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블라드 체페슈 2

by 남킹

블라드 체페슈


나는 루마니아의 쓰러져가는 고성을, 현지인을 대리로 내세워 헐값으로 샀다. 그리고 그 주변, 산과 호수, 밭을 모두 사들였다. 그리고 성을 보수했다. 호텔과 카페테리아, 연회장을 만들고 테마파크도 집어넣었다. 그리고 <블라드 체페슈> 성으로 국내에 광고했다. 마치 그 유명한 드라큘라 백작의 성인 것처럼 포장하고 광고하여 한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루마니아를 왔다 갔다 하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려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한국 관광객 유치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그보다는 더 중요하고 은밀한 돈벌이가 여기에 있었다. 나의 표적은, 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진, 재벌 2세나 졸부들이었다. 그들의 일탈과 탐욕을 이용하기 위한 거였다.


그러려면 우선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야 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은밀하고 안전한 곳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 나는 나의 성과 숲, 호수를 아우르는, 아주 높은 담을 쌓았다. 그리고 전류를 흘려보내 감히 누구도 담치기를 못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숲에는 다양한 짐승을, 호수에는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풀어놓았다. 그중에는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사파리를 조성했다. 그리고 이곳 공무원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카지노 운영권을 따냈다.


성의 내부와 주변에도 다양한 시설을 마련했다. 카지노뿐만 아니라 오락실, 사우나, 수영장, 안마소, 실내 골프, 테니스장, 영화관, 레스토랑, 커피숍 그리고 드랴큐라를 주제로 한 공포 테마파크까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이 성의 지하에 있었다. 나는 이것을 기획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연히 다큐멘터리에서 본, 400년 만에 발견된 죽음의 동굴에서 착안하여, 나는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했다. 나는 깊은 동굴을 팠다. 그런데 구멍을 한 개만 판 게 아니었다. 입구에서 조금 가면 2개의 구멍이 나왔다. 파란 구멍, 빨간 구멍. 이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알기 위한, 빨간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따왔다. 2개의 구멍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십여 미터쯤 가면 다시 2개의 구멍이 나왔다. 역시 빨간 구멍, 파란 구멍. 해답은 둘 중 하나. 끝까지 틀리지 않고 제대로 답한 사람은 가장 빨리 출구를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동굴에서 좀 돌아야만 했다.


나는 지하 동굴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공포 소품 제작자로 유명한 사람을 고용하여 동굴 전체를 괴기스럽게 꾸몄다. 나의 왕궁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 운영 인력이 필요했다. 나의 성을 지켜줄 보안요원과 동유럽의 쭉쭉 빵빵 미녀들을 모집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 돈만 거둬들이면 되었다. 나는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 세상 부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당신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선택받으신 분만, 이곳 블라드 체페슈 성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카지노 이용객은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 테마파크 등 모든 위락시설이 무료입니다.>


예상대로였다. 나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스스로 개척했다. 나는 늘 내가 냉정한 천재라고 느꼈다. 돈벌이에 관한 한 나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항상 생각했다. 모든 호텔 객실이 고객들로 꽉 찼다. 그들은 근사한 아침을 먹고, 사우나에서 안마받고, 숲과 호수에서 사냥과 낚시를 즐기다가, 자신이 손수 잡은 신선한 고기로 배를 채운 뒤, 카지노에서 도박하고 미녀와 함께 테마파크에서 음탕한 공포를 체험하면서, 하루를 쾌락답게 보내는 거였다. 소문은 부자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다. 일 년 치 예약이 모두 찼다. 나는 스위스 비밀 계좌에 부지런히 돈을 갖다 날랐다. 적어도 <디오스 바이러스>가 세상을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 우리는 알고 있었다. 괴상하고 괴기한 바이러스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서, 툭하면 사람을 괴롭히며 우리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나는 진작 알아봤고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나는 팬데믹 시대에도 큰돈을 버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했다. 나는 나의 왕국 곳곳에 은밀하게 식품저장소를 설치하고, 오래 보관이 가능한 가공식품을 저장했다. 적어도 1년 동안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리고 각종 소독약과 항생제, 의료 장비, 방독면을 대량 구매하고 차단막을 모든 방에 설치하였다. 연료를 대량 확보하고 자가전기설비를 갖췄다. 그리고 유럽의 특수 용병 출신의 보안요원과 군사 장비, 폭탄을 곳곳에 배치했다. 게다가 최첨단 백신 개발 연구소에 막대한 후원금을 냈다. 이 연구소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 있으므로, 완전히 고립된 곳이었다. 또 한 가지, 나는 우리 성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헬기장과 격납고를 만들고 헬기를 마련했다.


