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혁신 : 다시, 사람과 더불어

포스트 이재명 시대를 생각하며 - 민주당과 민주주의의 혁신을 위한 제언

by 남재준

포스트 이재명 시대에는 정치의 본질을 은폐한 실용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혁신'을 핵심으로 '다시, 사람과 더불어'로 가닥을 잡을 필요가 있다.


민주혁신이란, '민주당을 혁신'한다는 의미와 '민주주의를 혁신'한다는 의미가 함께 있다.


민주당은 세대의 정당이다. 민주화와 대보수투쟁이라는 시대정신을 품은.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불안정성-불확실성의 노멀화, 문화적 파편화, 사회경제 시스템의 위기,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의 부상, 신권위주의와 신냉전, 지속가능성 위기, AI의 디폴트화 등의 근본적이고 상시적인 변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과 정서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기존에 민주당이 보존해 온 가치를 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사람과 더불어'라는 표어는 이 점을 반영한 부분이 있다.


'다시'란 적어도 한동안은 그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더불어'란 본래 민주당이 지향해 온 '함께 잘 사는 나라', 신영복의 '더불어 숲'이라는 공동체적 연대를 의미한다.


'사람'이란 본래 '국민'이었던 것을 바꾼 것인데, 이는 국가라는 사회 구성원이 아닌 존엄한 인격을 가진 개인을 뜻하며* 문재인 개헌안에서도 국민에서 사람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바 있다.


*이는 특히 외국인 등도 모두 '사람'으로서, 비록 현실적 한계는 남더라도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권리보장에서 차별/배제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국가에서 사람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이 전제 위에서는 인간은 자유로운 이동권을 포함해 어느 국가에서나 보편적 인권을 보장 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


'사람'으로의 전환은 청년 세대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청년 세대는 사회에 긍정적 인식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직장 환경 문제, 취업난, 자산 형성의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사람은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에 냉소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으로 다시 초점을 바꾸고 국가가 그들이 부당한 진입장벽이나 구조적 모순 등에 처하지 않도록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가능하게 하는 국가(Enabling State)'가 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가 복지국가를 넘어, 사회보장과 재정의 균형을 감안해 필요한 복지정책을 강하게 하고 교육, 고용노동 등까지의 종합적인 시스템 리뉴얼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개인에게 힘을 부여(Empowering)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 시민사회, 시장의 자율성(권리+의무 비례/균형 전제)을 인정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사회서비스의 확충을 통한 사회적 임파워링, 고용 창출과 자산 형성 지원을 통한 경제적 임파워링,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개인의 정치효능감과 정치적 주체성을 제고하는 정치적 임파워링 등 다양한 차원의 정책기조로 번역될 수 있다.


나아가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경제를 회복하고, 자생적 사회통합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의 궁극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주주의의' 혁신도 중요하다.


그간 '현대' 민주주의에 내재된 자유주의적 요소 - 개인의 자유, 관용, 법치주의, 입헌주의, 견제와 균형 등 - 들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의 양태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다수 주도 포퓰리즘, 법치주의와 견제와 균형 등의 침식, 양극의 서로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과 불관용, 소수자와 소수파에 대한 무시 등.


민주주의는 아주 협의로 그리고 1차원적으로 보면, 단지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체제(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민주주의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헌법과 같은 사회규범이 양질의 민주정치를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과제는, 첫째로 개인의 정치적 효능감을 되살리고 둘째로 극단화/파편화된 정치사회를 다시 모으는 것이다. 둘을 동시에 회복하는 최선은 숙의민주주의 즉 파편화되어 수렴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의 건전한 공론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중앙 차원에서의 숙의를 활성화하되, 정치인들이 적정한 오피니언 리더십의 역할을 수행해 논점 이탈/과열 방지나 논의 속도 조절 및 새로운 비전과 제안의 제시 등을 담당해야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선동적 집단에 묻히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참여와 정치적 효능감을 제도 정치 안에서 보장하려면 숙의의 활성화 말고는 대안이 없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논의가 정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많아지는 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면대면으로 대화할 때는 익명 뒤에서 대화할 때와 화자/청자의 태도라던가 화법 등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숙의는 의사소통과 심리의 이러한 측면을 정치사회적으로 활용한다.


또 논의가 정체될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오피니언 리더십이 중요해진다. 반드시 정치인일 필요는 없지만, 논의의 생산성을 제고하려면 결정권자가 주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에서 정치인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현대 대의제는 자유위임을 넘어, 복잡화/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다하고 '하나의 거대 사회집단으로서의 국가를 이끌기'보다 '국가라는 복잡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키를 잡는(Steering)' 리더십을 요청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정부, 국회, 정당 등이 국민에게 좀 더 열린 논의의 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가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근대적 당원 중심 정당 모델을 부활시키거나, 팬덤 역학에 기대어 팬의 기대에만 부응해 혼자 치고 나가는 셀럽적 지도자를 계속 택하거나, 물고 물리는 스캔들 싸움에만 집착해 정작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시한폭탄의 시계를 무시한다던가 하면 문제가 폭발할 것이다.


종래에는 양당이 서로를 기득권층처럼 규정하며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았다면, 종국에는 이 양당이 복점(Duopoly)한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을 기반으로 서구의 극우 세력과 같이 전혀 새로운 유의 정치 세력이 양당 모두를 먹잇감으로 삼아 부상할 수도 있다. 사실상 민주정치가 침식되고 마비되는 것을 넘어 아예 서서히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민주혁신'이 단행될 긴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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