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
……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며는 바보다 캔디 캔디야~
학창시절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최고의 순정만화 캔디만화책을 만났다. 글벗님의 캔디의 추억을 보면서 만화책이 보고 싶어서 빌릴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내어주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책을 빌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1권부터 읽기 시작. 옛날 생각이 소록소록 새어나온다. 울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많이 불렀던 캔디 노래도 찾아보고... 그 때는 캔디처럼 울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었다. 울면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안 보는 데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눈물이 나면 그냥 운다. 소리도 내어서 운다. 대성통곡이 뭔지 확실히 보여줄 때도 있다. 부끄럽지 않냐고? NO!!!! 왜냐하면 울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어느 새 도망가 버린다.
축구하는 딸래미는 나를 닮아 잘 운다. 지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고 동료들이 엉엉 울었던 딸래미를 흉내 내면서 놀렸다는 말에 “아프면 우는 게 당연한 거니까 부끄러워하지 마라”고 했다. 당연히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하게 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 잘 웃는 딸래미는 축구를 하면서부터 우는 일이 많았다. 승부근성이 강해서 자신의 실책이 나오면 억울한 마음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저학년 때였다. 주전 선수로 뛰어서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체육계에선 저학년, 그것도 골키퍼는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승패에 따라 성적이 매겨지니 당연히 유리한 것은 선배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승패가 필요 없는 친선게임에는 가끔 뛰는 경우가 있었다.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약한 팀에 힘을 주기위해 전략적으로 지는 게임을 유도할 때였다. 평소 뛰지 못하던 저학년 선수들을 투입하면서 상대팀의 경기력을 끌어 올려주는 전략에 투입되어 골을 먹었던 때 억울하다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상황을 모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골 먹었다고 핀잔을 들었을 때다 “맨날 지는 경기에만 뛰는 게 짜증이 나고 억울해” 하고 엄마 앞에서 우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기도 했다. ‘잘 할 수 있는 데 지는 경기만 뛰는 게 억울하다’는 딸래미의 눈물이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 엄마 품에 숨어서 우는 모습을 본 감독님이 다른 학부모들에게 지는 게임을 유도했다는 설명을 해 주어서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상황이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울지도 못한다는 것은 감정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쉽다는 경험을 한 엄마로써 충분히 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울면서 자신의 감정을 쏟아 낼 수 있도록 돕는 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놀다가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계단 난간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무게중심이 깨지면서 난간이 부서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워낙 순간적인 상황이라 가족들이 부서진 난간에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딸래미는 잘못한 실수에 대해 야단 들을까봐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옆으로 가서 살짝 안으면서 다친 곳은 없는지 물었다. “놀다보면 난간이 깨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였다. 그제서야 앙~~~하고 울음이 터졌다. 이유인 즉 돌난간과 넘어지면서 허벅다리 바깥쪽이 상처를 크게 입어 피가 범벅이 된 것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픈 것보다 자신의 실수로 야단 듣는 게 더 무서웠나 보다. “넘어지고 물건이 깨지는 건 괜찮은데 이뿐 아가씨 다리가 다치는 건 용서가 안 되네!” 하면서 웃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사회는 은근히 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힘들면 많이 울었다. 왜 우는 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만 울어라’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혼자 있을 때, 남 몰래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실컷 울어서 그런지 별로 울 일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운다.
꿈 많던 소녀시절에 캔디를 좋아했던 나는 캔디처럼 웃기 위해 노력하다 내 감정을 꾹 꾹 누르는 습관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로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로 인해 ‘암’이라는 질병과 싸우는 시간도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할 줄 아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볼 때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충분히 쏟아내도록 기다려주는 방법으로 우는 것에서 절대로 핀잔을 주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