성의 중심, 대형 홀에는 초대형 TV를 설치했다. TV에서는 24시간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세상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내 비장의 무기. 나는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전문 감독들을 끌어모아 영화를 대량 제작했다. 질보다는 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긴 영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영화 편집자들을 모집했다. 그들에게,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지구 멸종을 다룬 필름을 모아 짜깁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나는 이제 귀를 쫑긋 세우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무척 빨리 다가왔다. 바이러스는 인류를 멸종시킬 기세로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나는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 세상 부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당신이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오로지 선택받으신 분만, 이곳 블라드 체페슈 성에서 1년간 안심하고 머물 수 있습니다. 모든 약과 의료 장비가 준비되었고, 모든 곳이 100% 완벽하게 살균되었습니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하루하루 즐거운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선착순 딱 100명만 받겠습니다. 서두르시기를 바랍니다. * 카지노 1년 VIP 정회원은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 테마파크 등 모든 위락시설이 무료입니다.>

불과 사흘 만에 100명의 회원을 채웠다. 전세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부자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전 직원들에게 미리 알린 대로 명령했다. 동서남북, 성의 모든 문이 굳게 닫혔다. 담장의 전력을 최대치로 올리고 각 초소에는 24시간 비상 대기 체제로 들어갔다. 이제 나의 왕국에는 쥐새끼 한 마리 들어 올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시설은 매일 살균했다. 그리고 성내 모든 인원은 의무적으로 1주일에 1회 바이러스 검사를 받도록 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우리는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TV에서는 매일 아비규환으로 변해가는 세상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성의 입주민들은 그저 불구경하듯 쳐다볼 뿐이었다. 이곳 삶은 온갖 탐욕과 쾌락의 결정체였다. 홀에서는 매일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마음껏 사냥하고 먹고 마시며, 도박하고 남녀가 어울렸다. 그들에게 바깥은 단지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이 되기 위한 나의 마지막 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드랴큐라 성주답게 그들의 피를 남김없이 쭉쭉 빨아 먹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싱싱한 생고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한 달쯤 지나자, 숲과 호수에 풀어 놓은 야생동물이 거의 멸종상태였다. 그러니 모든 음식은 통조림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차츰차츰 가공식품에 질리기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최고의 쉐프가 아무리 맛있게 통조림으로 요리를 해도, 신선한 생고기의 풍미를 잡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이것도 이미 예상하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싱싱한 고기를 얻는 방법. 의외로 간단했다. 나의 성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성 주변에는, 매일같이 바이러스의 공포를 피해 주위를 서성이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그중에 젊고 토실토실한 이들을 골라 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이러스 검사 명목으로 그들을 격리했다. 그곳은 모든 전파가 차단된 방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휴대전화기는 무용지물이었다. 대신 게임기와 TV가 그들의 무료함을 달랬다. 그리고 매일 풍성한 가공식품을 그들에게 먹였다. 그들은 만족한 돼지로 차츰차츰 변했다.


한편, 주방에서는 그날 필요로 하는 생고기 양을 산정해서 격리실 관장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관장은 필요한 수의 인간을 뽑아 가스실로 그들을 보냈다. 물론 그들에게는 격리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이 성에서 마음껏 살 수 있다는 담당자의 말에,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가스실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보아온 장면이 나타난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히틀러의 멋진 유산. 홀로코스트의 백미. 가스실 명판은 당연히 <살균실>로 되어 있다. 그 방에 모인 이들은 우선 모든 옷을 벗어 세탁실 바구니에 담아둔다. 모든 귀중품은 자신의 이름을 적은 박스에 보관한다. 그렇게 나체가 된 그들은, 재스민 향이 가득한 가스실에서 행복을 느끼며 저세상으로 간다. 얼마 뒤, 환기가 끝난 가스실에 직원들이 나타나 죽은 이들을 캐리어에 담아 <해체실>로 보낸다.

그날 저녁, 신선한 생고기로 만든 향긋한 스테이크가 제공된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들은 서둘러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멋진 말을 남긴다. 천국의 맛. 내 생애 최고의 스테이크. 고든 램지가 울고 갈 천생(天上)의 고기 맛. 비건이 아닌 게 천만다행. 이건 그냥 고기가 아냐! 신이 내린 축복이야!….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신선한 생 살코기에 고소한 참기름을 뿌려 만든 육회, 막 짜낸 피를 깨끗하게 굳히고 당면을 넣어 만든 아바이 순대, 남은 살코기를 갈아서 만든, 두툼한 수제 햄버거 패드, 대가리를 푹 삶아 압착기에 꾹 눌러 만든, 쫄깃한 머리 고기, 정력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상남자를 위해 제공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간 요리….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인육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나의 성을 점점 괴기스럽게 꾸미기 시작했다. 내게는 뼈를 발라내고 남은 많은 찌꺼기가 있었다. 피, 머리, 해골,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껍질, 내장까지…. 그러므로 값싸고 손쉽게 공포스러운 장식을 추가할 수 있었다. 우선 피를 곳곳에 뿌려 사람들이 비린내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인육에 미친 그들은 손쉽게 비린내에 물들었다. 그리고 방부 처리한 각종 인간 부산물을 이용한 장식을 매일 조금씩 조금씩 설치해 나갔다. 점점 나의 성은 기괴한 뱀파이어로 변해갔다.


나는 나의 원대한 계획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무르익어 가는 현실에 깨춤을 출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점점 심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바로, 그 지하 동굴을 이제 저들에게 소개할 때가 된 거였다. 이 세상 최고의 사기꾼만이 할 수 있는, 내 생애 최고의 작품. 블라드 체페슈 지하 동굴을 공개합니다. 여러분에게…. 하지만 잠깐, 그에 앞서 나는 몇 가지 선행작업을 시작했다.


신의 땅 물의 꽃 (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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