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는 기본적으로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넓히는 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 소질, 계발 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이를 진로/진학과도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2028년 대학입시가 어떻게 전환될 지를 두고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의 입시는 이러한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고교학점제에 따라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교육과정 내 비교과활동 등을 하면 이전보다 자기의 관심 등이 더 잘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최근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종합적인 성적과 세부 특기 사항 등을 위주로 본다고 하는데, 이는 이전보다 전공적합성을 적게 본다는 의미일 수 있다. 실제로 '고교생에게 전공적합성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교육과정이 실질적으로는 순연되지 않고 대학에서 요구되는 사고와 역량은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니까..' 등의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맞다고 하면, 결국 대학입시는 더욱 그냥 '종합적인 지능과 스펙이 좋은'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밖에는 되지 못한다. 고교학점제로 오면서 좀 더 선택권이 확대되고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표현하고 이를 직간접적으로 대학전공과도 연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전환했다면, 입시도 그런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무전공이나 융합전공 등을 증가시키고 있는 추세가 있다고 한다면, 사실 이는 고교학점제와는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무전공이나 융합전공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것은 그다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많이 언급했지만, '통합', '융합' 이런 것은 개별 분야들에 대한 소양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후에 이를 상위 차원에서 합치는 고급 사고 역량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예 학부 전공이나 고교 교육과정을 '통합' 위주로 편제한다고 하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과 '공통'은 또 다르다. 공통이라는 것은 각 분야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모두 학습하는 것이고, 통합은 서로 다른 분야들을 경계를 허물고 섞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석박사 단계라면 몰라도, 학사 단계에서 전공 제도를 축소한다는 건 맞지 않다. 더구나 '고등학교 졸업은 별 의미 없고, 대학에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2028년에 개편될 수능마저도 과거 영어에 이어 사회/과학도 영향력이 더욱 줄 것으로 보이고(이전에도 최소한 문과에선 사회과 영향력은 적었지만) 국어, 수학 위주로 더욱 재편되면서 인적성 위주로 재편되는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이건 매우 부적절하고 심각하다. 창의성이나 통합적 사고 능력이나 이런 것은 지능을 본위로 선발해서는 제대로 된 인재가 선발되지 못한다. 인적성이나 수능은 본래 '최소한의 기본적인' 역량만 본다며 출발한 시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능순으로 아이들을 선발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수능에서 영어가 완화되었고 이제는 탐구마저 완화시키겠다는 건데, 이건 학습 부담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특정 과목들만으로 경쟁 지표가 집중되면서 되레 더 비합리적으로 학업 부담을 가중하는 게 될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서 대학에선 입시를 '종합적인' 성적과 특기사항 위주로 평가하고, 수능도 인적성처럼 실질적으로 완전히 국어와 수학만 본다고 하며, 전공도 보다 장기적이긴 하지만 점점 무전공이나 통합 전공 등으로 간다고 한다면 기만적이다.
고등학생이나 학부생에게 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필요하지만(분명히 그런 역량과 관심이 있는 학생들도 있을 테니), 그걸 주로 하는 건 안 된다. 기본적으로 각 분야에서 역량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그 분야의 전공적합성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도구로서 시험이 작동해야 하고 하위(고교) 교육과정이 편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보더라도 전공적합성을 무조건 위주로 보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부교과전형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봄 직 하다고 본다. 수능은 혁신을 전제로 한다는 조건으로 정시를 50%까지는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수능 개혁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주로 바칼로레아를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A-Level이 더 낫다고 본다.
영연방 국가들과 같이 고교를 졸업할 때 기본 학업성취도 평가(GCSE)를 시행하고, 수능은 A-Level처럼 학생이 전공이나 관심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3-4과목을 선택해 치르도록 전환되어야 한다. 굳이 국어나 수학을 기초 적성으로 남기고자 한다면 문항 수를 축소하고 난이도를 낮추며 절대평가로 해야 한다. 국어국문학과나 수학과 진학 희망 학생은 선택과목 중 국어나 수학 심화 과목을 택하면 되는 것이고. 단, 영국에서도 법학과와 같은 전공은 변별력을 위해 LNAT과 같이 인적성을 함께 치르므로 이런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선택과목의 수준과 난이도를 높이는 편이 합당하다.
통합형 전공은 학사 수준에서는 개설하되 그것이 인문사회나 자연과학 일부 학과(부)들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석박사 수준부터 본격적으로 통합/통섭/융합 등을 개설하는 편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