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프롤로그

by 남킹

오늘도 밤샘이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환기를 위해 창을 살짝 열었다.


도시의 매캐한 매연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밤의 찬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나는 카디건의 앞섶을 살짝 풀어헤치고, 허리끈의 고리를 푼 뒤, 긴 한숨을 내뱉으며, 푸근하기 이를 데 없는 의자에 길게 몸을 뉘었다.


어찌 보면 이곳은 이제 집보다 더 편한 공간이 되었다. 지난 2년간, 하루 대부분, 내 몸이 속한 공간이 된 것이다. 3평 남짓한 곳.


대형 빌딩 사이 난쟁이처럼 끼어, 하루 2시간도 안 되는 채광이 마치 꽁지깃처럼 삐죽이 나왔다 사라지는 곳.


나는 이곳에서 30촉도 되지 않는 노란 백열등과 모니터 불빛에 의지한 채 대부분 업무를 수행한다.


<너구리 소굴>


처음 직원들 사이에 불렀던 내 방의 별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뽀얀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여직원들의 기피 대상 1호 방.


심지어 어떤 직원은 문만 빼꼼히 연 채 메시지만 전달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대화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최상의 안식처다.


나만의 궁전. 나는 여기서 자거나 일하거나 생각하거나 읽는다.


읽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송 팀장과 가까워지면서 얻게 된 습관이다.


그녀는 외국 소설, 특히 일본 소설 마니아다. 그녀는 깔끔한 블라우스에 어중간한 길이의 치마를 즐겨 입고 나타나, 짧은 키스와 소설책 한 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녀가 내게 내민 첫 소설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다. 밤새워 그녀와 여관방에서 뒹군 다음 날이다.


“우선 짧은 것부터 시작하시죠.” 붉은 색채의 루주를 입술 경계가 모호하게 덧칠한 그녀는, 실핏줄이 선연한 안구에 식염수를 떨어뜨리며, 책을 두고 갔다.


그날 아침 나는 파리하게 지쳐있었다. 그녀의 끝없는 욕구에 비루한 열등감으로 대응한 나는, 그녀의 품속에서 어떻게 잠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회사에 출근했는지, 온통 머릿속은 분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진창에 빠진 딱정벌레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욕망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쾌락 뒤엔 그만큼의 고통이 찾아오니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엔 배우자를 배신한 양심의 고통도 포함된다.


서른 중반인 그녀는 여전히 미혼이고, 자유분방하고, 앞으로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향기를 몸 구석구석에 스민 채, 요란하고 기이하게 – 섹스 후 독서라니 –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양심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육체의 욕망에 비교해 턱없이 물컹하다.


나는 책을 가지고 빌딩 지하의 사우나로 내려갔다. 첫 장을 읽기 전에 잠들었고 깨어 보니 밤이었다.


휴대전화엔 5통의 전화가 왔고 모두 개발팀에서였다. 2시 팀장 회의를 건너뛰었으니 당연하다.


나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진 듯한 표정을 하고, 쥐새끼처럼 내 사무실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개발팀의 분위기를 조심스레 살폈다. 다행히 잠잠해 보였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내 자리로 돌아가 자정까지 프로그램 코딩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난 뒤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첫 선물을 사우나에 두고 온 사실을. 나는 다시 내려갈까 하고 생각을 하다 그만뒀다. ‘그따위의 책. 없어지면 다시 사면될 일.’ 그리고 일주일 뒤 그녀가 두 번째 책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을 가지고 너구리 소굴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사우나에 두고 온 책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책을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책의 유무뿐만 아니라 내용도 묻지 않았다.


키스가 끝나고 그녀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잽싸게 지하로 내려갔다. 하지만 책은 돌려받지 못했다. 물론 책을 사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책 내용을 모른다.


<계속>


1월의 비 Book Cover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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