전과 정책을 제대로 낼 수 없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
최근 서구에서 청년 세대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지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버려지는 개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생각도 자리 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때까지 이어 온 전통은 엄밀히 말해 반(反)권위주의이지, 자유주의 그 자체가 아니었다고 느낀다.
개인의 자유, 개성과 다양성, 숙의 등의 원리와 가치가 민주당의 본위적 가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건 단지 권위주의적 DNA를 가져 온 보수정당에 대한 '반사적' 결과였을 뿐이다.
민주당을 지배해 온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반(反)보수였으며 현재 이재명 치하의 민주당은 그것이 가장 극단적이고 추악하게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지 정책적으로 무능한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체제 원리 차원에서 현재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자기들만이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실은 이런 점은 이재명 이전의 민주당에도 은근하게 깔려 있었지만 민주당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고 최소한의 윤리 의식은 지금보다 더 있었기에 표가 덜 났을 뿐이다.
민주당에 본격적인 자유주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문재인 때까지의 감성적 이념의 정치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수권정당화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동조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세부적인 정책설계 역량이라던가 무엇보다 정책/구조/제도의 영향력 하에 있는 당사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이제는 민주화라던가 복지국가라던가 하는 체제나 거시적 패러다임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는 민주주의는 이루어 냈는데, 팬덤과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으로 성행하는 포퓰리즘과 음모론을 어떻게 극복하고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우리나라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단행할 것인가?
또 사회보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연금개혁이나 건강보험개혁, 보다 근본적으로 재정개혁을 어떤 전략과 수단으로 해 나갈 것인가?
여러 라이프스타일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병존만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상호이해와 소통을 키우고 공존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것인가?
이러한 구체적인 문제들에 답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당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시각과 전체적인 구조나 제도 차원의 시각을 아울러 꼼꼼하게 볼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면 그냥 더 포퓰리즘화되고 극단화된 여의도 문법에 익숙해지고 마치 내부 승진하듯이 공천을 요구하는 정치인들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상층 이상만으로 관료와 법조인들이 충원되어 중하층과 하층의 현실과 민생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전무한 사람들이 능력주의나 추상적인 자유 같은 것을 운운하면서 탁상 운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발국가와 고성장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고, 동시에 현재의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비자유민주주의를 지속할 수도 없다.
민주화 이후 약 20여 년 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방향을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인본적 자본주의의 기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분리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동양의 불교, 도가 등에서 비롯되는 통합적 세계관을 수용하며 자비/중용/절제 등의 가치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한 세계관에서는 개인-사회-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되어 있으며, 예컨대 자연과 생태의 보존 의무도 바로 이러한 데에서 연원한다.
유교적 위계와 전통이 중시되었던 경직성을 띤 종래의 아시아적 가치를 넘어 신(新)아시아적 가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3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체제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단지 개별적인 정책이나 현실이 아니라 총체적인 패러다임, 문화, 구조의 전환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이니셔티브가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