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보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않고 지켜야 할 것만 더 나쁘게 바꾸는 것은 예전부터 민주진보진영의 폐단이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엔 보면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가치조차 평가 절하하는 수준이 되었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 때까지의 윤리적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던가 점진적 인권보장이라던가 성장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 가치도 인정한다는 점이라던가 정치가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본위로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지켜야 하는데 되레 전부 버리거나 평가 절하한다.
오히려 일반적/평균적 국민의 생활 감각이나 현실에서 다소 유리된 듯한 측면, 보수진영에 대한 반대라는 정체성에 갇힌 사고라던가, 부동산정책을 비롯해 경제 현실에 어두운 부분이라던가, 미투 시국이나 조국 사태 그리고 이재명 방탄 등을 통해 뚜렷해진 과도한 '동지애' 문화의 문제라던가,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라 검찰개혁 등의 정도와 방향에 대한 수정의 부재라던가... 이런 고쳐야 하는 점들은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무슨 '좌파적/이상적 경제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용이 중요하다' 느니 하는 말들이 자꾸 나온다. 그런데 그야말로 날 것의 운동권식 사고방식은 이미 민주화 이후 민주당계 정당이 수권정당으로 변모하고 진보정당도 원내정당이 되면서 영향력이 많이 감소했다. 그러니 그 시절의 얘기까지 가져오는 건 약간 한계가 있다.
2000년대-2010년대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잘못된 건 맞다. 그러니 원리는 유지하되, 시대의 변화와 구체적 맥락에 맞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은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재인 정부 때까지 보다 훨씬 퇴행적이 되었으면서도 간판만 실용이나 성장이나 중도를 말한다. 심지어 요즘 반대자들을 상대하는 태도와 언행 그리고 성장중심주의의 재소환과 인권 의제에서의 퇴행 등을 보면 거의 개발국가를 민주당 버전으로 재소환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계엄-탄핵 정국 이후 현재까지 민주진보진영이 쓰는 언어들은 과거 보수진영에서 '좌파 몰이'를 하던 때 쓰던 권위주의적 어조와 매우 닮아 있다. 그리고 내부 진영에 대한 엄청난 순혈주의(?)와 1인 정당화도 그렇다. 이전에 언급했듯, 문재인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주주'였지만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의 황제'이다.
청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현 민주당 주류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 그들의 프레임을 그냥 그대로 따라간다. 어떻게 보면 그냥 무난하게 86세대나 97세대로부터 권력을 넘겨 받으려는 커리어 관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소장파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기라도 하는 국민의힘의 소장파 의원들과는 엄청나게 다른 지점이다.
86세대와 97세대가 모든 도덕적/정치적 권위와 권력을 장악하니 후진들은 그냥 그 밑에서 자기 차례로 넘겨줄 때까지 순응하는 문제가 보인다. 이런 것도 어떤 면에선 세대와 역사적 정체성이 본위로 된 정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실 정말 위기인 건 국민의힘이 아니라 민주당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국민의힘은 완전히 내용과 결이 다른 보수(개발국가 보수에서 개인주의 보수로) 로 언젠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은 차세대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지 기반도 중요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시대라는 무대를 풍미할 수 있는 비전과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주당엔 후진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전혀 없다.
패배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으로 인한 선택들이 결국 패배를 가져온다. 원칙 있는 패배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멋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옳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권력을 국민에게 요구하는지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그 권력이 오직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라면 차라리 패배하는 게 낫다. 그런 정당은 존재 가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