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496988
1. 2026년 일본 중의원 총선에 대한 기본적인 주관적 전망
이 예측이 틀리기를 바라지만(개인적으로 나의 정치적 견해는 (종교 문제와는 별도로) 공명당에 제일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주도 자민당은 승리(과반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승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가 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자민당은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회복하지 못했으나 후술하겠지만 정치는 호오에 따라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2. 최근 일본정치의 동향에 관한 개인적 시각
자민+공명 연정 종식 후 입헌+공명이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합당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는 나름대로 일본 야권에 큰 지각 변동이 될 것 같다.
다만 일본정치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일본의 야권은 이미 아베 때부터도 청년 세대에게는 구세대 정당으로 여겨졌다. 공명당의 연정 이탈에 대해서도 일부 청년들은 ‘잘 되었다’라고도 했다. 말하자면 잔소리하는 엄근진 꼰대들은 싫다는 정서 때문일지. 또 아베노믹스라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은 아베 신조가 그토록 오래 신임을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신회는 자민당이 부담스러워하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당이고, 또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개헌파 정당인데 보수방류인 다카이치 사나에 주도 자민당과 유신회의 연정은 결국 자공연립 때와 달리 자민당 보수본류 외에는 브레이크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민당은 보수정당이고 주류 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어지간하면 판을 크게 흔들지 않고 싶어 한다(보수정당들이 잘 성공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 당이 잘 나가는 이상 다카이치의 리더십을 막을 이유가 보수본류에는 별로 없다.
3. 정치역학적 균형 차원에서의 우려
여러 정책 측면에서 자민-유신 연정의 과격성은 슬며시 고개를 보이고 있다. 이번 국회의원 정수 축소도 1년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자동으로 의석을 줄여 버리는 강경책을 택했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다카이치 총리의 ‘과로’ 장려가 노동규제완화를 통해 일본을 다시 과로 사회, 성과는 높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회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아베 시절에는 자민당 내 비주류(소극적으로 속도 조절 정도만 제안했겠지만 그것도 큰 요인이다), 공명당, 리버럴 야권 등 자민당을 규범적으로나 역학적으로나 통제할 수 있는 주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카이치 체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4. 다카이치 사나에의 자민당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
다카이치 총리는 나름대로 강경성을 어느 정도 통제해가며 빠르고 분명하게 국정 이니셔티브를 잘 추진/수행하고 있다. 야권에선 중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지만, 우리나라 민심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주당을 친중 정당이라고 여기는 것과 비슷하게 일본 민심도 중일관계의 안정화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중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한일 양국의 민심의 기저에 있다.
내 예견대로 사나에노믹스는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또 자민당이 지지율 1위이지만 동시에 무당층이 그보다 비율이 높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러면 대안이 있나? 설령 호헌 야권의 대의에는 동감한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건 경제나 사회 등 내정이다. 적어도 다카이치 사나에는 비전이 분명히 있지만, 야권에는 개별 이슈에서 소비세 감세 주장 등은 보이지만 어떤 통합적인 청사진은 잘 안 보인다.
게다가 원래부터도 자민당이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열정적 지지를 받은 정당이었는가 하면 내가 보기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자민당은 그냥 ‘국정을 담당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 경우이다. 무엇보다 업계의 이해관계 등이 체계적으로 자민당과 연계되어 있기도 하고. 한 마디로 사람들은 자민당이 싫은 면이 많지만 그래도 자민당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본다.
거기에 다카이치 사나에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카리스마적 개성을 지녔다. 기실 의원내각제 하의 총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리더를 보고 투표하는 것도 상당히 클 것이다. 야권에는 돋보이는 리더가 없다.
결국 정치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 국정/정책 이니셔티브와 비전, 역량 + 규범적 우위 정도가 합쳐지면 (특별한 요인이 없는 한)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사실 규범적 우위는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지금 일본정치에선 자민당은 앞의 2개를 모두 확보했고 야권은 규범적 우위 밖에는 없다.
2017년 총선에선 호헌 리버럴계가 존멸의 위기에 놓여 호헌의 기치와 대의를 살려야 한다는 서사가 크게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시바 내각 때에는 자민당도 중도, 입헌민주당도 중도여서 큰 차별점이 안 느껴졌다. 그러니 어느 쪽도 압도적이지 못한데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 및 통일교와의 관계 의혹 장기 집권 피로 등으로 인해 과반을 잃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로서는 혼자 그 책임을 뒤집어 쓴 셈이다.
