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Bullets

by 남킹

그녀의 방은, 폐허의 도시에서 제법 떨어진, 변두리 주요 도로에 닿아있다. 혼탁하고 헛된 소음이 늘 떠다녔다. 대형 전투용 드론과 장갑차들의 진동이 그녀의 거친 심장 소리만큼 몸 전신에 파고들었다.


대문과 벽에는 다양한 색상의 래커칠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작은 뜰에는, 뱃머리의 조각처럼, 비바람에 젖은 낡은 옷가지들이 쌓여있었다. 마치 그녀를 둘러싼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가라앉고 변색하는 것처럼.


나는, 칸살이 붙은, 그녀의 작은 침대 벽에 몸을 기대어, 햇볕에 그은 색상이 그려낸 창을 바라보곤 하였다. 나의 눈은 일련의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으로 채워졌다.


비둘기색 커튼은 늘 축 처져있었다. 금작화 나무가 앙상하게 죽었다. 마른 가지에는 찢어진 깃발이 펄럭였다. 그리고 멍한 눈동자는 아무것도 없음이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그렇듯,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하는 고질적인 환상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특히, 그녀에 대하여.


그녀는 모든 것을 씹듯이 저미며 진솔함으로 다가서지만 늘 일정한 거리에서 머물렀다. 나는 흐릿하게 절단되어 그녀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이런 느낌은, 드러나지 않고 내밀하게 색조들이 결탁한 끌림을 주어, 시선을 고정하였다.


늘 그녀를 향했다.


**********


그녀를 만나기 직전, 나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도착했다.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지만, 조리사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활기도 없고 확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이방인의 도시에 살기를 원했다. 잘게 썬 고독이 박힌 거리를 걷고 싶었다. 사교나 형식, 관습과 규율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자유로운 번뇌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섹스를 하였다.


한없이 맴돌아 나가는 사소한 갈등과 절대로 떨쳐버리지 못하는 간결한 끌림과 반항을 애써 무시해버리는 현대인이면 의당 겪는 부조리는, 내가 그녀의 몸을 핥는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신기하였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4일. 그녀는 날아든 포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우리가 사랑한 지 꼭 10일 만이다.


그레고리 흘라디의 묘한 죽음 (22).jpg
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21).jpg


매거진의 이전글AaRON - Le Tunnel 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