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밤의 바람은 사라지고, 첫 햇살이 하늘에 닿을 때
의식의 귀환은 밀물이 해안으로 밀려오듯 점진적이고 부드러웠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감각이었다. 그의 콧속으로 스며드는, 런던의 아파트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냄새. 갓 깎은 풀의 싱그러운 향기와 젖은 흙의 냄새, 그리고 오래된 책과 어머니가 끓이는 홍차의 희미하고 안온한 향기. 다음으로 청각이 깨어났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지저귐은 런던의 비둘기 소리가 아니라 케임브리지의 정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지빠귀의 노랫소리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 삐걱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익숙한 발소리. 마지막으로 촉각이 돌아왔다. 그의 등을 받치고 있는 것은 낡았지만 몸에 익은 매트리스의 감촉이었고, 그의 몸을 덮고 있는 것은 아이더다운 베개처럼 가볍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하고 무게감 있는 양모 담요의 촉감이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의 어린 시절 방의 천장이었다. 희미한 얼룩과 세월의 흔적이 남은, 수만 번은 더 보았을 익숙한 풍경. 그는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 방 안의 먼지들을 금빛 가루처럼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첫 햇살이 하늘에 닿을 때(when the first rays touch the sky)". 그러나 그 햇살은 꿈속에서처럼 극적이거나 상징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담담하고 평범한 아침의 빛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잔 사람처럼 찌뿌둥했지만, 그의 정신은 놀라울 정도로 맑고 고요했다. 광기와 환각의 폭풍우는 지나갔다. "그리고 밤의 바람은 사라져(And the night winds die)". 그의 내면을 휘몰아치던 혼돈의 바람은 멎었고, 그 자리에는 텅 빈 공허가 아닌, 모든 것을 겪어낸 후의 성숙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런던의 아파트, 그 고독의 감옥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케임브리지의 어머니의 집. 언제, 어떻게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정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현실과의 끈을 붙잡고, 그를 이 가장 안전한 장소로 이끌었을 터였다. 혹은 밴드 동료들이나 가족이 더 이상 혼자 둘 수 없는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귀환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낡은 나무 바닥에 맨발로 섰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서늘하고 단단한 감촉이 그가 현실에,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주었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들이 벽에 붙어 있었고, 책장에는 헉슬리와 케루악,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의 낡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한때 그의 우주였던 이 작은 방은, 이제 기나긴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주비행사를 위한 작고 아늑한 귀환선처럼 느껴졌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정원은 아침 안개에 젖어 있었다. "안개 속에서(in the haze)". 그러나 이 안개는 '안개 낀 주인'의 형이상학적인 안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케임브리지의 아침이면 으레 끼는, 축축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안개였다. 안개 너머로 어머니가 가꾸는 장미 덤불의 윤곽이 보였고, 이웃집 지붕에서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했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함이 시드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평범한 세계의 일부가 될 자격을 잃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계는 그를 거부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한 아침의 풍경을 그의 앞에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어머니가 찻잔을 든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훌쩍 늙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고, 눈가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 주름 하나하나가 아들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룬 수많은 밤의 기록임을 시드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깨어있는 그를 보고 놀란 듯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이내 안도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빛이 어렸다.
"깼구나, 로저." 어머니는 그의 애칭 대신, 본명을 불렀다. 그것은 '시드'라는 신화에 대한 무언의 거부이자, 자신의 아들로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에서는 베르가못 향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그녀는 그저 그의 곁에 앉아, 거칠어진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그 따뜻하고 주름진 손의 감촉을 통해, 시드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차 마시렴."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시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들었다. 따뜻한 홍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그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데워주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이 평범한 행위 속에 깃든 심오한 의미를 생각했다. 꿈속에서 그는 망각의 와인을 마시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씨름했다. 그러나 그 모든 극적인 여정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결국 어머니가 끓여준 따뜻한 차 한 잔이었다. 어쩌면 구원이란, 거창한 깨달음이나 초월적인 경험이 아니라, 이처럼 소박하고 현실적인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방을 나간 후, 시드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더 이상 화려하고 기괴한 무대 의상이 아닌, 낡은 스웨터와 코듀로이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그는 방 한구석에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먼지 쌓인 이젤과 캔버스로 다가갔다. 그는 음악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이제는 언어와 소리가 없는, 더 조용하고 고독한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야 할 시간인지도 몰랐다.
그는 캔버스를 이젤 위에 올려놓고, 굳어버린 물감 튜브들을 하나씩 짜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더 이상 광적인 영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밭을 갈아온 농부처럼, 신중하고 숙련된 움직임이었다. 그는 붓을 들고, 텅 빈 캔버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을 그려야 할까. 꿈속에서 보았던 불타는 유니콘? 벨벳 신부의 성? 그러나 그 모든 환상적인 이미지들은 이제 낡은 사진처럼 느껴졌다.
대신, 그는 창밖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안개에 젖은 정원, 장미 덤불, 이웃집 지붕. 그는 보이는 그대로를 그렸다. 그러나 그의 붓질을 통해, 그 평범한 풍경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 속 안개는 단순한 대기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신비와 불확실성을 머금고 있었다. 장미 덤불의 가시는 아름다움에 내재된 고통을 상징했고, 멀리 보이는 지붕의 기하학적 형태는 혼돈스러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질서에 대한 의지를 암시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선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에게 명상이자, 분열된 자신을 통합하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그는 색채와 형태 속에서, 백조와 올빼미의 변증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이성의 정확한 관찰력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감성의 자유로운 붓질로 그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완전히 그림에 몰두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캔버스와 붓과 그 자신만이 존재했다. 그는 마침내 찾은 것이다. 약물이나 명성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창조의 몰입 상태를.
그는 그림의 마지막 부분에, 안개 속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그 새는 어떤 특정한 종(種)이 아니었다. 그것은 흰색과 검은색 깃털을 동시에 가진,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통합의 새였다. 그러나 그 새는 더 이상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안개 낀 아침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평범하지만 강인한 생명체였다.
"그리고 나는 떠올라, 새처럼(And I rise, like a bird)."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 '떠오름'은 더 이상 팝스타로서의 명성이나 환각 속에서의 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신화와 상처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조용하고도 위대한 부상(浮上)이었다. 그는 더 이상 핑크 플로이드의 '시드 배럿'이 아니었다. 그는 로저 키스 배럿, 그림을 그리는 사람, 어머니의 아들, 케임브리지의 안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낸 한 명의 생존자였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걸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의 과거 작품과 비교하며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오직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길고 긴 꿈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자, 마침내 찾아낸 평화에 대한 증언이었다.
창밖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아침 햇살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들고 방을 나섰다. 그는 아마도 정원으로 나가,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밭을 맨발로 걸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차려놓은 소박한 아침 식사를 먹을 것이다. 그의 삶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평범함 속에서,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깊고 진실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그의 여정은 끝났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제 막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깃털 이불보다 가볍게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려 했던 그는, 마침내 땅에 발을 딛고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안개 속을 날아가는 새처럼,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조용하지만 단호한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