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진보의 '정책실패'를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해하지만, '문화 실패'를 탓하는 것은 완전히 그릇된 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문화'는 온전히 인류사회에 찾아온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원래 미래란 그런 것이다. 미래로 도달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재가 되고 곧바로 과거로 남는다. 진보란 도달할 수 없는 미래에의 끊임없는 진전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자 중 누구도 부모들에게 자기 자녀를 방종하게 키우라고 하지 않았고, 학생에게 교사에 대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 존중과 배려는 언제나 상호적인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보적 요청은 언제나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조적/문화적으로 언제나 약자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를 한 번 쯤 더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일례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가 자녀의 세계를 형성하는 상당 부분이고 제일의 권위가 된다는 점은 변할 수 없다).
이러한 문화가 온전히 자리 잡는 일은 요원하고, 일정 부분 자리 잡더라도 또 다른 개선점의 탐색과 해결이 요구된다. 어차피 세상은 진보적 염원과는 상관없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진보적 목소리가 좀 더 가시적인 상황에서 종국엔 진보의 탓을 한다.
물론 진보적 정책은 현실의 제약조건을 구체적이고 냉정하게 고려하지 않은 경우, 보수적 정책보다 더 파탄적 결과를 가져오거나 잔인한 희망 고문과 기만이 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제는 환자/피해자/소비자/아동과 청소년/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중심' 패러다임이 상당히 많이 진전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정책과 입법 또는 관행과 실무 등으로 어떻게 '번역'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는 가치 못지 않게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기민하게 포착하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에 대해선 주장자(들)나 결정권자(들)가 자기책임을 질 수 있어도 문화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부상한 좌우의 포퓰리스트들이나 내셔널리스트들, 권위주의자들과 신정주의자들 등은 모두가 '진보적 기득권'의 탓을 한다. 그런데 따져 보면 진정으로 추궁해야 할 자들은 거대 금융 자본, 테크노 재벌,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치인, 군사와 종교 그리고 일당 독재 등이다. 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사회경제구조를 설계한 자들, 그리고 21세기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미래를 손아귀에 쥔 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는 로널드 레이건의 더 지저분한 본모습에 불과하다. 로널드 레이건은 강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쌓았지만 실상은 월스트리트의 홍보대사 같은 사람이었고, 강고한 자유민주주의 규범을 말하면서 실상은 극우 독재를 최소한 방임한 사람이었다. 마거릿 대처의 치하에서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정치적 자유도 있다'는 식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교설이 정론이 됐지만, 80년대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 중산층은 어디에 있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진전되었는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질리지도 않게 '사회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집산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 뭐라고 부르건, 이들이 이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세계를 계속 극우적 방향으로 몰아가는 동안에 그 반동 역시 점점 개혁에서 혁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기 전에 인간의 문화적 자성과 사회경제의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현재의 인류문명은 각자도생 중이거나 아니면 그저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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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1년 안에 별별 투덜거림을 전부 "역차별"로 수용해 백래시가 올 나라이다.
자기 인생이 힘들다고 남도 힘들어야 한다는 식의 행동이나,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문화를 고치지 못하면 문명국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자유나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보다 성숙이라는 문화적 가치가 우리가 진정으로 우선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진보는 마음(내면)의 도약을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봐야 하지만 단지 제도(외면)의 진전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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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이나 경향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의당으로 무게 추가 기울고 있다.
미국식 양당제로만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시대는 더 이상 '보수적 패러다임과 싸우는 비주류' 서사의 시대가 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이미 너무나 명확히 느껴지고 앎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과거에 끼워 맞추는 식의 폐단이 있다. 언제까지 보수정당의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자율성과 인간존엄성의 중시가 핵심적인 사상이다.. 민주주의, 공동체, 평등 이런 언어에 가려져 있긴 했으나 보수 진영보다는 상대적으로 민주진보 진영이 더 가깝긴 했다(애초에 정책을 더 보는 편이기도 하고). 단, 이제는 이 개념과 언어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고도 생각한다. 소수의 존중이 없는 '민주주의'라던가.. 포퓰리즘은 권위주의의 반대 차원에서 더 교묘한 해악이다. 왜냐하면 포퓰리즘은 어쨌든 '국민의 의지'이고, '모두의 것이라는 말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민주주의의 치명적 허점이 될 수 있는 지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당은 불완전 내지는 반사적으로나마 원칙을 담은 마지막 정당이다. 이상적일지언정 폭주하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을 원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용과 공존의 사회와 인본주의의 진보적 원칙을 지키려는 마지막 정당이니까. 단순히 현실을 감안하겠다는 중도를 넘어, 민주당은 정치의 문법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상태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상실과 당원중심주의를 넘어 검찰개혁에의 집착 등 포퓰리즘, 공존과 포용의 사회보다 공허한 산업과 성장 담론의 강조 등.. 자기들이 그토록 타도하려고 했던 자들과 미묘하게 비슷한 문법을 자신들의 종래 정치 문법과 결합한 것이 현재의 민주당이다. '국민과 더불어'가 아니라, 국민보다 '앞서나가는'.
현재의 민주당은 괴물이다.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묏자리를 봐 놓으라'며 협박하는 정도전에게 요동 정벌 반대를 고수한 조준이 일갈했던 것처럼. 포스트 이재명 시대에는 이재명식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혁신'을 핵심으로 '다시, 사람과 더불어'로 가닥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의당을 비롯해 양식 있는 민주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이제 민주당에 힘을 실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에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껍데기만 남은 것을 넘어 아예 치명적 해악이 된 진영 정치의 문법을 넘어, 원칙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환의 바람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