다카이치 내각에선 유신회와 더불어 자민당의 기조가 더 뚜렷한 우파가 되고 기존 야권은 노다 요시히코와 사이토 데쓰오가 주도하는 입헌+공명 중심으로 중도가 강조된다. 다마키 유이치로의 국민민주당은 기본적으로는 입헌-국민 합체에 반대하고 끝까지 당에 남은 이들이긴 한데 이 당도 개혁중도 비슷한 걸 자처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아베 때 그랬던 것처럼, 오른쪽에서 강경파라는 점을 상쇄하고 능가할 이점들을 다키이치 주도 자민당이 아베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크게 가지고 있으니 중도층까지 강하게 끌어들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5. 결론
결론적으로 자민당은 이번 조기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 규모가 어느정도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다카이치 내각은 브레이크 없는 우파이다. 중도 성향인 입장에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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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야권의 딜레마 : 대의와 공학의 조화
어쩌면 입헌-공명 합당은 언젠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주당계와 공명당은 미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자민-공명이 서로 성향이 상당히 다르지만 공통의 이해관계로 뭉쳤는데, 민주-공명은 서로 성향이 상당히 같고 굳이 따지자면 이해관계를 못 합칠 것도 없는데도 뭉치지 않았다.
1994년 소선거구제 개편 이후, 일본 야권의 과제는 단 하나였다. 자민당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는 것. 1993년 야8당 연립, 1994년 신진당 등 자민당에 대한 반대만으로 뭉치는 실험은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민주당이 가장 성공한 축에 속하긴 했지만 국정 역량 부족과 내부 통합 실패 그리고 자연재해의 불운이 뼈아팠다.
호헌만으로는 유기적, 자발적 통합을 만들 수 없다. 사실 호헌 자체도 꽤 분열적인 이슈이고. 2017년에 한 번 홍역을 겪으며 일단 야권의 대의는 호헌 쪽으로 기운 게 확실해 보이기는 한다. 문제는 자민당에 대한 ‘단결된’ ‘대안’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여러 경우의 수를 모두 동원했다. 처음에는 90년대 초에 여러 중소 정당이 합쳐봤지만(호소카와 내각) 실패했고, 90년대 중반에는 신진당으로 보수 성향 쪽으로 정리해 묶어봤으나 실패했으며, 90년대 말~2000년의 민주당은 그나마 안정적이었고 성공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베주의가 풍미한 2010년대는 야권의 암흑기였다. 2020년대 현재, 입헌민주당은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민주당보다 대안적 수권정당의 면모가 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입헌-국민은 서로 나뉘어 있다.
민주당계와 공산당의 연대는 항상 당내에서 논란이 되어 왔다. 그나마 구 입헌민주당(2017-2020)은 기본적으로 사회당계 등 민주당 좌파-리버럴 중심으로 구성된 정당이고 공산당과의 연대에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입헌민주당은 리버럴 빅 텐트 정당이고 에다노 유키오 초대 대표 이후의 이즈미 켄타, 노다 요시히코는 모두 당내 우파로서 민공 연대에 부정적이다. 결국 설령 선거에서는 합친다고 해도, 그다음의 호헌이 아닌 방대한 정책의제들마다 의견이 다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러니까 연합의 정치공학적 이익과 정책적/대안적 국정 주체로서의 통합된 정체성을 한 번에 가져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2. 자민-민주-공명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공명당의 운명?
공명당은 본래 90년대에 자민당과 극한 대치했다. 자민당은 신진당 등 야권 연합의 배후에 공명당의 튼실한 기반인 창가학회가 있음을 감안해 공명당에 헌법상 정교분리 위반 등 공세를 퍼부어 야권을 약화시키려 했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그랬는데, 소선거구제 시행 이후 도시의 창가학회 표가 필요했던 농어촌 기반 자민당은 공명당에 손을 내밀었고 1999년 자공연정이 성립되었다.
정책적으로 볼 때, 자민당에서 보수본류가 당권을 잡고 있는 한 자민당과 공명당의 관계는 무난한 편이었다. 하지만 2012-2020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 때 자민당과 공명당은 개헌 이슈를 두고 계속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는 공명당은 효과적으로 자민당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공명당 간부조차 ‘솔직히 우리는 민주당과 더 맞다.’라는 점을 인정했다. 어찌 되었든 연정은 십수 년이 더 이어졌는데, 다카이치 사나에가 총리가 되면서 공명당의 인내심이 바닥 난 모양이다. 실질적으로 공명당이 최근 선거에서 손해 본 것도 상당하고. 특히 공명당이 집중 공세를 퍼붓는 이유는 자민당이 정치자금 문제를 깔끔하게 근절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2010년 참의원선에서 이미 자민당에 밀리는 등 수세에 몰린 민주당 내각 말기에 노다 요시히코는 공명당에 손을 내민 적이 있었다. 그는 당내 우파였으므로, 당내 좌파가 공산당, 사민당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공명당이 더 선호할만한 연대 대상인 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자공 연립이 참패하면서 이미 공명당에 위기감이 고조되었는데, 결국 이시이 게이이치의 후임인 현임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가 자공연립을 깨면서 1999년부터 2025년까지 대강 26년을 이어 온 연합은 끝났다. 공명당은 1998년 이전의 사실상 불교 버전의 좌파 리버럴 내지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돌아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