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이산이라는 인간의 비극적 생

by 남재준

내가 보기에 정조의 치세 근본적으로 이산(이성)이라는 사람의 생은 매우 비극적이다. 11세에 아버지를 처참하게 잃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당하고, 이후 성인이 되고 군주가 되어서도 치세 내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남긴 비극의 그림자 속에서 발버둥쳐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어려움으로 치닫는 조선 후기의 정세를 감당하며 사회경제개혁을 단행하고 모범적이고 완벽한 유자 군주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노론이 사도세자에 반대했다거나 정조의 승계에 반대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노론의 일부가 그랬을 수는 있어도 이미 영조 후반부에는 노론의 일당전제화가 완료된 동시에 영조의 완론탕평으로 인해 탕평파만 주로 남게 되었으므로 사실상 세자의 찬성파 역시 노론이 상당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세자는 엄연히 왕의 후계이고 영조가 어렵게 얻은데다 대체재도 마땅치 않았으므로 노론이 주도적으로 세자를 죽이려 했다 함은 이상하다. 설령 세손 즉 정조라는 대체재가 생겼다손 치더라도 신하된 입장에서 세자를 죽이는 일을 주도하고 그 아들을 보위에 올리면 멸문지화가 불가피하므로 그런 일은 노소를 떠나 신하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손이 있는데 다른 종친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설령 효종과 같이 세자에게 형제가 있었다 해도 인조가 그랬던 것처럼 영조 즉 금상의 의지가 제일 결정적이다(사실 기본적으로, 인조조 당대를 포함해 이후 정권과 주류를 장악하는 산당-노론은 물론이고 일관되게 사대부들은 일단 인조-효종 승계를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심지어 영조는 위신이 추락한 호란 후의 인조보다 막강한 권위를 유지했다. 어떤 이유건 임오화변은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정신적 문제에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던 영조가 스스로 책임지고 벌인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조가 제거한 것은 상당히 표면적으로 세자에게 적대한 인물들에 가까운데 그들이 영조를 가스라이팅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영조가 결단해 가는 데 있어 부채질을 한 이들일 뿐. 그리고 특히 홍인한의 경우에는 대리청정을 방해하고 영조에게 항명하는 대역을 범했던 데다 정조는 세손일 때 암살 위협을 겪는 등의 일이 있었기에 본보기로 엄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모년의 대의리'를 천명한 것은 엄연히 영조였다. 그리고 노론 벽파는 어디까지나 이 의리를 아주 견고하게 고수했을 뿐이다. 어떤 면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 괜히 정통성이라던가 여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정조의 왕위를 그냥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일이기도 했기에 나름대로의 충(忠)이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벽파는 당색이 뚜렷했지만 노론, 소론, 남인이 고루 섞인 시파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사도세자 추숭을 열정적으로 옹호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후일 정조가 지목해 순조의 후견인이 된 노론 시파 김조순이 끝내 사도세자 추숭 의제를 꺼내 들지 않은 점으로부터 알 수 있다.


시파는 통일된 당파라고 보기에는 미묘한 데가 있었다. 애초에 '시'자도 명확히 의리에 '편벽'되었다는 벽파와 달리 '시의'에 물들고 따르는 자들이라는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노론 시파인 김조순과 남인 시파인 정약용은 엄연히 견해가 다르니까. 끝내 정약용은 재등용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김조순은 정약용을 계속 배소에 두려고 하지 않은 정도는 있었던 듯 하니 미묘하다.


신하된 입장에서 선제적으로, 집단적으로 선왕이 세운 의리를 꺾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극도로 부적절했으므로 기본적으로 명분은 벽파에 있었다. 그리고 정조도 이를 끝내 부인하지 못했다. 동시에 정조는 추숭을 위한 정치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라도 노소 모두가 공격하고 배척한 남인 채제공, 이가환을 등판시켰으나, 두 사람의 존재 자체부터 극렬한 정쟁거리가 되었던 만큼 끝내 새 의리를 형성하지 못했다.


정조는 준론탕평을 통해 사색당파의 중지를 모아 사도세자 추숭의 새 의리를 원했지만 실패했다. 오회연교에서도 극히 우회적으로 새로운 의리의 필요성을 말했을 따름이었으나, 그 직후 결국 정조는 승하했다.


사실 어찰을 보낸 신하들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면 그렇게 험한 말을 쉽게 내뱉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것을 보면 심환지나 김종수와 같은 벽파 대신들과 정조의 관계는 정적이라기 보다는 복잡미묘한 관계였던 듯 하다. 기본적으로 군신관계이지만, 정치적 의리를 두고 미묘하게 대립하는 관계이며, 또한 이 간극을 메워가려고 노력하는 군주와 마음은 알지만 의리는 저버릴 수 없다는 신하..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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