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by 남킹

식당을 나왔다. 남자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말끔히 비웠다. 좁은 골목에 다시 들어서자, 낮에는 후덥지근하던 바람이 밤이 깊어 갈수록 파르스름하고 싸늘하게 돌변하여 한기를 돋게 만든다. 이제 여름은 비껴가고 바람만 휑하니 돌아다닌다.


남자가 같이 있자고 한다.


어디든지 구석이라면 그냥 콕 처박혀 있고 싶다. 스물아홉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본능이 시킨 데로,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하며 늙어 버리고만 싶다.


아무래도 내 인생은 지나치게 길게만 느껴진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다.


남자와 같이 그 여관에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관계를 했던 곳이다. 한동안 매일 집처럼 들락거렸던 곳이다.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 횟수는 대폭 줄어들었고 곧 남자는 다른 모텔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자가 흡족한 듯 한 곳에 다시 마음을 정했을 때는, 주중 정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 남자가 오랜만에 이 여관에서 월요일 밤을 보내자고 한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받았다. 혀 꼬부라진 음성에, 술 냄새가 한 움큼 달렸다. 나는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었다. 자고 들어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사실 할 필요도 없다. 단지 궁금해서 전화한 것뿐이다.


남자와 일주일을 뒹굴고 들어가도 가족에게서, 물론 달랑 아버지와 오빠뿐이지만, 내가 듣는 소리는 밥 달라는 소리뿐이다. 방에 널브러진 라면 봉지들과 술병들을 치우고, 곰팡이 범벅이 된 냉장고와 식기들을 씻은 뒤, 흰쌀밥과 데운 고등어 통조림, 달걀부침을 내놓으면, 아버지와 오빠는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운다.


엄마가 도망간 이후, 아버지는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대청마루 시래기처럼 시들어 갔다. 벗어진 이마는 짙고 검은 주름이 더욱 거칠게 휘감았고, 성기게 돋아난 주변머리는 허옇게 비틀어져 찰떡 지게 붙어있으며, 앙상한 어깨는 움푹 팬 볼만큼 위태롭게 구부려져 갔다.


어디엔들 인간다운 모습이 당최 뵈진 않았다.


아버지는 밤이 되면, 텔레비전을 몇 시간 째 틀어 놓고는, 마치 TV가 아버지를 보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다가, 까딱 술잔만 기울이고는 횡설수설하는 듯하며 잠들고, 다시 아침이 오면 개를 사러 이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오빠는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전국을 바람처럼 돌아다닌다. 도시, 햇빛, 형사를 피해 전국의 투견장을 누비다,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들어와 자숙의 몇 주를 보낸 듯하다가는, 어느새 아버지나 친구 혹은 보신탕집 주인을 꼬여, 푼돈을 챙기면 미련 없이 도망쳐 버린다.


나에게 가족이란, 존재하지만 한없이 투명하기만 하다. 연결고리는 이미 사라졌고, 그들의 삶에 나는 투명인간이고, 나에겐 그들이 거추장스러운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남자가 강하게 껴안는다. 그러자 훅하고 뜨거운 입김이 볼을 스치며 지나간다. 남자에게서 짜장면 냄새가 난다.


스네이크 아일랜드 (6).png
천일의 여황제 (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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